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 수필 51> 가방과 보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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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 수필 51> 가방과 보자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6.09.0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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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申 吉 雨 (본명 신경철) 문학박사, 수필가, 국제적 문학지 계간 <문학의강> 발행인 한국영상낭송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skc663@hanmail.net
[서울=동북아신문]나는 가방 속에 보자기를 하나를 넣어 가지고 다닌다. 책이라든지 무슨 짐을 좀 가져와야 할 경우에는 물론이고, 짐이라도 생길 것 같은 예상이 들면 보자기를 넣어간다. 그래서 가방 안에 다 들어가면 가방만 들고, 넘치면 보자기를 꺼내어 나눠 들곤 한다.

사실 가방만 들고 나가면 곤란할 때가 있다. 어느 정도의 짐은 간단히 해결되지만, 짐이 넘치면 곤란하다. 가방은 언제나 제 분량만 수용할 뿐, 몸집을 키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별수 없이 종이봉투나 비닐주머니 같은 것을 더 이용해야 하는데 그것도 문제가 있다. 종이봉투는 너무 작거나 찢어지기가 쉽고, 두세 개의 봉투에 너덧 권의 책을 넣어 들고 가보면 얼마 안 가서 어긋나곤 해서 자꾸 고쳐 잡아야 한다. 비닐주머니는 손잡이 부분이 얇은 끈처럼 되어서 잡아든 손가락이 제법 아프기도 하고, 입구가 드러나거나 속이 환히 비춰져서 물건에 따라서는 난감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보자기는 아주 십상이다. 끊어지거나 비칠 염려도 없지만, 든 손바닥도 아프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부피가 자유로워서 무슨 물건을 싸도 좋다. 십자로 묶은 한 모서리 틈으로 30㎝ 자나 화필갑(畵筆匣)이 삐죽 나와도 상관없다. 책을 네모기둥처럼 싼 한 쪽에 페트병이나 음료캔을 세워도 괜찮고, 넓적한 그릇 위에 사과나 귤 같은 것을 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보자기는 어떤 물건이라도 그 모양에 따라 부피를 잘 조절할 수 있어서 좋다. 보자기는 그만큼 융통성이 많은 가방인 셈이다.

보자기의 모양은 매우 단순하다. 재료도 대개가 네모진 평면의 천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만들어내는 부피는 가지가지이다. 두부처럼 사각기둥이다가 둥근 호박처럼도 되고, 옆으로 긴 들것이 되었다가 아래로 처진 세로 망태기나 술병 모양으로도 변한다. 좌우로나 아래위로도 바뀌고, 평평하게도 길쭉하게도 변형된다. 담을 물건에 따른 보자기의 편의성은 가방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런데, 요새 보자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질이 여러 가지로 바뀐 것만이 아니라 그 색상과 무늬 또한 다양하고 고급화되었다. 목에 두르면 스카프요, 머리에 쓰면 수건이다. 허리에 두르면 허리띠이고, 펴서 매면 멋스런 치마가 된다. 착착 접으면 손지갑이었다가, 펼쳐서 깔면 방석도 된다. 그림이나 사진을 넣음은 멋 부림이요, 명구(名句)나 필적은 정겨움을 느끼게 하는 정물(情物)이 된다. 짐을 싸면 한낱 보자기지만, 펼쳐놓으면 그대로 하나의 기념품이고 시서화(詩書畵)의 작품이 된다.
 
옛날에 지필묵(紙筆墨)을 싸던 것도 보자기요, 혼서지(婚書紙)나 예물(禮物)도 보자기로 쌌다. 신행길 보따리도 보자기로 쌌고, 다방 아가씨들이 커피를 배달할 때도 보자기로 싸서 들고 갔다. 보자기는 담은 내용을 드러내지 않게도 하지만, 싸놓은 모양 또한 맵시도 있다. 무엇보다도 편리성이 가방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요새 사람들은 보자기를 별로 쓰지 않는다. 10여 년 전만 해도 들고 다녔지 메려고는 그렇게 않으려던 책가방을 지금 학생들은 너나없이 지고 다닌다. 컴퓨터가방 같은 것은 주로 어깨에 메지만, 책가방은 거의가 짊어진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짐도 못되는 자잘구레한 지참물이나 넣는 작은 가방을 궁둥이에 닿게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가방을 필요해서라기보다 이제는 멋으로 유행으로 지고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가방은 역시 보자기보다 짐스럽다. 보자기처럼 부피를 줄이거나 늘일 수도 없고, 모양을 바꿀 수도 없다. 속에 아무 것도 넣지 않아도 처음부터 정해진 크기와 모양으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러나 보자기는 그렇지 않다. 얇은 것은 접어서 바지 주머니나 핸드백에 넣어도 된다. 필요하면 꺼내서 쓰고, 물건에 따라 짐을 꾸리면 된다. 아무리 멋이고 유행이라 하더라도, 편리성을 잘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불편한 가방만을 선호하는 것은 엇맞는 일이다. 유행이나 새 문명 추구도 좋지만, 보다 편리하고 더 나은 것을 무조건 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가방과 보자기. 둘은 똑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 생활용품이다. 비록 그 주된 사용 시기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된 관계는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를 버리고 하나만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가방 속에 보자기 하나쯤 넣고 다니는 슬기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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