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 수필44> 말과 소와 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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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 수필44> 말과 소와 개와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6.02.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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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申 吉 雨 (본명 신경철)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국제적 종합문학잡지 계간 <문학의강> 발행인 한국영상낭송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마차를 끌고 가는 말에게 주인이 채찍으로 한 대 때렸다. 그러자 말은 놀라서 달렸다. 주인이 채찍질을 하지 않자 말은 스스로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주인은 연거푸 말에게 채찍질을 하였다. 말은 쉬지 않고 더욱 열심히 앞으로 달려갔다. 주인이 계속해서 채찍을 휘두르자 말은 콧김을 하얗게 내뿜으면서 정신없이 더욱 빨리 달려갔다. 채찍을 맞을수록 말은 더욱 빨리 달렸고, 주인은 그럴수록 채찍질을 자꾸 해댔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지친 말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달리기만 하니? 힘들면 중도에 천천히 가지."

   그러자, 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달리지 않으면 맞아 죽게 생겼는데 달리지 않을 수 있소?

        더구나 주인은 내가 오래 잘 달리는 줄을 잘 알고 그러는데."

 

      2.

   우차를 끌고 가는 소에게 주인이 채찍을 갈겼다. 소는 움찔 하고는 몇 걸음을 조금 빠르게 걷고는 다시 처음의 속도로 걸었다. 그러자 주인이 연거푸 두세 대 채찍질을 하였다. 소는 역시 몇 걸음만 빠르게 걷고는 여전한 속도로 걸어갔다. 주인이 채찍을 계속해서 내리쳐도 소는 얼마만큼만 빨리 걷고는 곧 제 속도로 걸었다.

   내가 소에게 물었다.

   “너는 때리는 데도 왜 달리지 않니? 그러니까 자꾸 맞지."

   그러자, 소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때린다고 달려가면 어떻게 목적지에까지 갑니까? 그러다가는 중도에 쓰러지고 말지요.

      주인도 내가 달리지는 못해도 오래 잘 걷는 줄을 잘 알게 되면 때리지 않을 테지요."

  두어 차례 때려 본 주인은 채찍질을 그만두었다. 다만 한참을 가다가 가끔 한 번씩 채찍을 들었고, 그것도 싫으면 ‘이랴’ 소리만 쳤다. 그러면 소는 역시 조금 빨리 가다가 여전히 제 속도로 걸어갔다.

 

      3.

   썰매를 끄는 개들에게 주인이 ‘이랴’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개들은 정신 없이 달려나갔다. 개들은 주인이 한 번도 채찍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길게 혀까지 빼고는 헉헉거리며 끝까지 달렸다. 목적지에 도착하여서는 지쳐서 이리저리로 쓰러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개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힘들여 달리니? 그러다가 중간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쩔려고… ."

   그러자 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때린다고 달리고, 안 때린다고 천천히 가나요? 어차피 할 일이니까 열심히 하는 것뿐이지요.

       더구나 주인은 우리들이 때리지 않아도 언제나 열심히 달리는 줄을 잘 알고 있어서, 때리지 않고 소리로만 일러주는 것이지요." 

      4.

   나는 말과 소와 개가 다 같이 짐차를 끌고 가면서도 서로 살아가는 것이 같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맞춰 인간에게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인간세계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도 이와 같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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