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시는 물론이고 문학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어렵게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국어시간에 다양한 작품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정말 신기했던 것이 어릴 때와는 다르게 작년 즈음부터는 문학을 읽으면 ‘공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마치 내가 작품 속 인물이나 화자가 된 것처럼 같이 기쁘고 슬프고 행복했다. 나에게는 이것이 새롭고 흥분되는 경험이었고, 수업 시간에 배우는 작품 외에도 관심이 가는 다양한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알게 된 “시인 동주”라는 책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시에 대한 갈증은 있지만 두려워 선뜻 발을 들이지 못했던 나에게 윤동주의 일생과 함께 그의 시를 소개한 이 책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사실이 있어서 놀랐다. 나는 시인이라는 직업이 정말‘시인’으로서의 활동만 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물론 시인 활동만 하는 분도 있겠지만, 윤동주와 그의 친구들은 폭넓은 공부를 하고, 다양한 꿈을 꾸면서 문학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곧 그들에게 있어서 문학은 별개의 문화생활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였던 것이다. 자신의 직업을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인생이 곧 문학이 된 그들이 멋있어 보였다.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그저 한 시인의 생을 소개한 일대기에 불과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그렇게 전해지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그의 생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들을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그의‘정신’을 현대인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보통 사람들이 윤동주 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 순수, 저항, 부끄러움... 책을 읽고 그 중 나는‘부끄러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문제이다. 이러한 생각들 속에서, 책에 나오는‘쉽게 씌어진 시’라는 시는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시인이라는 것이 자신의 천명인 줄은 알지만,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너무도 쉽고 편하게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의 모습에서 ‘겸손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저 부끄러워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가지 자아, 곧 부끄러운 자아와 반성적 자아가 화해하며 악수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한 발짝 물러나 그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며 끝없는 자아성찰을 한다.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부끄러워야 할 일에 부끄러워하는 것. 화려한 수식어 없이 그의 시는 담담한 어조로 나의 가슴속에 이 강렬한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 역시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나는 떳떳한가? 지금 이렇게 편하게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내가 잘나서 가능한 것인가? 그의 겸손하고 성찰적인 시들은 자만함 속에서 눈이 먼 나를 깨워주고 나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해 주었다. 그의 시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거울 같은 존재였다.
그의 생과 시에서 내가 감명 받은 또 다른 것은 그의 ‘저항의식’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말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던 시대에 살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감정과 내면상태를 꿋꿋이 우리말로 표현했다. 이렇게 쓰인 아름다운 시들이 비록 그가 이 세상을 떠나고 광복이 된 후에야 우리 민족에게 알려지긴 했지만, 그의 곧은 저항 정신은 지금 우리 세대에까지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 혹자는 그 당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고 자신만 간직하고 있었으니, 그가 저항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비록 겉으로 드러난 저항은 아니었지만 곧은 정신으로 꿋꿋이 자신의 마음을 우리말로 표현한 것 자체가 소리 없는 저항의 외침이었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뒤흔든 눈에 띄는 운동가는 아니었으나, 어떠한 상황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그 누구보다 우리 민족을 사랑했던 저항시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며칠 후에 시를 하나하나 다시 곱씹으며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그의 진솔함과 강인함을 보다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다. 담백함 속에 숨은 강렬한 메시지. 이런 역설적인 모습이 윤동주 시의 매력이 아닐까. 나는 이번에‘시인 동주’를 통해 문학을 보다 더 편하게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는 시를 교과서에 나오는 학문이 아닌 누군가의 삶이나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