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5년 전의 일이다. 서남대학교 외국어학과에 등록하고 나서 대학교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지난 세월 동안 돈벌이에만 신경 쓰면서 항상 바삐 보내다보니 한국생활 거의 20년 만에 모처럼 여유를 찾아 ‘책바다’를 산책할 기회를 얻었다.
그날 나의 눈에 확 꽂힌 책 한 권 있었는데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이었다.
경계인(境界人)이란 오랫동안 소속됐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금방 버릴 수 없고, 새로운 집단에도 충분히 적응되지 않아서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말한다. 이 말은 나치즘을 등지고 미국으로 향한 쿠르트 레빈(K. Lewin, 1890∼1947)이 사용한 심리학 용어이다. 한국에서 이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발표된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경계인으로 묘사되면서부터이다. 2003년 송두율 교수사건 이후 다시 이 용어가 회자되었는데, 뮌스터대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자신을 ‘경계의 이쪽에도, 저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 경계인’으로 규정했다.
경계인을 중국어로 ‘변제인(邊際人)’이라 부른다. 뜻인즉 거주국에 오랫동안 살고 있어도 중심부에 진출하지 못하고 변두리에서 맴도는 주변인이란 의미이다.
경계인의 특징을 자세하게 말하자면 때로는 집단이나 사회의 주변부에 자리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지위나 역할을 완전하게 갖고 있지 않은 이른바 '주변인'의 의미로 사용되며 일반적으로는 성질이 크게 다른 두 개 이상의 집단, 또는 사회에 동시에 소속하여 그 때문에 행동의 기준적 틀이 대단히 불안정한 사람을 경계인이라 한다. 구체적으로는 급격한 계급 상승이나 하강, 농촌에서 도시로의 지역적 이동을 수반한 사회적 이동, 소년기에서 청년기로의 연령적 이행, 결혼이나 이민 등에 의하여 다른 문화형을 가진 집단에 동시에 소속을 강요당하는 사람을 그 전형으로 들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들은 가치체계가 대립하는 쌍방의 집단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어 크고 작은 심리적 갈등상태에 놓이게 되면서 퍼서낼리티(개인풍격, 인정미)의 분열에 곤란을 받는다. 이 때문에 경계인은 과도한 자의식이나 열등감을 갖기 쉽고 그 결과 자살, 범죄, 비행 등 사회병리적 징후가 보통 사람에 비하여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되고 있다.
경계인을 가장 속된 말로 풀이하자면 곧 두 사회나 집단 사이에서 얼치기가 되는 사람이다. 조금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 재한조선족사회를 조명해보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한국생활을 돌아보면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날고 기어도 결국 ‘경계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 이주민집단(조선족사회)이 타자세계(한국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야 한다. 둘째 문화적으로 적응이 잘 되어야 한다. 셋째 정치참여가 활발해야 한다.
나는 20년 전 한국에 와서 제조업과 유통업에 종사해보고 수년 후 자영업을 시작하였다. 종업원으로 근무하여 열심히 일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자본주의사회에 와서 마음껏 나의 능력을 발휘해보고 싶어 자영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장사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울기도 많이 울었고 고민이 많았다. 허나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돈이 잘 굴러들어와 일 년 부지런히 돌아치면 남들이 10년 동안 버는 것에 맞먹을 정도로 많이 벌었다. 보릿고개를 넘어 소강(小康)을 뛰어넘어 여유롭게 생활할 수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문화적으로 적응 잘하려고 국제라이온스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지역 회장까지 지냈다. 나 나름대로 한국사회 엘리트들이 모이는 조직이며 모임들에 참여하여 한국사회에 적응이 잘 된 줄 알았다.
정치참여란 의회민주주의사회에서는 권리를 찾으라는 의미이며 권리를 찾으려면 투표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현재 재한조선족사회 인구는 70만에 이르지만 머릿수에 비해 정치적인 파워가 제로이다.
나는 여러 가지 많이 부족하지만 용기를 내어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쯤 되면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았고 문화적으로 적응이 잘 되어가고 있고 정치참여도 괜찮은 편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으나 정작 지난 4.13총선 유세 때 겪어보니 한국사회 현실은 나의 생각과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는 것을 피부로 체험하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31번을 배정받고 나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아울러 4.13총선에서 타 후보들의 선거운동에 나서 유세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나의 유세임무는 크게 네 가지 내용이었다.
