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선 르포] 그해, 잊지 못할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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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선 르포] 그해, 잊지 못할 추억들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7.01.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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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도꾜 시교에 자리잡은 목조로 된 2층 아파트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도 창문이 부르르 떨리고 옆집의 말소리는 물론 침대가 삐꺽거리는 소리까지 간간이 들려온다.약한 지진에도 집과 전등이 마구 흔들려 놀란 사슴처럼 문밖까지 뛰쳐나와 주위를 살펴본 적도 있다.

가로등 불빛을 빌어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용이는 이불을 머리위까지 당겨쓰고 모진 애를 쓰며 잠을 청했다.
새벽 4시에 신문배달을 나가야 한다.

따르릉...
둬시간이나 잤을까 탁상시계에서 먼저 알람이 울렸다.이제 몇분이 지나면 머리맡에 놓은 시계에서도 알람이 울릴 것이다.
책각책각...
고드로운 초침소리가 귀가에서 들려온다.마치 적진 앞에 매복하여 돌격명령을 기다리는 전사처럼 숨을 죽이고 한초 한초 기다린다.
이윽고 따르릉...
귀청을 때리는 알람소리가 이번엔 머리위에서 울려터졌다.
용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손더듬으로 알람들을 꺼버리고 전등을 켰다.

▲ 저자 박명선, 당시 살고 있던 지역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다
자그만한 화장실안에 그래도 가스로 몇분이면 물을 덥힐수 있는 온수설비가 장치되어 있어 다행이다.여기에 온 후부터는 목욕을 잘 하지 않는 중국사람들의 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는 일본사람들의 쓴웃음을 당하고 싶지 않아 샴푸,린스,보디숖도 향이 좋은걸로 사놓았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방에 들어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따뜻한 이불안의 온기에 한참 몸을 녹이고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침은 뭘 먹을까?알바를 끝내고 역전 우동집에서 뜨끈한 우동 한그릇 사먹을까?
용이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고 집문을 열고 아래웃집 소통이 잘 안되는 좁다란 층계를 내려 밖에 나왔다.
1월의 새벽 4시전은 아직 어둡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행인이 하나도 없는 큰길에는 멀거니 가로등만 눈을 깜빡이며 어둠을 밝혀준다.
일본정부에서 발급한 재류자격외활동허가서에는 하루에 4시간으로 알바가 규정되어 있다.저녁 5시부터 11시까지 여섯시간동안 하는 레스토랑 알바가 성차지 않아 겨울방학을 이용해 오늘이 첫날인, 시급이 높은 신문배달 알바를 구해놓은 것이다.
-내가 알바를 몇시간 하는 걸 너희들이 나의 뒤를 쫓아다니며 알아내겠냐?
용이는 피씩 웃으며 어둠이 깔린 아스팔트길을 힘차게 신문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하요 고자이마스."
"오하요."
관리원 엔도가 반갑게 맞아준다.
작은 신문지사는 인쇄냄새가 물씬 풍기는 각 신문사의 신문들로 빼곡히 사무실을 메웠다.
"자,먼저 광고지를 신문안에 껴넣읍시다."
채색으로 인쇄된 광고지들이 눈길을 끌었다.명배우며,인기영화며,핸드폰이며,디지텔카메라며...참 재밌는 광고들이다.신문들에 광고지를 다 껴넣고 한집한집 분류작업까지 마치고 용이는 신문사 전용자전거에 신문들을 실었다.며칠전 면접날에 엔도가 배달 받을 집들의 주소를 차례로 하나하나씩 메모지에 적어주었다.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용이는 자전거에 올랐다.50여호에 배달될 신문을 실은 무거운 자전거가 생각처럼 잘 타지지 않았다.중국에서 가스통을 자전거에 싣고 한쪽으로 비스듬히 삐뚤거리며 타고다니던 일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단층집들은 대문안이나 대문벽에 걸려있는 우체통에 그대로 넣어주면 되는데 아파트와 상가들의 층계를 오르내리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한시간 족히 걸려서 용이는 배달을 마치고 신문사에 다시 돌아왔다.
"수고했네."
"저...아까 金××라는 집말입니다.혹시 재일..."
"네.재일조선인 집입니다."
역전에서 집 오는 큰길에서 몇번이나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받쳐입은 재일조선인 여학생들을 보았다.얼굴도 일본인이 아닌 우리 민족임이 분명했다.
용이는 낯선 일본땅에서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학생들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재일조선인이라는것을 대뜸 알아버리면 길에서라도 무슨 봉변을 당할까봐 은근히 근심하기도 했다.며칠전에는 전차에서 함께 내린 두 여학생이 무슨 말을 하는가 한참 뒤를 따라본 적도 있었다.헌데 주고받는 말이 일본어였다.우리말을 하지 않는것인가 아니면 하지 못하는것인가?

-언제 한번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봐야겠다.혹시 며칠전에 본 그 중의 어느 한 학생이 아까 김씨집의 따님일수도 있지?부모님들은 무슨 사업을 하고 계실까?중국에서 온 조선족 유학생이라고 하면 반가워 하실까?
엔도와 함께 나머지 신문들을 정리해놓고나니  6시가 되었다.팔다리가 띠끔띠끔 아파나더니 배에서 또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날은 이미 훤히 밝아있었다.두시간동안 일하여서인지 추위는 말끔히 가셔졌으나 소르르 피곤기가 몰려왔다.
-에라,우동이고 뭐고 집에 가서 한잠 자야지.
첫날 신문배달 알바를 마치고 용이는 집으로 향했다.

