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수필]입춘이 지났으니 우수경칩이 멀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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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수필]입춘이 지났으니 우수경칩이 멀소냐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6.02.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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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식 칼럼니스트
[서울=동북아신문]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입춘이 지나면 우수경칩이 잇달아 오는 것이 천체의 순리라 해마다 그 절기는 다시 반복되는 법이요 따라서 또 똑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입춘이 되기 바쁘게 농민들은 또 새해 농사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논밭에 거름을 낸다. 화학비료를 사들인다. 알곡종자를 구입하러 다닌다. 새해 농사계획을 짠다 하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무심하기 어제와 똑같은 날이건만 필경은 새해라 새해 농사준비에 농군들은 더없이 참답고 경건해진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확을 놓고 짜가는 계획, 거기에 봄, 여름 땀 흘리며 지체 없고 서두름 없이 진행되어야 할 막대한 일을 깨알같이 적어놓는다. 보다 큰 수확을 거두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계획한다.

새해 농사를 두고 농군들은 저마다 희망과 신심에 차 있다. 농군은 종래로 가을에 수확이 없을 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일 년 동안 거름을 내고 밭을 갈고 김을 매고 물을 주고 북을 돋우어주다 보면 가을에 가서 필연코 수확이 있으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이제 봄이 되면 겨우내 굳고 얼었던 땅을 갈피갈피 보드랍게 갈아 엎는다. 저 넓은 이 논 저 밭 어디라 없이 씨를 뿌리고 모를 꽂는다. 밀이며 옥수수며 벼모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그 긴긴 무더위 여름날 그것들을 가꾸노라 동이 땀 흘리는 노동의 대가도 지불한다. 풍작을 얻기 위해서 알뜰하고 세밀하게 경작한다. 제때에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김을 매고 벌레를 잡으면서 세심히 보살핀다. 이는 풍작을 담보하는 기본전제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게으른 땅이 없다”는 속담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농군들은 말한다. “남보다 더 큰 수확을 얻으려면 남보다 노력을 더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뜨끈뜨끈한 구들에 앉아 술상에서 시간을 보낼 때 당신은 추위를 무릅쓰고 논밭에 거름을 실어내고 울퉁불퉁한 논을 고루고 보를 막고 수로를 째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무그늘 밑에서 한가히 낮잠을 잘 때 무더위 속에서 농약을 치고 김을 매고 덧거름을 주고 북을 돋우고 밭 가위나 논두렁의 풀을 쳐준다. 수확의 토대는 심혈, 땀, 지혜, 분투로 이루어졌다. 수확은 근면하고 힘을 제 곳에 쓰는 농군한테 속한다.

땅은 거짓이 없고 정직하다. 무엇을 심으면 무엇을 어김없이 낳게 하고 땀 흘려 노동하고 가꾸어 공들인 만큼 크고 작은 열매를 갖가지로 맺는다. 내가 얼마만한 힘을 들이고 땀 동이를 쏟고 심혈을 쏟았으면 그만큼 보상해준다. 준 것만큼 받을 줄 아는 땅은 거짓 없이 정직하다. “네가 나의 땅거죽을 얼리면 나는 너의 배 가죽을 얼린다”는 속담도 있다시피 진실한 노력, 진실한 사랑을 투입해야만 진정한 수확을 안겨준다.

땅은 수확을 얻기 위해 고통을 이기고 농군은 곳간을 채우기 위해 고뇌를 이겨야 한다. 오직 쉼 없이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만 부단히 희망을 수확할 수 있다.

입춘이 새 시작을 다그치는 것은 농군에게서만이 아니라 해 아래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서다. 새해가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희망의 씨앗이라면 입춘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씨앗을 뿌리도록 알려주는 파종기이다. 일년지계는 봄에 있다는 말도 있는바 입춘은 곧 봄의 시작이다. 그러니 자연히 우리에게는 농사의 시작이요 사업의 시작이며 배움의 시작이요 사랑의 시작을 의미한다. 매 사람에게는 다 자기의 ‘경작지’가 있으며 그것은 오직 자기만이 경작할 수 있는 자기만의 소유로서 자기를 내놓고는 그 누구도 그것을 대신 경작해줄 수 없으며 따라서 누구도 그 수확을 미리 짐작할 수 없다.

이밖에 이미 ‘경작지’를 잃은 사람은 애써 그것을 되찾아 가꾸어야 한다. 배움을 버린 학생은 다시 학교를 찾고, 사업을 버린 사람은 다시 일터를 찾고, 꿈을 잃은 사람은 다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입춘이 지났으니 우수경칩이 멀소냐!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일분일초를 아껴라. 일분일초는 곧 사라지고 없어지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 속에 그 어떤 노력한 흔적들을 남긴다. 시간은 쓸모 있는 측정수단이지만 부여하는 만큼의 가치만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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