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구에서 셔틀버스로 중간 중천문까지 가고, 케이블카로 바꿔 타서 9부 능선의 남천문 앞에서 내렸다. 여기서 정상인 옥황정(玉皇頂)까지는 1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태산등정,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신중해진다.
식당 상가 지역을 지나니 대문 천가(天街)가 우뚝하다. 길가 바위에는 붉은색 한자들이 눈길을 끈다. ‘당마애(唐磨崖)’는 절벽 전체가 붉은 한자투성이이다. 문구 새기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습성이 배어 풍긴다.
사람들은 한문 글귀들을 사진 찍고 글자벽 앞에서 기념사진도 촬영한다. 한 떼의 청소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들이 저 한자문구들을 읽기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본자는 배우지도 쓰지도 않는 간체자(簡体字)시대에 그들이 어떻게 읽으며 어찌 그 뜻을 알겠는가. 자기네 글자요 자신들의 글인데도 읽을 수도 알 수도 없겠다고 생각하니 고개가 갸웃뚱해진다.
그런데 이건?
한글이다! 아, 태산의 안내 비석에 한글이라니…. 애인을 만난 것보다도 더 놀랍고 반가웠다.
“大觀峰 / Grand View Peak / 大觀峰 / 대관봉”

“대관봉 또는 ‘당마아’라고도 부르며 당나라 개원 14년(726) 당현종이 쓴 ‘기태산명’이 있다. 글자 자체의 형상이 광대하고 다채롭고 성대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동쪽에 송나라 마아석비 있고, 써쪽은 청나라 마아석비가 있다.”
중문, 영문, 일문에 이어 한글이었다. 둥근 고딕체 한글글자들이 크기가 균일하고 획이 간결하여 아주 단아하게 보였다. 하나의 안내비에 네 가지 글자로 새겨놓은 같은 내용의 글들을 동시에 바라보니, 정말 한글이 글자모양이나 문장배열로도 가장 아름답고 보기 좋다는 사실을 새삼 또 깨달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정상을 향하면서 안내비마다 살펴보았다. 청제궁(靑帝宮), 무자비(無字碑), 옥황묘(玉皇廟), 장인봉(丈人峰) 등 여러 곳의 안내비가 똑같은 방식이었다. 가장 많이 찾아오는 중국인과 서양인, 일본인과 한국인을 위한 배려였겠지만, 타국의 안내비에서 보는 한글은 감격적이었다.
이 방식은 공자와 맹자의 유적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었다. 대성전(大成殿)과 공자묘(孔子墓), 맹부대당(孟府大堂)의 안내판에도 4가지 글자로 새겨놓았다.
3박4일 동안 태산을 걸어서 오르내리고, 황하(黃河)를 부교(浮橋)로 걸어서 건너 오가고, 공자와 맹자의 유적들을 돌아보면서도 감동했지만, 곳곳에 세워놓은 안내비 속의 한글은 내 망막에 강한 영상을 남겼고, 그 감동도 내내 나와 동반하였다.
문자가 있는 나라는 문명국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한 민족은 살아있다.
나는 태산을 오르면서 우리 한글의 자랑스러움까지 만끽할 수 있었다.
한글은 늘 반갑고 떨림으로 다가오는 연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