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월 18일, 식당을 개업한지 6개월 째 되는 날이다. 중국도 불경기이지만 안정적인 매출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으며 본점은 이미 체인점 4개 업소까지 계약을 맺었다. 또 한국의 유명백화점과 같은 인기있는 은태백화점(銀泰百貨)과 식당 등과 장기협력 계약도 체결 했다. 6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사업 확장을 크게 일군 것이다. 정말 가슴이 뿌듯하다.

그리하여 고민 고민 끝에 다시는 건설현장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막노동이 너무 싫었고 흡사 악몽과도 같았다. 마침, 그때 인천에서 배로 중국 위해(威海)를 오가며 보따리장사 하는 친구가 함께 장사를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판단력과 실행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장사에 대해서는 동물적 감각까지 겸비한 친구였다.
그는 친구한테 장사 관련 많은 것을 배웠다. "양사익우(良師益友)"를 만난 것은 그의 행운이었다. 2년 후 그 친구는 한국의 중소기업 사장의 초빙으로 절강성 녕파시에서 기업의 차장이 되었고, 그는 아들과 함께 한국화장품 무역에 뛰어들었다. 그때가 2012년이었다.
뛰어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의 한국 화장품은 신뢰도가 낮은 중국 화장품과 비싼 해외 명품브랜드를 재치고 중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한류열기와 함께 중국여성들로부터 호응이 뜨거웠다. 아들이 결혼하면서 며느리도 화장품 무역에 합류했다. 남 사장은 재미교포인 교회목사와 동업하여 화장품 마유(馬油)를 대량으로 도매 납품하고, 그의 아들은 설화수, 후, 오휘 같은 다른 브랜드 화장품을 도매를 담당했다. 그 시절 한국화장품은 회사에서 출고하기 바쁘게 다 팔렸다. 몇 년간 한국 화장품이 중국시장에서 호황을 누리면서 나 또한 사업의 단맛을 알게 되었고 돈도 적잖게 벌었다.

남 사장에게는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찾을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아들과 함께 상해로 출장을 갔다가 한인이 경영하는 ‘한국숯불고기집’에 식사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1000㎡ 되는 식당에는 싱싱한 나무와 화초가 공원처럼 무성하게 자라고 기암괴석에서 폭포가 떨어지고 연못에서는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더운 한 여름인데도 입구에서는 하얀 눈이 날리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진 식당이었다. 사업이란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남 사장은 곧장 생태공원 식 한식당을 시작하기로 했다. 1000㎡이상 규모로 된 가게를 오픈하려면 적어도 200만 위안이 필요했다. 조카는 위해에 있는 아파트를 팔기로 하고 그는 대련에 있는 집을 팔기로 하였다. 아내는 집을 팔아 장사하면 안 된다며 펄펄 뛰었다. 그러나 이미 미치다시피 된 부자를 이기지 못했다. 다만 장소 선택이 중요했다. 여러 곳의 투자환경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들은 절강성 이우시에 투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우시는 세계에서 제일 큰 소상품시장이 있고 경제 유통이 빠르고 한인과 조선족이 각각 2만 명씩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업을 할 때는 운영자금 활용에 있어서 테크닉이 필요하다. 사업가는 타인의 돈을 잘 이용하고 또 잘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인테리어 업체와 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들과 마지막 결산을 할 때 지불할 금액의 20%를 천천히 지불하여 식당 운영 자금 난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사업장이 대형인 만큼 직원모집도 중요했다. 인테리어시작과 동시에 종업원들을 모집했다. 광고를 하자마자 80여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중국에 조선족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조선족을 한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기업이기 때문에 응모했다고 했다. 그 중에서 40명을 뽑아 교육을 시켰다.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언어와 문화적 소통이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높은 연봉을 주더라도 한국어 한국문화에 박식한 현지인 한 명을 경리로 초빙하고 그를 통해 종업원을 관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상벌(賞罰)이 분명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임직원을 관리하도록 했다.
2016년 8월 18일, 드디어 식당은 문을 열었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려 식당에 들어서면 중국 남방에서는 볼 수없는 흰 눈이 날리고 기암괴석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가 더없이 청아하다. 연못에서는 마치 물안개 같은 몽롱한 연무가 피어오르고, 초승달 같은 다리 밑 연못에서는 금붕어가 예쁜 고기비늘을 번쩍이며 헤엄을 치고 있다. 푸른 대나무와 관음죽, 대나무야자, 산세베리아 등 여러 종류의 화초와 관목이 테이블사이에서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쾌적한 어린이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손님들은 자연의 생태를 감상하며 노릿노릿한 삼겹살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처음에는 홍보가 부족하여 손님이 적었지만 이우시 TV방송국을 찾아가서 방송 광고를 요청하자 두 명의 MC가 식당을 취재하고 일주일 동안 방송을 내보냈다. 중국 돈으로 2만 위안의 비용이 들어갔다. 그러나 TV방송 광고는 매출이 2배로 껑충 뛰어 오른 기대 이상의 높은 효과를 불러왔다. 사업에서 홍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이 먼저 제안했다.
“우선 절강성 동양시 지점에서 가장 큰 공간을 임대해 줄게요, 우리와 함께 운영하지 않을래요? 인차 계약을 체결하지요.”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신규점포 입지 대상이었다. 거절하면 식당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호박이 덩굴채로 굴러들어 왔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고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 장사는 별 볼일이 없었다. 남 사장 부자가 흔쾌히 대답을 하지 않았더니 12월 30일 까지는 꼭 답을 달라고 하였다. 그들과 협력을 하면 식당의 비전과 희망이 보이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먼저 찾아 가면 그 까다로운 조건을 개변시킬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고심 끝에 남 사장은 그들이 다시 찾아 올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위험이 클수록 이익도 증가 하는 법이다. 자기네 식당이 제일 유력한 후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고, 그들이 꼭 찾아오리란 확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의 아들과 아내는 무작정 기다리다 절호의 기회를 놓일 수 있다며 안절부절 못했지만 남 사장은 3일만 더 기다리자고 했다. 은태백화와의 협력하는 목적은 많은 투자자들을 흡입하기 유리하고, 높은 광고비를 절약할 수 있으며 무궁무진한 손님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 하루하루 바질바질 타들어가는 마음을 어떻게 형언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였다. 12월 29일 오후였다. 은태백화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이튿날, 양쪽에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약서를 마침내 체결하게 됐다. 그리고 은태백화가 어디서 개점하더라도 협력업체로 함께 하자는 장기계약서도 체결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불고기 설빙점도 더 큰 비전을 갖고 앞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남 사장은 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에서 내리자 상쾌한 추위가 얼굴을 스쳤다. 일 년 중의 가장 추운 계절이지만 벌써 봄의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