얼마나 잤는지 용이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문을 열고보니 전신무장을 한 순경 한명이 문 앞에 서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세요?"
"미안합니다.역서구를 관리하는 경찰입니다.오늘 아침에 서구에서 중국인의 강탈사건이 있어서..."
외국인등록을 해놓았으니 경찰이 쉽게 집을 찾아올수 있었다.
"네?전 서구 쪽으로 좀처럼 가지 않습니다.매일 동구를 왔다갔다 합니다."
학교나 알바가 끝나서 전차에서 내리면 동구를 나와 곧바로 집으로 온다.
"아,그래요?혹시 이 근처에서 수상한 사람들을 본적 없어요?"
"없는데요."
"알겠습니다.그럼..."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을 휙 둘러보더니 순경은 외국인등록증을 보자는 말도 없이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섰다.중국경찰보다 위풍이 당당하게 보였는데 생각밖으로 아주 상냥하였다.
알바시간조사를 온건 전혀 같지 않았다.
그럼 진짜 강탈사건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요즘 신문이나 TV에서 자주 중국인의 밀항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주로 복건성 일대에서 몰려온 밀항자들이다.90년대초에 유학을 온 얼마 안되는 중국 유학생들은 모두다 중국의 이메지에 먹칠한다며 불평을 토하던 참이었다.
시계를 보니 9시였다.
생각지도 않던 경찰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잠끼는 어느새 모르게 없어지고 말았다.
-쓰레기를 버려야지.
며칠전부터 버리지 못한 쓰레기 두 주머니가 있었다.하나는 도시락껍대기랑 음식찌꺼기랑 넣은 검은 비닐주머니이고 다른 하나는 쥬스병이랑 캔맥주병이랑 넣은 하얀 비닐주머니이다.오늘은 토요일이라 검은 비닐주머니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구나.

용이는 쓰레기 주머니를 들고 큰길 골목에 설치된 쓰레기통으로 갔다.파토카의 빨갛고 파란 싸이렌 등불빛이 큰길 저켠에서 번쩍이고 있다.사고가 발생한건 확실한것 같았다.
집에 들어온 용이는 냉장고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소세지를 꺼내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며칠전에 신쥬꾸 키노쿠니야(新宿 纪伊国屋) 서점에서 사온 일본어로 출판된 김현희의 자술전 하권 마지막 부분을 읽기 시작하였다.
나보다 몇살 위인데 평양외대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공작대에 뽑혀 전문훈련을 받다가 일본에서 납치해 온 일본여성과 함께 생활하면서 88서울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주기 위해 아버지역을 맡은 남성과 함께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구라파에 입국하였다.구라파에서 서아세아 몇개 나라로, 다시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시한폭탄을 지니고 탑승하였다.중도에서 도주하려다가 체포되었지만 이미 이륙한 비행기는 그만 비행도중에 폭발하였다.한국에서 사형판결을 면하고 자유인이 되어 자술전을 쓴 김현희의 사적이다.
세상에 이렇게 끔찍한 일도 있었는가?
어쩌면 30대여자가 이런 무서운 일을 저질렀을까?

토요일이면 한주간의 먹을거리를 한번에 사놓군 한다.닭앍과 닭고기가 제일 싼 편이다.여기의 배추김치는 어떻게 담궜는지 고향의 김치보다 훨씬 더 맛있다.
한참 책을 읽다가 용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전 동구 앞 광장에 큰 마트가 있는데 저녁쯤이면 도시락이나 주먹밥 같은 편이음식을 파는 코너들에서 거의 절반 가격으로 할인할 때가 많다.
지금 이 시각이면 할인 같은것은 없을 것이다.
용이는 마트에 들어가려다 말고 키노쿠니야서점에 가기로 했다.개학전에 레포트를 작성해서 지도교관한테 바쳐야 한다.
토요일 점심전이라 전차안은 여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자리에 앉은 용이는 그만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
어느 역에 도착했는지 안내방송 뒤를 이어 웬 남자들의 낮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씬쑤 콰이 똘라.(신쥬꾸에 거의 도착했다.)"
액센트가 좀 다른  중국어였다.
 
용이는 눈을 번쩍 뜨고 소리나는 쪽을 보았다.40대가 넘어보이는 노란 가죽쟘퍼를 입은 뚱뚱한 사나이와 멜가방을 가로 멘 얼굴이 해쓱한 사나이 둘이었다.유학생은 같지 않았고 그렇다고 강탈사건이라도 저지를 사람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중국 어디서 온 뭘 하는 사람들일까?혹시 저 사람들이...
갑자기 그들이 궁금해났다.이제 곧 신쥬꾸역에 도착한다.
용이는 전차문 쪽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엇저녁에 또 졌어."
"오늘 봉창해야지."
"그 옆집에서 오늘 오픈하는데 운이 좋을지..."
일본에 온지 꽤나 되어보였고 말소리를 들어보아선 남방에서 온것 같기도 하였다.
아,빠찐꼬였구나!
둘이 빠찐꼬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도꾜지역 각 역전 앞에 빠찐꼬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섰는데 가게들을 지날 때면 쫘르르 철구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를 들을수 있다.
용이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그만두었다.지인도 없는 이국땅에서 외로운 나날들을 보내지만 웬지 그들과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용이는 출입구를 나와 곧바로 서점 쪽으로 향했다.큰 전자성 앞 핸드폰 가게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스피커에서는 부드러운 선률의 노래가 울려온다. "위를 향해 걷자"라는 유행곡이었다.일본어 교원을 하면서 수업이 끝나면 일본노래도 학생들에게 많이 가르쳤던터라 여기 와서 재밌는 일본노래들을 십여수 더 익혔던 것이다.
서점 3층에서 서적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용이는 마침내 책 한권을 내려놓고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열심히 메모하기 시작하였다.
이쯤 참고하면 방학간 레포트는 작성이 마무리될 듯 하다.
-좋아.오늘은 이만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맛있는걸 좀 사가지고 가자.
용이는 1층에서 산 신곡테프를 워크맨에 넣어가지고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로 붐비는 신쥬꾸역으로 흥얼거리며 걸어갔다.   

