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최근 파룬궁조직은 또 ‘삼퇴(三退: 공산당‧공청단‧소선대에서 탈퇴)의 숫자를 조작하고 있다. 이미 몇 억이 되는 사람이 '퇴출하였다'느니, 지금도 매일 몇 만 명이 '퇴출한다'는 등 끊임없이 숫자 부풀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이런 놀라운 소식들을 접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애썼다. 사이비종교반대지원자로서 나는 몇 년 동안에 이미 전화(转化)한 파룬궁수련자들을 수없이 취재하였다.
아래 글은 이런 직접 ‘삼퇴’를 경험한 자들을 취재한 기록들이다. 나는 글을 수정하지 않는다. 나는 설득력 있는 진실의 힘을 믿는다.
집이 광주시 강남대로에 있는 황위중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1999년부터 수련을 하였다. 2005년부터 이홍지는 우리들더러 ‘삼퇴’를 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모순이 됐다. 왜냐하면 이홍지는 처음부터 파룬궁수련자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성명하였는데 왜 지금에 와서 ‘삼퇴’를 하라고 하지?……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파룬궁사이트에서 ‘삼퇴’를 하라는 많은 문장들이 발표되었고, 이홍지도 경문을 읽듯이 요구해 왔기에 나와 기타 학도들은 ‘삼퇴’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나부터 ‘퇴출’을 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더러 ‘퇴출’하도록 권유하였다. 그러나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나 이웃들은 모두 내가 사람들을 설득하여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어리석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 후에 파룬궁조직은 또 남을 대신하여 ‘퇴출’해도 되고, 가명으로 ‘퇴출’해도 되며, 죽은 이를 대신하여 ‘퇴출’해도 된다고 꼬드겼다. 나는 소위 ‘원만(圓滿)’을 위해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친척, 그리고 이웃들의 이름을 바꾸어 ‘삼퇴’를 하였는데 모두 100여 명이나 됐다. 어느 하나도 당사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
“내가 ‘삼퇴’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여러 가지 장벽에 부딪혔다. 후에는 할 수 없이 음모궤계를 꾸몄다.” 예전에 심천에서 보험회사에서 일했다는 장상모는 자신의 ‘삼퇴’ 경력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먼저 나와 세상을 뜬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퇴출’시켰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권고하여 ‘퇴출’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늘 질책을 당했고, 아버지와 엄마, 친척, 동료들은 한 명도 퇴출시키지 못했다. 후에 ‘방법’ 하나를 생각해 냈는데 보험회사의 고객설문지 문서에 ‘삼퇴를 동의한다’는 네 글자를 적어 넣었다. 자신의 고객들이 자세히 보지 않거나 혹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삼퇴를 동의한다’고 여겼다. 이렇게 하여 나는 ‘성공적’으로 200여 명의 ‘삼퇴’ 명단을 만들어냈다. 그때 나는 자신의 총명한 처사에 득의양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비열하기 짝이 없었다.”
파룬궁에 십여 년간 빠져있던 집이 양서현에 있는 온화생은 이렇게 서술했다. “나는 이홍지가 말하는 ‘삼퇴’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까봐 두려워서 ‘삼퇴’를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 자신만을 ‘퇴출’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뜬 이웃집 종지권과 학교를 다니지 않는 조카의 이름을 ‘심하’로 바꾸어 ‘퇴출’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권유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까봐 겁나서이고, 경찰에 고발을 당할까봐 두려워서이다.”
호남 상담의 왕상우는 웃으면서 자신이 왜 ‘삼퇴’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였다. “나는 이홍지의 말을 믿었다. ‘삼퇴’를 해야만 장래에 정법(正法)이 끝난 후에 기회가 생겨 남겨져서 새로운 우주에 들어갈 수 있으며 도태되지 않고 형상과 영혼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평안’이라는 가명으로 ‘퇴출’하였다.” 그러나 그가 친우들에게 ‘삼퇴’를 선전하였을 때 조소만 당했을 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권유하여 ‘삼퇴’를 했는데 몇 사람 설득하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정신병자라고 수도 없이 욕을 먹었다. 가도의 사이비종교 반대 지원자들이 집을 찾아와서 말렸다. 그들과 쟁론할수록 이유가 성립되지 않아 나는 할 말이 궁해졌다. 결국 나는 파룬궁에서 빠져 나오게 됐다.”
집이 심천 뤄후 황배령에 있는 장위조는 자신의 ‘삼퇴’ 경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캐나다에 있고 동생은 홍콩에서 경찰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나는 해외와 연락이 많았고, 파룬궁에 심취해 있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이홍지의 요구에 따라 ‘진상’을 얘기하고 ‘삼퇴’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부모 형제들은 모두 나더러 정신병자라고 욕하면서 그 누구도 나를 본체만체하였다. 전화한 후에야 나는 ‘삼퇴’라는 것은 결국 파룬궁이 신도들로 하여금 ‘자아마취’시키는 정신적인 마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이 광동 산두에 있다는 왕치의 ‘삼퇴’경력은 다음과 같다. “나와 나의 부모는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광동 산두시의 파룬궁 지도지점의 부점장이다. 정부에서 파룬궁에 대한 제재를 내린 후 아버지는 장기간 저항하다가 결국 파룬궁을 포기하였지만, 건강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직도 깊이 빠져있고 나는 애매모호한 상태이다. 2005년 파룬궁은 ‘삼퇴’를 선전하였는데, 아버지는 ‘삼퇴’에 큰 반감을 가졌다. “이것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어머니와 따지자 어머니는 이홍지의 경문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를 예 들면서 “지금 정법의 형세가 변하였기에 우리들은 반드시 ‘삼퇴’를 해야만 정법의 형세에 따라갈 수 있다”고 설복하려 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나서 우리 가족 족보상의 명단을 모두 갖고 ‘삼퇴’를 하였다. 아버지가 “이건 분명 조작이다”라고 크게 성을 냈지만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화도 나고 원망도 하고 피로가 쌓여서 결국 병이 나서 얼마 안 되어 한을 품고 세상을 떴다.
파룬궁조직은 제자들에게 ‘삼퇴’를 하라고 요구할 때 사람을 대신하여 ‘퇴출’하거나, 이름을 바꾸어서 ‘퇴출’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으며, 또 세상을 떠난 사람을 대신하여 ‘퇴출’하게 하였는데, 실제로는 제자들이 가짜를 조작하도록 암시하고 유혹한 것이었다. 이미 밝혀진 많은 사실들과 내가 직접 취재한 결과는 이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퇴출’자 몇 억이 넘는 숫자에는 얼마나 많은 거품이 깔려있는지 상상만 해도 알 수가 있다.
출처 : 2015년 ‘8월 10일 개풍망 사이트(凯風罔), 저자 설린(薛麟)
◆ 설린(薛麟)은 사이비종교반대지원자로서 사이비종교퇴치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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