[수필/배영춘]열정과 허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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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배영춘]열정과 허무 사이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7.07.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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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영춘: 중국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 졸업. 1989년 길림도라지잡지 문학강습반 수료. 길림신문, 도라지 잡지에 수필,시 통신보도 10수(편) 발표. 현재 한국 안양시 거주.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서울=동북아신문]오늘도 나는 출근하기 바쁘게 주방에 들어서며 목긴 장화를 신는다. 무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7월, 점심시간이 다가 올수록 주방에는 지지고 볶고 하는 화력으로 인하여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은 쉴 새 없이 줄줄 흐른다.  

영업 개시와 함께 ''비냉 둘 물냉 하나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재차 ''영돌 5개요'' 하는 써빙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그 목소리에 기계처럼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비냉은 비빔냉면이고 물냉은 말그대로 물냉면이다. 여러분들도 ''영돌''은 잘 모르겠지만 ''영양 돌솥밥'' 하면 바로 알 것이다.
 
배고픈 점심시간 손님들은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아니다. 조금 이라도 빨리 먹고 차 한 잔이나 커피 한잔을 마시며 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 식당에서도 나름대로 빨리 주문하기 위해 주방에 대고 줄임말을 써서 외치고는 포스를 찍는다.
 
그러면 주방엔 전쟁이 시작이다. 점심엔 백반을 위주로 장사하고 주문한대로 최대한 빨리 요리해서 손님한테 가져다 주는 게 목표다. 물론 맛과 향 색감 오감이 느껴지도록 음식 하는 게 나 로서는 최대한 목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과 몸이 바쁜 일정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바로 점심시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다.
 
나는 이 바쁜 것이 오히려 자랑거리라고 생각 하며 살아오고 있다. 식당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식당은 너무 한가하고 손님이 없어서 월급 받는 마음조차 편치 않아 눈치만 보인다. 그러다 나면 나는 자연적으로 사직서를 쓰는 수밖에 없다. 명색이 주방장인데 가게에 손님이 없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헤맬 때도 있고 자존심 상할 때도 있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새로운 직장을 옮긴 후 바쁘게 돌아가는 나의 생활에 갖는 의미에 대하여 문득문득 고달픔보다도 허무함이라할까, 가끔 알지 못할 회의를 느낀다.
 
일상의 분위기에 끌려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중국에서 느긋하고 한가롭게 살아오다가 급하게 발전하는 대한민국에 와서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아등바등 일해 오면서 자신의 건강에 너무나 등한시 해왔다. 
 
내 나이 50고개가 들어서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이라는 이 소중한 것을 소리도 없이 나를 쓰러뜨리려 하는 많은 질병도 몰려오기 시작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돈을 벌면서 기술도 배울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그러나 나는 과연 무엇을 배워왔을까?……
 
음식점에서 일을 하면서 기왕이면 ''일급 주방장''이니 ''좋은 솜씨''니 하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내 생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노력 해왔고 학습하며 꾸준히 음식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문학이라는 성취욕이 나를 앞만 내다보도록 했다. 현재 생활 속에 담겨 있는 귀중한 인생사들을 글로 옮김에 있어서 앞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지는 확실치 않지만, 늦은 나이에 마냥 쫓아만 가고 있는 자기를 발견한다. 이미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는 확실히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한 번에 두 가지의 취미를 동시에 취한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고민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하나는 내 인생에 먹고 쓰고 살아가는 밥줄이요, 또 하나는 나의 정신적 밥줄이다. 모두 다 중요한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앞만 보고 분주하게 살아온 가운데 내가 잃은 것 부모님에 대한 불효와 현재 떨어져 살고 있는 형제들과의 정과 정담을 나누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보니 너무나 많은 그 중요한 인정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냥 막연하다는 표현이 정답일 것 같다.
 