오늘은 레스토랑 알바를 쉬는 날이다.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알바를 하는 일본인 학생들도 많아 점장이 쉬도록 배치하였다.
전차에서 내린 용이는 동구 쪽으로 가려다가 불쑥 아침에 순경이 찾아왔던 일이 생각나 서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생각과는 달리 역 서구는 동구보다 광장도 크고 높은 빌딩들도 많았다.광장 오른쪽에 있는 큰 빌딩 아래층 마크도날드 옆에 "한국물산"이라는 가게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국물산?뭘 파는 가게일까?
호기심에 찬 용이는 한국물산가게에 다가섰다.
엇?배추김치,깍뚜기,창란,새우젓,떡꾹,신라면, 너구리라면 그리고 고춧가루며...
와아!용이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 했다.작년에 아버지와 같이 위해에서 배 타고 한국에 갔을 때 맛보았던 신라면이 아닌가.맵고도 짜릿한 그 맛!군침이 꼴깍 넘어간다.내가 사는 역전부근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니.
 
가게에는 60세가 되어보이는 좀 뚱뚱한 할머니가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고 있었다.일본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그럼 재일한국인일까?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할머니가 웃으며 용이를 맞아준다.용이는 할머니의 왼쪽 옷섶에 달려있는 "申"자 명찰을 눈여겨보다가
"고춧가루 이꾸라데스까(얼마입니까)?"
하고 물었다.고춧가루를 일본어로 말하지 않고 우리말 발음 그대로 말하였더니 할머니가 인츰 "한국 유학생입니까?"하고 일본어로 되물어보는 것이다.
"아닙니다.중국 유학생입니다."
용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중국사람인데 고춧가루는 어떻게 알고..."
"네.중국에 사는 조선족입니다."
 
"아!반갑습니다."
할머니는 진짜 반가운 기색으로 용이의 손을 덥썩 잡아주신다.순간 용이의 전신에는 뜨거운 난류가 흘러퍼지는듯 하였다.
"그래 언제 일본에 왔어?"
"작년 가을에 왔습니다."
용이는 가게안에 들어와서도 좀처럼 손을 놓아주지 않는 할머니와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신할머니는 재일조선인 2세이고 남편은 조선대학 교수이며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계셨다.나보다 두살 위인 누님이 벌써 애가 둘인 가정주부라는 말에 용이는 시무룩이 웃었다.
-나도 애가 둘이면 좋겠다.
유치원에 다니는 네살 난 아들이 보고싶어졌다.
 
가게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핸드빽이며 돈지갑 같은 상품들도 팔고 있었다.
"다음주 수요일에 ××역으로 이사 가는데 거기서 알바할 생각이 없어?나 몸도 좀 불편하고 딸도 애들 때문에 오후 네시면 집에 가야 하니깐 네시부터 열시까지...시급은 1,200엔 줄테니깐."
"네,감사합니다."
용이는 허리를 굽혀 할머니에게 인사했다.레스토랑에서의 시급이 1000엔인데.
할머니는 정교하게 포장한 김치 한 봉지를 용이에게 주면서
"집에 가지고 가서 먹어보게."라고 하신다.
"감사합니다.어머니!"
용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어머니"라는 소리가 나왔다. 

용이는 할머니가 준 김치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동구에 있는 광장 앞 마트로 갔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
귀인을 만나는 좋은 날이구나!
생각할수록 재일조선인 신할머니를 만난것이 꿈 같기도 하고 할머니가 귀인처럼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래,한민족인데 어머니라 부르는게 맞지.
이것저것 사넣은 식료품주머니를 들고 흐뭇해서 집에 돌아온 용이의 머리속에는 금방 있었던 일들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기실 용이가 재일조선인을 직접 만난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일본에 와서 얼마 안되어 장인의 대외무역회사와 무역거래가 있는 우에노(上野)의 조일(朝日)빌딩 2층 조선특산물회사를 찾아가 김사장한테 장인의 선물을 드릴 때 용이는 깜짝 놀랐다.
사무실 흰벽에 커다란 북조선 국기와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일본경찰들이 습격하면 어쩔려고?...

그날 저녁 회사 근처에 있는 불고기집에서 식사하면서 용이는 김사장한테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들었다.빠찐꼬도 재일조선인이 미국에서 수입해들여 전국에 보급시켰고 조은(朝银)이라는것이 조선은행을 말하며 전국 각지에 조총련지부를 설치하여 재일한국인 단체인 한민단과 실력을 겨룸하고 있다는 등 사실들을 알았다.
-조총련?한민단?
-한민족인데 일본에서 서로 무슨 겨룸은?
역전까지 바래다주던 김사장과 헤어져 전차에 오른 용이는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하여튼 오늘은 일본에 와서 제일 뜻깊은 하루라 할수 있지!

용이는 할머니가 준 김치를 꺼내 먹어보았다.시큼하면서도 달콤하고 간도 입에 딱 맞는다.
진짜 맛있다.
누가 만들었을까?
재일조선인일까 재일한국인일까 아니면 일본인일까?
여직껏 사먹은 가운데서 제일 맛있는 김치였다.
제조상은 제일(第一)물산이고 주소를 보니 어딘가 눈에 익어보였다.혹시나 하면서 용이는 조선특산물 김사장의 명함장을 찾아 대조해 보았다.거의 비슷한 거리이다.그럼 재일조선인이 만든 김치임이 틀림없을 것이다.우에노에 있는 조선특산물회사 근처에 불고기점과 물산점들이 수두룩하였는데 모두 우리의 가게라고 하던 김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그럼 신할머니 가게에서 파는 신라면이며 너구리라면 같은 한국식료품들은 한국에서 직수입하는걸까?
재일조선인인데 어떻게 한국에 드나들수 있나?
그리고 핸드빽이며 돈지갑 같은 상품들은 또 어디서 구입해들일까?
의문표가 머리에 동동 떠오른다.
 
