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문인협회 詩選]변창렬 시 '지평선' 외 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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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동포문인협회 詩選]변창렬 시 '지평선' 외 4수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6.09.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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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시의 불가결의 요소 중의 하나가 상상이다. 시는 상상으로 시적 이미지를 표현한다. 변창렬은 뛰어난 상상을 가진 시인이다. 상상의 언어를 통해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탁월한 재능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시적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런 상상은 흔히 비유(은유)와 상징, 의인화 등 표현법을 더해 자기만의 감성적인 시상(詩像)을 빚는다. 우주만물과 시공간을 넘나들며 시적 나래를 펼치는 묘미를 찾아내야 우리는 비로소 시에 내재된 시인의 감성의 옷자락을 잡고 깊이 빨려들 수가 있을 것이다. 편집자

▲ 변창렬 시인 /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지평선
 
돌고 돌아
지구는 한바퀴었어도
백두산 한나산은 떳떳이
우주중심에 솟아 있다
 
그 가운데 가로지른
한강
나만의 지평선이다
한강 하나로
태평양 대서양 이어주는
우주는 하나로 돌고 있다
 
단군 이래 발밑 끝까지
따라 온 발자국들은
하나로 꿈틀거리며 빛나고 있다
 
흩어진 모래도
뭉치면 바위가 된다
백두산에서 뻗은 한나산
뿌리 하나로 엉킨
바위자락이다
그 자락에 스치는 두루마기
햇빛으로 눈부시다
 
 
송편
 
엄마의 호미 날이 문드러져
일그러진 반달
엄마의 서러움 움켜 싸서
찌그러진 얼굴
팥 속은 검붉게 멍든
엄마의 주근깨였다
 
조각달 구석에
초가집 짓고 사는 울엄마
먼 길 갈 수 없어
초라한 밥상하나 받쳐 드립니다
엄마의 휘어진 등허리
둥글게 만들어
눈물겹게 먹고 싶어요!
 
 
가을이란 노란 것일까
 
파란 잎이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가 된다
그림자도 스스로 늘어지더니
그늘이라고 나 앞에 섰다
지나는 바람도
노란빛에 어리숙해질 때
바람은 은행잎에 매여 달려
나의 눈치 보고 있다
숨길 수 없는 푸른빛은
누렇게 미쳐도
바람은 푸른빛으로 나눕는다
은행나무사이에 열매들이
동그란 눈 되어 바라보고 있구나
눈동자에는 노란빛이 숨어 있다
 
 
미친 향기
 
노을길 따라
뻗은 것은 단순한 것이다
노을의 꼬리에는
그림자가 없다
 
꽃도 노을길 따라
그림자 흉내 내는 망신이다
잎사귀 모서리에 숨는
자존심 하나는 어처구니없어
두서없는 오솔길뿐이다
 
그 길 따라 질질 끌고 가는 것은
스스로 속고 마는 거품이다
그 거품 속에 웃는 얼굴이 있다
 
새물새물 웃을 때
조용히 젖어드는 간지러움
그것은 얄미운 뒷모습이다
 
꽃가지도 쑥스러워 몸서리치면서
남기는 향기는
나만이 익혀 둔 숨소리뿐이다
내가 미쳐도 열두 번 미치는
그것이 바로
당신 때문이란 것이다
 
 
가로등
 
빛은 언제나 뽐낸다
구석마다 스치는 빛은
기지 잎새에 숨겨져 있을 줄알겠나
 
골목길 굽인돌이에
그림자 꼬리 따라가는 빛부스러기는
지친 발자국에 스민 땀빛이겠지
 
펼치는 나팔꽃 입구에
슬쩍 어리는 숨결도
바람 모서리에 잠드는구나
 
높은 하늘은 깊은 우물로
나팔꽃 넝쿨에 드리울 때
별빛 한 톨 건져 올리면
잔잔한 고요가
사색으로 졸고 있었다
 
깊어지는 밤잠 꿈속에
혼자만 취하는 빛은
너만 나만 아니고
아리숭한 골목길도 처져 있다
 
길게 짧게 끌어당기는 빛은
가깝고 멀고
혼자만의 동영상 만들고 있다
 
 
변창렬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중국조선족문단 중견시인, 연변작가협회 회원.  국내외 문학지와 신문지상에 수십 편의 작품 발표. 길림신문 두만강 문학상, 동포문학상, 도라지문학상 등 수상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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