청소년기 우리 집에는 텔레비젼이나 세탁기 냉장고가 없이 가난했다. 그러니  ‘사랑’이니 ‘애정’이니 하는 연애는 해본 적 없었고 그녀 몰래 짝사랑으로만 마음을 달랬다. 그러하니 인간 관계를 맺어감에 있어서도 너무나 소극적 이어서, 결국 비현실적인 소망인 부자가 되서 꼭 나만의 이상적인 여인도 만나서 살고 싶은 대로 살자고 다짐도 했건만 이내 비관에 빠지기도 했다. 나의 아둔한 머리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이제 생각하면 장사를 한답시고 여기 저기 잊을 수 없도록 신세를 진 사람들도 많고, 현재도 마음과 마음이 가까운 친구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와서 일하면서 돈 잘 버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서로의 바쁜 일로 인하여 마음으로 가까운 친구들과 조용히 만나서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웃고 이야기하는 여유가 거의 없다.
 
가끔 동창회다, 생일이다, 결혼식이다 하는 모임에 가서 친구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마음을 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모이는 사람이 너무 많고 떠들썩한 분위기여서 농담과 근황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눌 뿐 조용히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그러한 자리 그러한 시간을 갖기에는 나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 나로 하여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매번 나는 이미 대한민국 생활에 적응이 됐다고 자부해 왔지만 사실은 트랜드를 따라가기 너무 힘들다.
 
한가로움을 즐기지 못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나의 조바심 탓에 지금도 직장이나 조직 모임 에서도 항상 자괴감에 처해 있다. 이런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다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와 누웠지만 괜히 잠이 오지 않아 반바지 차림으로 집 앞 길 건너편 단골인 호프집에 들어가 맥주 한잔을 시켰다. 나이가 나와 비슷한 아주머니께서 "오늘은 혼자 오셨습니까? 목이 컬컬한가 본데 생맥주 한잔 드릴까요?"
''네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아 누웠다가 나왔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안주 없이 맥주 마시기는 그렇고 해서 감자튀김을 하나 주문했다.
''사장님도 한잔 합시다요. 혼자 마시니 술이 안 넘어가네요.''
나는 맥주를 들고 오시는 여자 사장님께 말했다.
''그럴까요, 고마워요.''
 
차가운 맥주에 바삭한 감자튀김은 매우 조화가 잘되어 맥주 맛이 한결 부드럽게 났다.
''어제 우리 가게 윗층 301호 사시던 할아버지가 리무진 타고 가셨어요.''
 
''네?!……항상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신 할아버지 말씀이십니까?''
"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말수도 적어지고 어깨에 힘이 빠진 모습으로 사셨는데 구급차에 실려간 후에 할아버지 소식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리무진과 뒤따르는 승용차 몇 대가 우리 상가를 한 바퀴 돌고 갔습니다. 할아버지 장의차였다고 합니다. 사시던 집을 마지막 들르시고 떠나신 것 입니다."
 
나도 그 할아버지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출근 할 때마다 건너편 빌라 문어귀에 앉아 계시다가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나에게 항상 먼저 말을 건넨다. 타국에 와서 고생한다고, 늘 건강을 생각 하며 일하라고 건강 한번 무너지면 일어서기 힘들다고 말하던 할아버지였다.
 
가슴이 답답 해났다
할머니를 보내시고 힘없이 사시던 할아버지 이제 인간세상 임무를 다하시고 할머니 곁으로 가신 거라는 사장님의 말에 공감이 갔다.
 
인생 마지막 길 할아버지 생전 모습이 문득 떠올라 눈시울에 촉촉해났다.
인생 누구나 가는 길은 저렇게 쓸쓸한 모습일까?
 
냉정을 되찾아 창밖을 바라보며 나 자신도 모르게 걸어 온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언젠간 나는 중국으로 갈 것이고 그 때가면 기력도 떨어지고 몸과 마음도 늙어서야 분주함은 없어질는지?
 
그때 가서는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을런 지?
마음의 집 귀향 고향이 항상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도 ‘영양돌솥밥’을 ‘영돌’이라고 줄여서 불러야 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오늘 대한민국한복판에서도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한가로운 정담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차라리 빨리 하루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고향 생각에 눈시울 적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 늙기 전에 돈도 벌며 건강을 유지하는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한 요즈음이다.
 
2017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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