-오늘은 한잔 해야지.
용이는 마트에서 사온 캔맥주 하나를 뜯었다.시원한 아사히맥주가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읽었던 김현희의 자서전이 책상위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따르릉 하고 전화가 울렸다.
"오,나야.미안하지만 내일 점심에 가게에 좀 나와줄수 있어?"
신할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네,알겠습니다.어머니!"
-내일 아침도 신문배달을 해야 하기에 오늘은 일찍 자야지.
눈까풀이 다시 맥없이 축 내려앉는다.

푹 자서인지 이튿날 신문배달은 생각밖으로 힘들지 않았다.
"이젠 내가 없어도 혼자 잘할수 있겠네."
농담인지 진담인지 잽싸게 서두르는 용이를 보고 엔도가 웃으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신문배달을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좀 쉬었다가 신할머니 가게에 달려가려는 용이의 속셈을 엔도는 알리가 만무했다.
-아침은 따끈한 밥을 지어먹자.
일본입쌀은 마트에서 파는 미국이나 태국 그리고 중국 남방입쌀보다 풀기가 많아 밥향이 그윽하다.
TV는 물론 밥가마도 작년에 쓰레기통에서 주어온 것인데 깨끗하게 닦아놓으니 새것과 별 다름이 없다.혼자 사는데 굳이 새것을 살 필요가 없었다.
구수한 밥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한다.
 
닭알볶음과 김치에 한참 맛나게 밥을 먹고 있는데 이게 무슨 뉴스인가?
"어제아침 ××역 서구에서 중국인의 강탈사건으로 추정되던 사건이 판명되었습니다.용의자는 필리핀인으로 어제 저녁 경찰에 체포..."
에잇!
용이는 먹던 밥그릇을 팽개치고 TV를 꺼버렸다.
쩍하면 중국인이요 중국 어느 농촌의 볼꼴없는 정경을 몰카로 찍어 보도하는것을 보고 화가 나기도 하고 스스로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한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겠으면 그러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혼자말로 중얼거리다가 자리에 누운 용이는 어제 전차에서 만난 중국인 두사람을 괜히 의심한것이 우습고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뭐 경찰이냐?
다시 자려고 했으나 눈이 점점 말똥해진다.

-옳지.살롱에 가자.
한달에 한번씩 이발을 해야 하는데 처음엔 가격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져 살롱에 들어갈까 말까 밖에서 주춤거리다가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며 가위로 앞머리와 귀밑머리만 조금 잘라버렸다.
살롱에서 로션까지 살짝 바르고 용이는 신할머니 가게로 갔다.
가게에는 할머니와 상품도매상인으로 보이는 상고머리 남자가 값을 흥정하는지 웃으며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문옆에는 신라면과 너구리라면 그리고 돌김상자가 높이 쌓여 있었다.보나마나 한국식료품 상인이 틀림 없었다.
"어머니,안녕하세요?"
"오,마침 잘 왔어.앞으로 도움을 많이 받게 될 민사장이네."
"안녕하세요?"
재치있고 머리회전이 빨라 보이는 민사장도 할머니한테서 미리 엿들었는지 중국어로 "니호우."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한참 따스한 대화가 오가다가 결산을 마치고 "박상,수고하세요."하고는 할일이 바쁜지 인츰 자리를 뜨는 민사장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용이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한국사람인가요?"
"오,그래.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장사를 하는 한국사람이야."
용이는 한국사람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는 신할머니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문옆에 쌓여진 상자안의 식료품들을 꺼내 가게에 진열해놓고 용이는 할머니한테서 레시트를 찍는 방법을 배웠다.
역전 앞이라 가게에 잠깐 멈춰서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여객들도 많았는데 할머니와 용이를 번갈아보다가 할머니의 옷섶에 달린 명찰을 보고는 그대로 제 갈길을 다그치는 일본인들도 있었다.손님들 대부분이 김치를 사가군 하였다.
단발머리에 동그란 얼굴을 한 젊은 부인이 가게에 들어섰다.할머니의 따님이었다.
"누님,안녕하세요?"
용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반갑습니다."
웃으며 인사하는 누님이 너무 예뻤다.
한참 지나서 할머니는
"우에노에 들렸다 올테니깐 누님한테서 잘 배워게."
하고는 전화기 옆에 놓인 자동차 키를 가지고 문을 나서는 것이다.
"어머니가 차운전 해요?"
"네.우에노에서 김치랑 가져오자면 차가 없으면 안됩니다."
중국에서 사는 60세가 되는 할머니들은 어디 자동차운전 같은 생각이나 할수 있겠는가?
 
"이걸 맛보십시요."
누님이 돌김 하나를 뜯어 용이에게 준다.기름을 발라 바싹바싹하게 구운 한국산 돌김이었다.일본의 김도 맛있는데 돌김은 그에 비하면 몇배 더 맛있다.따끈한 밥에 감아먹으면 더 맛있을것 같다.
"다음주부터 가게를 잘 부탁합니다.제가 애 둘이어서..."
"네.어머니한테서 들었습니다.그렇게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누님은 일곱살 난 딸과 다섯살 난 아들을 가진 가정주부였다.아버지가 교편을 잡고있는 조선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근무하다가 몇해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과 가게를 돌본다는 것이었다.
한참 가게의 상품명과 가격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웬 뚱뚱한 남자가 커다란 토색 헝겁가방을 들고 가게로 왔다.
"주문한 돈지갑과 핸드빽을 가지고 왔습니다."
서투른 일본어였다.어디서 본 얼굴인데.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용이는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분주히 돌아쳤다. 결산을 마쳤는지 문을 나서서 여객들 속으로 걸어가는 그 남자를 보고 용이는 그제서야 짐작이 갔다.어제 전차에서 본 중국인 둘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니,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로?
"아까 그 사람 누구세요?"
용이는 다급히 누님에게 물었다.
"네.비지네스 비자로 몇해전에 일본에 왔다는 중국물산가게 주인 장(张)씨입니다.화교가족이라 하더군요."
화교가족과 비지네스 비자라는 말에 용이는 귀가 솔깃해졌다.유학비자는 일년에 한번씩 변경수속을 밟아야 하지 않는가?
 