첫째 중국동포밀집지역을 돌면서 중국동포들이 한국에서 잘 정착하여 우량시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둘째 중국동포들이 대한민국경제발전, 특히 지역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니 내국인들이 동포사회를 포용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구축해 나아갈 것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셋째 가리봉동을 비롯한 조선족밀집지역을 인사동이나 이화거리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특색이 짙은 관광지로 건설하여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넷째 과거 문화차이로 인해 서로 갈등이 있었는데 이젠 동족이란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화합과 공존의 길을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유세 첫날 나는 한국 땅 서울거리에 나서 처음 마이크를 잡고 목청껏 외쳐보았다. 곁에서 나의 정열적인 유세목소리를 들은 사무국장님은 첫날부터 너무 소리높이 외치면 며칠 못가고 목이 쉬어버린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사무국장님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신이 나서 외치고 또 외쳤다.
연변거리라 불리는 동포밀집지역 1번지인 가리봉에서 한참 신나게 외치는데 맑은 날씨에 날벼락이라더니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사건이 터졌다.
한 내국인이 갑자기 튀어나와 나의 얼굴에 삿대질하면서 “조선족이 한국 와서 무슨 정치냐? 조선족은 중국인이 아니냐? 제나라로 돌아가라. 조선족은 살인범들이지 사람이냐?”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 당황하여 입에 붙어 있던 마이크가 저절로 흘러내렸고 팔다리가 마비되는 것처럼 힘이 쭉 빠지고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 듯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아 멍하니 있었다. 잠깐 동안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곁에 있던 사무국장님이 나에게 “선거운동 하다보면 벼라 별 일이 다 발생할 수 있으니 개의치 말고 계속 하라.”고 귀띔해주었다. 그제 서야 나는 정신이 돌아왔지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욕은 듣는 자가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비록 나는 살인자가 아니지만 내국인이 우리조선족집단을 살인자로 매도하니 순간 나도 살인자가 된 기분이다. 특히 당신들 조선족은 사람이냐는 말에 어이가 없이 기가 확 막혀버려 순간 나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사무국장님이 재차 귀띔해주어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계속 유세를 하긴 했어도 속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사람인데 내가 정말 사람이 맞는지 하는 엉뚱한 질문이 스스로 생기기도 하면서 맘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가리봉이나 대림동 같은 조선족과 한족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선거운동 할 때면 중국말로 유세한다. 선거운동 시작하여 3일 되는 날 구로동에서 또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날도 한 내국인이 나를 향해 삿대질하면서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왜 중국말로 떠들고 지랄이야. 미친놈들, 너희 조선족들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어지러워졌다. 어서 중국 돌아가라.”고 한바탕 욕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당하는 일이라 경험이 있어서 그토록 당황하지는 않았어도 기분이 나쁜 것만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선거운동 유세 중에 한국사회에서는 계란도 던지고 벼라 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 개인이 능욕당하는 것쯤은 정치하려면 반드시 감수해야 할 일이고 기꺼이 감내가 가능하지만 우리조선족집단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욕에 대해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로 볼 때 단일국가 단일민족을 주장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56개 민족이 더불어 살고 있는 중국과 달리 이방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중국학교에서 피부색이 다르든 언어가 다르든 다른 시각으로 보지 않고 다 포용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학교에서는 다른 종족은 물론이고 같은 민족인 북한출신과 조선족어린이들이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왕따 시키는 현상이 보편적인데 이는 모두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준 나쁜 관습이다.
결혼이민자 가족의 경우 아빠가 한국인이고 엄마가 조선족인 경우 절대다수가 엄마의 출신신분을 속인다. 학교에서 왕따 당할까봐서이다. 이는 정말 잘못된 한국사회 문화관습이다.
며칠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을 담당하고 있는 나씨가 “99% 민중은 개·돼지다. 개돼지는 짓다가 만다. 그들에게 적당히 먹을 것만 주면 그만이다. 신분제를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대한민국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고위 공무원의 입에서 이런 한심한 말이 터져 나오니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00일보 00논설위원의 발언에 의하면 고위공무원사회일수록 나씨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계속 살아왔기 때문에 양반문화에서 기인된 계급사회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철저히 계급사회이다. 명분상 신분사회는 아니지만 국민정서상 아직도 신분의식이 매우 강력하다.
한국사회가 이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바꿀 힘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오로지 자신들의 소질을 높이고 하루 빨리 주류사회에 진출하고 조선족출신정치인들이 대한민국정계에 진출하여 영략을 강화하여 힘을 보여주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출신들이 한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국 사람처럼 똑 같이 될 수는 절대 없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영원히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처럼 남의 일로 대해서는 절대 안 된다. 영원히 주인이 될 수는 없으나 주인이 되기에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덜 무시당하고 덜 차별당할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사노라면 한국주류사회 진출도 가능할 것이고 조선족출신 국회의원도 배출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족사회 힘이 스스로 장성되어 하나의 빛나는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기대해 본다. (다음호에 계속)
중국동포타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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