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꽃잎비 외 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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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꽃잎비 외 5수
  • 유재전
  • 승인 2017.04.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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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유재 중국 소주 常熟理工学院 外国语学院 朝鲜语专业 교수/ 한국 숭실대학교 현대문학 박사졸업/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꽃잎비
 
낭자한 아침
나는
서있는다
 
폭우 따라 흘러가려 했던 건
아니다, 흘러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서있을뿐
 
꽃잎을 휘날리기에
나는
너무나 인간이다, 바람에 내맡길 수도 없다
 
각진 시간의 모서리
위태롭게 흔들리는 직립의 지탱 아래로
아아, 수천의 분홍이 떠간다
 
2017.04.17
 
슬픔이라는 즐거움
 
믿음직한 슬픔이 즐겁다
더 기뻐하기를 두려워할 만큼의 용기
 
생각 따위는 필요없다
사소함일 뿐
시시껄렁하고 잡다한, 혹은 안도할 만한
 
야릇한 경지에 비탈진 슬픔
갖고 있다
갖고 있다, 데리고 거느리고
 
아아, 슬픔이라는 즐거움
 
2017.04.19
 
꼬부림
 
꼬부림 자세는
침대를 바꿔가며
계속 되었다
방어도 아니고
진공도 아니다, 다만
편안함일뿐
긴장과 이완의 그 어디
쯤에서 떠돌음이 휴식을 만날 때까지
 
그것으로 나는 하나의 징표였다
밤마다 실을 뽑는다
 
2017.4.21
 
풀리는 거리
 
바람이 풀리는 거리
느닷없이 훌쩍 열린 하늘
 
그 아득한 아래에서
먼발치까지 길을 밀어내고
빈터 위 시간
느릿느릿 오후를 기어간다
보도블럭에 빛을 질질 끌며 기어간다
도로 차량은
미리 앞서간 시간 황급히 쫓고
 
먼저 왔던 사람들은 헐겁게
흩어졌다
문득 생각키운 옛 추억처럼
 
참을 수 없이 느린 것과 또 다른 어느
낯선 시간, 그 감당하기 벅찬 속도감의
언저리에서
 
늦게 도착한 사람 몇몇
해야 할
일 알지 못한 채, 바람이 가로지른 거리
해맑게 망각하다
 
2017.04.22
 
바가지
 
긁는 소리
내기 위해
속 파버렸다고
볕에 쬐었다고
수분 날려 모질게 굳어졌다고
 
항아리에
하냥 떠서 노란 외침
마중물 담아 한몸으로 올라가다
털썩
내려 이윽토록 몸을 싣는
바가지
 
한모금 갈증이다
 
2017.04.23
 
바람, 갈피
 
나붓기는 책갈피
위 글자
 
떨어질 듯
사라질 듯 위태롭게
사랑해요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라고 씌여
 
표지 뜯긴 어느 诗集
얼룩진
한장, 페이지에
남겨진 글자 으스러지며
갈수록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나붓기는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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