이윽고 할머니가 다시 돌아오자 누님은 애들을 돌봐야 한다며 인츰 집으로 돌아갔다.
용이는 광장 옆 주차장에 세워놓은 할머니 차안의 물건을 가지러 갔다.차안에는 다름아닌 제일물산 상표가 붙은 큰 김치상자와 다른 물건을 넣은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는데 상자 위에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은 소녀가 웃고 있는 책 한권이 놓여있었다.할머니의 외손군들이 읽는 책인가 보였다.펼쳐보니 어릴 때 배운듯한 "금토끼와 옥토끼"라는 과문이 첫 페지로 되어 있었다.웬지 모르게 가슴이 스르르 젖어들었다.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며 할머니와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밤 10시가 되었다.
"오늘 수고했어.내일 저녁 레스토랑 점장에게 잘 얘기하게."
"네.근심 마세요.어머니."
가게 문을 잠그고 용이는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할머니를 기어이 말렸다.
 
집에 돌아온 용이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 경험한 레스토랑 알바,겨울방학사이에 하는 신문배달 알바,재일조선인 신할머니 가게에서의 새로운 알바...그리고 우에노의 제일물산이며 한국 민사장이며 어제 전차에서 만난 중국인 장(张)씨며 수수께끼 같았던 실마리는 풀렸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TV를 보면서 내일 저녁에 레스토랑 점장한테 어떻게 알바를 그만두겠다고 말할까 궁리해보았다.항상 상냥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친절하게 대해주던 점장과 사이좋게 일해온 동료들과 헤여지기 아쉬워졌다.그 중에서도 한국어학과를 전공하는 전문대생인 오오쯔끼라는 여대생과는 언젠가 노래방에 갔다가 다음번은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약속까지 해놓았다.
이튿날 저녁,레스토랑 점정한테 사정을 얘기하였다.
점장은 아주 아쉬워하며 내일 저녁까지 나와달라고 부탁한다.용이는 쾌히 승낙하였다.
 
알바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오오쯔끼가 문어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가요?"
"아니,내일 저녁까지입니다."
잠자코 있던 오오쯔끼가 다시 입을 연다.
"지금 시간이 되나요?"
"네.그럼 맥주라도 한잔 할까요?그렇잖아도..."
둘은 좀 걷다가 앞에 보이는 중국요리점에 들어갔다.11시가 넘었는데 손님들이 아직도 있었다.
야끼만두에 아사히맥주를 청했다.오오쯔끼가 기어이 青岛맥주를 마시자는 바람에 용이는 그저 웃었다.중국에서 수입한 青岛맥주이다.
용이는 신할머니 가게의 얘기를 꺼냈다.재일조선인이며 며칠후부터 거기서 일하게 된다는 등등 오오쯔끼의 기색을 살펴보며 어떤 말이 나올까를 기다렸다.
 
"재일조선인이면 어떻고  한국인이면 어떻고 또 일본인이면 어떠세요?"
"그래요?"
"전 그런건 따지지 않아요."
오오쯔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대답하는 것이다.그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오오쯔끼는 맥주를 잘 마시는 편이었다.
"사실 저의 어머니가 한국사람이거던요.그래서 한국어학과를 전공하고 있지요.졸업하면 여행업종에 취직하려고..."
오오쯔끼는 맥주 한컵을 쪽 마시더니 용이가 보라는듯이 두손으로 빈 컵을 내민다.
"괜찮아요?"
"오늘 기분이 좋네요.아참,중국에 있는 부인과 아들은 일본에 데려오지 않나요?"
"아직은 시기상조여서..."
술을 부으며 용이는 애엄마와 아들을 생각해보았다.말그대로 아직은 시기상조인가 보다.
 
오오쯔끼가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준다.일본여성으로 충분히 착각할수 있는,도저히 한국여성으로는 보이지 않는 오오쯔끼의 어머니이다.
"어머님 고향은 어디세요?"
"부모님들의 고향은 전라도라 하던데 어머닌 요코하마에서 태여났대요.후에 대학선배인 아버지와 결혼하구요."
"어머님 형제는 몇분인가요?"
"남동생이 한분 있는데 일본국적이 아니예요."
"그럼 재일한국인?"
"네.한국인인데 저보다 한국어를 못해요.물론 어머니도 한국어를 잘 못하지만."
오오쯔끼가 호호호 하고 어린애처럼 웃는다.
"외숙모는 일본인입니다.저의 두 외사촌동생들은 한국어를 전혀 몰라요.어릴 때부터 일본인학교에 다녔거던요."
"그래요?"
"그런걸 보면 재일조선인들은 자기의 학교를 갖고 있고 우리말도 할줄 알아 좋잖아요?"
"......"
남북이 갈라진 후에 일본정부에서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으로 구분해놓았다고 한다.재일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일본인학교에 들어갈수 있고 일본성씨도 사용할수 있다.반면 재일조선인은 대학까지 조선학교를 갖고있고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젠 12시가 넘었네.후에 다시 만나지요."
둘은 한참 마시다가 요리점을 나왔다.
 
그날 아침,패미리마트 길건너 아파트단지에 살고있는 재일조선인 김씨집 우체통에 신문을 넣어주고 신문사에 들렸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아파트단지 앞 골목에 세워놓은 자동차로 다가가는 한 아저씨와 마주쳤다.
둘은 서로 눈인사를 하고 스쳐지났다.허여멀쑥하게 생긴 아저씨가 이른 아침부터 어디에 갈까?참 부지런한 분이시군!
뒤돌아보니 차는 어느새 저리로 달려간다.
용이는 하얀 토요타 차를 눈여겨 보았다.신할머니 차도 하얀 토요타였다.
 
레스토랑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저녁 10시반쯤 되자 점장이 노임봉투를 용이에게 주며 오오쯔끼와 다른 애들을 불러 상을 갖추게 한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요."
용이는 미안쩍게 생각되었다.
"이건 우리 가게의 전통입니다."
간소하게 차린 상에서 연신 고맙다며 아무때나 다시 찾아와도 좋다는 점장의 말에 용이는 좋은 사람들도 많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전차안에서 여자들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거나 불룩한 바지춤을 고의적으로 여자들한테 가져다대는 치한(痴汉)들,밤이면 역전 앞에서 젊은 여자들을 꾀하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는 색정들, "바까야로"를 연신 내뱉으며 외국인을 멸시하는 망나니들이며 "중국인과 개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간판을 버젓히 걸어놓은 가게들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하였더니 면접을 보면서 중국인 유학생도 일본인 학생과 동등한 시급이라며 먼가 곤난한 점이 있으면 서슴치 말고 알려달라던 점장이었다.


새 가게는 여객유동량이 많은 ××역 홈층계를 올라와서 바로 오른켠에 위치해 있었다.
우동이며 스시 그리고 도시락 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들 속에서 한국물산이라는 간판이 눈길을 끌어 역전광장 앞에 있을 때보다 손님들이 훨씬 더 많았다.
"여기에 김치가 있네.어?깍뚜기도 있고..."
"신라면도 있잖아?!"
저녁 여덞시쯤 되자 언어학교에 다니는 유학생처럼 보이는 책가방을 멘 두 한국 젊은이가 가게에 멈춰섰다.
"어서 오세요."
용이가 우리말로 인사하자 둘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김치와 신라면 두개를 들고 지갑을 서로 들춰보더니 100엔이 모자란다며 김치만 사가자고 하는 것이다.
"괜찮으니깐 신라면도 가져가세요."
"어...미안합니다.그럼 내일 여기를 지날 때 돌려드리지요."
 
전차가 홈에 들어섰다.여객들이 홈층계를 올라왔다.가게는 삽시간에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재일한국인일까?"
"그렇겠지 뭐."
옆에서 주고받는 두 학생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재일한국인이면 어떻고 재일조선인이면 어떻고 조선족이면 또 어떤가?
문득 오오쯔끼가 하던 말이 생각나 용이는 웃으며 둘을 건너다 보았다.
둘은 신기한듯 한참 가게를 둘러보다가 자리를 뜨는 것이다.
"그래,100엔 가지고 옴니암니하지 말고 많이 팔면 돼.보니깐 한국 유학생 같던데..."
신할머니도 옆에서 웃으며 말한다.
"내일 저녁부터는 혼자 할수 있겠지?"
"네,잘해보겠습니다."


이튿날 저녁부터 용이는 혼자 가게에 나섰다.역전 kiosk 종업원복장에  朴자 이름을 새긴 명찰을 달았다.
며칠이 지난 일요일 저녁 무렵,핸드빽을 주문하려고 중국물산가게의 장(张)씨에게 전화하였다.중국에서 온 유학생이고 조선족이라 했더니 반갑다며 인츰 오겠다고 한다.한 반시간쯤 지났을까 장(张)씨가 전차에서 본 얼굴이 하얀 사나이를 데리고 가게에 왔다.
"나의 처남 陈이네.집사람이 경영하는 중국요리점을 돌봐주려고 재작년에 일본에 왔네.요리도 잘하고 青岛맥주랑 수입해들여 돈도 많이 벌고있다네.언젠가 우리 셋이서 한잔 합세."
"그러지요뭐."
용이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헌데 무슨 비자로 일본에 왔어요?"
"유학비자로 온건 아니지."
 
장(张)씨의 말투가 아니곱다.유학비자라고 깔보는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을 높이 춰세우는것인가?
하긴 빠찐꼬를 놀러 다니는 수준이니깐 그럴 법도 하겠지.
용이는 부러움과 콤프렉스 보다는 그 어떤 복수심 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못사는 중국은 돌보지도 않고 자기네들끼리만 잘 살아가는 화교들아!
"물건을 정리해야 하거던요.그럼..."
용이는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다는 듯이 문밖에 놓인 식료품들을 정리하러 나갔다.
"우리도 그만 갈게요.앞으로 잘 지냅시다."
"네..."
용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였다.
 
신할머니 가게에서의 알바는 레스토랑 알바보다 훨씬 수월하고 재밌었다.
개찰구에서 홈까지,홈에서 개찰구까지 하루에 몇천명이 드나드는 역전안에서 지금껏 웃고 떠들며 욕지거리하는 소리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술주정을 부리거나 담배를 꼬나문 여객들은 더욱 볼래야 볼수 없다.껌을 다 씹으면 껌종이에 도로 싸서 호주머니에 넣고 간혹 어깨를 부딪치면 서로 웃으며 사죄하고,전차를 바꿔타는 홈을 알려주면 연신 고맙다며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전차역 하나에서도 그 나라의 문명정도를 알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퇴근하려는데 신할머니를 잘 안다는 한 일본인 아저씨가 뒤늦게 와서 한참동안 얘기를 주고받았다.중국에 호감을 가진듯 보이기도 했지만 중국인과 한국인은 언제나 일본인보다 한 수 아래라는 차별의식이 돋보이고 일본인으로서의 선입관이 분명하였다.일반 일본인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고층인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여직껏 간직해왔던 일본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애써 바꾸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집에 와서 카렌타를 보니 내일이 음력설이었다.밥상에 빙 둘러앉은 온집 식구들이 보고싶고 음력설 문예야회프로도 보고싶다.일본에서는 음력설을 쇠지 않는다.중국에서는 음력설 문예프로제작을 위해 몇달전부터 준비하느라 인력과 물력은 물론 거대한 자금까지 소모하지만 여기서는 1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저녁이라도 고작 음악콘서트 뿐이고 새해 첫날도 별 다른 프로가 없다.
-경제가 발달한 나라가 다르구나.중국은 이 방면을 따라배워야겠다.일본을 따라잡자면 일본보다 더 절약해야 하지 않을까.
 
겨울방학이 지나갔다.
신문사 엔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용이는 마이니찌신문 한부를 가지고 그 길로 학교에 가는 전차에 올랐다.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는 신문배달알바도 경험했을라니 그 어떤 일이든 못해내겠냐 하는 자신심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재일조선인 김씨집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한것이 아쉽게 생각되었다.
아침 전차안은 사람들로 빼곡하였다.손잡이를 쥐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이걸 놔요."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한들이 많은 차안이라 얼결에 사람들 틈새로 보니 하얀 저고리 까만 치마 차림인 여학생 둘이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지 않는가?
"자이니찌 죠센진(재일조선인)이다. "
석쉼한 목소리를 가진 중년남자가 소리쳤다.
곁에 서있는 사람들은 상관 없는 일처럼 모르는척 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연세 있는 분이 무슨 짓이예요?최저야 최저."하고 쏘아주었다.
그 중년남자가
"당신도 재일조선인인가?"
하고 묻자 아주머니는
"저는 일본인입니다.이 애들한테 무슨 잘못이 있나요?"
하고 반박을 주었다.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해서인지 중년남자는 인츰 누글어들었다.

 

차안에서 잠깐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그 옷 괜찮아요?"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전차가 역에 도착하자 그 중년남자는 사람들을 비집고 바삐 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용이는 여학생들을 건네다보았다.
이게 뭐야?
한 여학생의 까만 치마가 칼인가 먼가에 찢겨있었다.그 여학생은 울분을 가까스로 참으며 옆의 여학생과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훔쳐보고 용이는 대뜸 알아챘다.
-그애들이었구나.어쩐담?다가가서 우리말로 괜찮은가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그 다음 역에 도착하자 여학생들은 전차에서 내렸다.
용이는 찢겨진 치마를 한손에 붙들고 멀어져가는 여학생들을 전차가 떠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제발 다시는 이런 봉변을 당하지 말기를.그 일본인 아주머니의 말처럼 너희들한테 무슨 잘못이 있나?
학교 휴식시간에 용이는 아침에 신문사에서 가지고 온 마이니찌신문을 꺼내 펼쳐보고 와뜰 놀랐다.
북조선 미사일실험 사진과 오사까 지하철에서 재일조선인 여학생의 치마저고리가 찢겨진 사건이 제1면에 실렸다.
아까 눈앞에서 벌어졌던 광경이 선히 눈앞에 다시 떠올랐다.
아,하얀 저고리 까만 치마!
먼가 예상할수 없는 불안감이 용이의 머리속에 몰려왔다.
 
"미사일실험을 그만두라!"
"재일조선인은 북조선으로 돌아가라!"
조총련과 조은(朝银)에서 북조선에 송금하여 미사일실험을 부추킨다며 미사일실험목적이 일본열도겨냥이 아닌가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일본인들이었다.그만큼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경계와 기시도 날로 엄중해가고 있었다.
 
새 학기를 맞아 누님의 딸도 조선학교에 입학하였다.학교는 가게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느날, 교대하러 가게에 갔더니 누님이 시댁에 가서 시부모들에게 저녁상을 준비한다며 외손녀가 하학하면 가게에 올거라고 할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다.얼마 안 되어 "할머니!"하며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은 소녀가 뛰어들어왔다.
소녀의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범벅이었다.
"어찌된 일이냐?"
"학교에서 역전까지 오는 길에 일본애들이 흑흑..."
소녀는 엉엉 울어댔다.
"아이구 이걸 어쩌면 좋아."
할머니도 낙루하시다가 손님들이 볼까봐 손수건으로 소녀의 얼굴을 닦아주고는 인차 소녀를 데리고 가게를 나갔다.
-저 어린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할머니 집에 전화를 하였다.누님이 인차 와서 외손녀를 집에 데리고 갔다며 맥없이 말씀하시는 할머니에게 용이는 몇마디 위안의 말을 하고는 전화기를 놓았다.
오늘은 왜서 이렇게도 시간이 가지 않을까?
귀에 익은 역전안의 안내방송은 마냥 부드럽게 들려오고 평화로운 인파도 여전처럼 오가는데.
"김치와 떡국 주세요."
손님이 가게에 찾아왔다.
"네."
용이는 김치와 떡국을 kiosk 전용봉투에 넣어드리며 손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신할머니 오늘 안나오셨네요."
"네.아까 퇴근하였습니다."
얼마나 낯 익은 얼굴인가.

재일조선인 김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하얀 토요타 차주인이었다.
용이의 옷섶에 달린 명찰을 보고
"박상은 오늘 처음 보는데..."하며 아저씨는 구면인 사람이라도 만난듯이 우리말로 허물없이 다시 묻는다.
"네.여기서 알바를 합니다."
"그래요?"
옆에 한 여자애가 서있었다.아니 저 애가?그럼 두분이...
"신할머니를  잘 알고 있습니다.그럼 수고하세요."
여자애도 우리말로 "수고하세요."하고 용이에게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들이 옷차림에 아버지와 같이 아무런 일도 없은 듯이 개찰구 쪽으로 걸어가는 여자애를 용이는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이튿날 아저씨의 말을 꺼냈더니 할머니는 "그 사람 여기 지부의 책임자라네.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아침부터 회의할 때도 있어."라고 하신다.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에 다니는 딸 둘을 두고 있는 김아저씨는 어느 조선중학교 교원인데 할머니의 남편 이선생님의 제자라는 것이다.
"아,그렇군요."
이선생님을 한번 만나뵙고 싶다고 하자 주말에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할머니는 웃으시며 선뜻이 대답하는 것이다.

며칠이 지난 주말,용이는 어느 불고기집에서 이선생님을 만났다.
이선생님은 도쿄 고다이라(小平)시에 있는 조선대학 역사학부 교수였다.희슥희슥한 머리에 자애로운 모습인 이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에서 온 조선족 유학생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아주 반가와하셨다.
맛있는 불고기를 권하시며 말씀하시는 이선생님의 이야기를 용이는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경상도와 전라도일대에서 태여나 한국에서 자라서 일본에 건너온 재일1세와 일본에서 태여난 그 자녀들인 재일2세까지는 북조선에 대한 강렬한 민족심을 가지고 있지만 재일3,4세 는 북조선에 대한 소속감과 감정이 거의 없으며 민족차별이 강한 일본사회에서 취직과 결혼을 계기로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한국국적으로 바꾸려는 등 생활상의 편리함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의 얼을 잃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재일1세들이 조선학교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진짜 감동 그 자체였다.환갑잔치 비용을 선뜻히 내놓는 노인이 있었는가 하면 결혼자금을 흔쾌히 기부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한다.이렇게 세워진 학교가 앞으로 문을 닫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고 이대로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유엔에서도 논의주제로 되어 조선인학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도록 여러번 권고했다지만 끔쩍도 하지 않는 일본정부이다.
경제와 교육의 대국이라 불리우고 세계 각국의 유학생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 민족교육을 정치와 연결시키려는 일본정부의 가리워진 또 하나의 모습이다.
TV토론방에서 열기를 올리던,일본이 더 큰 대국으로 성장할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것이 아닐까?
 
기실 몇달 사이에 본 일본인들은 많이 알면서도 겸손하고 사업에 헌신적이며 근검절약의식이 강하다.상대방을 존중한고 만나는 사람마다 깍듯이 대하며 예의가 바르다.동료들은 서로 협력하며 작은 일도 확인을 거듭한다.물가가 높다지만 수입에 비하면 그렇지도 않다.치안유치도 잘 되어 있어 범죄행위가 드물다.일자리가 많아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일손을 놓기 싫어 알바를 하는 퇴직한 사장님들도 있다.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힘이 솟구친다.각종 보험이 건전한 사회이어서 작은 나라이지만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년에 일본에 와서 일본노래들도 많이 배웠던 용이가 언젠가 장난삼아 《나는 일본노래를 좋아한다.》라는 글을 써서 한반 일본인 학생들한테 읽어주었더니 마이니찌신문사에 투고하라며 권고한다.그것도 좋을것 같아 투고하였더니 두주일이 지나 원고료로 천엔짜리 도서권 두장이 우편으로 날아왔다.그 도서권으로 신쥬꾸 키노쿠니야(新宿 纪伊国屋) 서점에서 김현희의 자술전이랑 샀다.
-그래,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걸 써서 신문사에 다시 투고해 볼까?
봄볕이 따스한 어느 날,마이니찌신문 4면에 용이가 쓴 《외국사람이 본 일본》이라는 글이 실렸다.큰 반향을 일으켰던지 며칠후에 "재일조선인에 대한 기시는 일본인의 수치다.","외국사람이 보는 좋은 일본을 만들어야 한다."등등 내용의 대글들이 올랐다.
 
골덴위크 연휴가 지난 금요일 오후,도서실에서 레포트를 작성해가지고 지도교관 연구실로 가려는데 출입문 옆에 큰 포스터가 붙어있다."어머니 날"이라는 큰 글자 아래에 "올해 어머니 날에는 무슨 선물 드려요?"하는 빨간 글이 씌여 있었다.
아,어머니 날이구나!
요즘 많이 들어오던 말이다.그러니깐 5월의 두번째 일요일이 어머니 날이구나!
중국에 있을 땐 이 세상에 어머니 날이 있는줄도 몰랐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축복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불시에 가슴이 뭉클해났다.
중국에 계시는 어머니와 신할머니께 무슨 선물을 드릴까?
이튿날 저녁쯤에 누님이 가게에 왔다.누님의 손에 이름 모를 꽃송이가 들려 있었다.
"어머니에게 드리는 선물인가요?"
"네."
용이도 내일은 할머니한테 난생처음으로 사는 꽃을 선물하리라 속궁리하였다.

찌는듯한 해볕에 땀벌창이 되고 옷잔등에 소금물이 허옇게 배여나와 하루에도 몇번씩 샤워하지 않으면 안되는 무더운 여름에 제15회 FIFA 월드컵이 미국에서 열렸다.
스페인과의 첫 소조경기에서 한국은 두꼴이나 뒤지다가 후반전에 홍명보가 한꼴,경기종료 몇분을 두고 서정원이 극적인 동점꼴을 넣으며 2:2로 비기였다.그후 한국은 볼리비아와 0-0, 독일과 2:3으로 패하며 아쉽게도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너무나도 잘 싸운,투지가 빛나는 멋진 경기들이었다.
축구를 무척 반가워 하신다던 이선생님도 세껨 한국경기를 다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더라며 신할머니도 연신 한국팀을 칭찬하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이 차면 어느 팀을 응원하고 싶어요?"
용이의 농담 섞인 물음에 할머니는 "거야 한국팀이지뭐."하고 인츰 대답하는 것이다.한국과 북조선이 차면 하고 물어보려다가 그건 아닌것 같아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용이의 머리속에서 아직도 한국축구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7월초 어느날, 김영삼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였다는 보도가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다.

1994년,그해의 잊지 못할 추억들은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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