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해란강닷콤은 지난해 한국언론재단 후원으로 진행된 <재중한국인이 보는 조선족사회> 기획계열보도에 이어, 올해는 제2탄으로 <재한조선족이 보는 한국사회>기획 계열보도를 시작한다. 오랫동안 준비하여 왔고, 그 결과물로 정인갑 교수의 인터뷰를 첫 기사로 싣는다. 서로 간의 비교를 통하여 한국과 조선족사회의 이해와 존중과 교류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상호 발전에 기여하여 윈-윈 방식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본 계열 기사내용은 단지 인터뷰 대상자의 개인적 관점이며 해란강닷콤의 취지와는 다를 수 있다. 해란강닷컴 편집자 주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조선족인구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40-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재한조선족 중 학력이나 경력이나 학술적 배경 등을 종합하여 보면 아마 제1인자로 정인갑(郑仁甲.78)교수를 꼽을 것이다.
북경대학 중문학과 졸업, 중화서국 편심, 사전부 부장, 청화대학교 중문학과 객원교수, 자전, 사전 편찬, '경전석문색인', 중국 고전 산문집 주해서인 '고문관지(古文觀止) 역주' 등 논문과 “2000년 신한국”(김영삼), ‘나의 부친 등소평’(모모), ‘명성황후’(유홍종), ‘郑梦准寄语’(정몽준) 등 번역책 다수 출판, 칼럼 400여 편을 발표하였다. 정인갑 교수와의 인터뷰는 오전 일찍한 시간대에 구로동의 깨끗하고 조용한 한 다방에서 있었다.
정인갑 교수는 요녕성 무순시에서 출생하여 5년간 군부대 생활을 하다가 1976년 연변문예 잡지사에 입사, 편집으로 있었다. 그해 있었던 첫 대학입시에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였지만 31살 나이로 시험에 참가하였다. 당시에는 입시 합격된 입시생만이 신체검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서 여러번이나 해당 부문에 찾아가서 알아보았으나 명단에 이름이 없다기에 실망한 채 편입에 몰두했다고 한다. “아마 시험출제가 너무 쉬웠고 입시생 또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으니 낙방했겠다”면서 자아위안 중 344점이라는 엄청난 성적표가 날아왔다. 당시 전국적으로 대학입시에 참가한 응시생은 570만명, 입학인수는 27만명, 입학율은 5%, 즉 20명 입시생중 1명만이 대학에 갈수 있는 확율, 정인갑 교수는 연변지역 문과장원으로 북경대학 중문학과에 들어갔다.
정인갑 교수는 족보정리 작업을 목표로 하고 한국에 입국했다. 2년간 인천에 거주하면서 황하문화원을 차리고 족보정리에 사재를 털어가며 2년간 분투하였다. 그 와중에 대학강사로 강의하고, 고서 번역도 하면서 때론 기업이나 단체 강의에 나가기도 했다. 현재는 특히 조선닷콤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견해는 학술, 정치, 사회 등 면에서 펼쳐졌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줄거리인즉 평민인 모모가 한 지역에 가서 기반을 잡고 지역 황제노릇을 하는 겁니다.”
정인갑 교수는 한국 학술계에 대한 평가를 이처럼 시작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번역분야에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종종 나오는 것은 아마 한국에 얼마간 체류한 지식인은 거의 경험하였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미 FTA서류 번역이다. 기가막히게도 국가적인 이 중대한 문건의 영한번역에 오역이 300곳이 넘었다고 한다. 한국에 중어를 하는 사람은 적어도 영어를 수준급 이상으로 잘하는 사람은 수만명이 넘는다. 국가적 망신이 아니겠는가?
“인천의 차이나타운 혹은 안동하회마을의 번역을 보면 만점 100점에서 50점 이하라고 말해야겠습니다. 학술에서 협소적이고 각 부분, 각 분야에서 황제노릇을 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나를 중심으로 학연, 지연, 혈연 등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어 ‘외부인’은 그 마당에서 놀기가 힘듭니다. 이러한 학술분위기는 배우려하지 않는 나쁜 풍토를 키웁니다. 내가 이 분야 황제이니 도전하는 이도 없고 나를 둘러싸고 얽혀있는 네트워크로 모든 일을 치릅니다. 프로젝트 하나를 가져오면 자기들 마당에서 서로 해먹는거지요.”
우리말로 표현하면 “裙带关系”이겠다.
“삼국사기 번역에 오역이 300곳이나 되고 목민심서 번역에 1,000여곳이나 오역이 있습니다. 6만자 되는 얇은 책 한권을 보았는데 틀리게 번역된 곳이 67곳이나 되었습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호의로 틀린 곳을 정리하여 안면이 있는 모 출판사에 보냈는데 훗날 만나서 그 사장이 대단히 불쾌하게 저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지인이 다음날 일깨워 주는 것이 그런것들은 절대로 말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재판이 되면 그 오역이 그대로 인쇄될 거고, 그건 출판사에도 손실이라고 생각했었지요.”
중국의 경우 이러한 오류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인갑 교수는 해석하였다. 중대한 과제가 나오면, 예로 중화서국에서 출간될 책이 내정되면 우선 세계적인 범위에서 1-5위 그 분야 권위자를 선택하고 순서에 따라 적임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1위 적임자가 여타 경우로 인하여 본 과제를 맡을 수 없으면 2위로 넘어가고 이렇게 최우선 순위 적임자가 프로젝트를 맡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수백년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규정에 따라 한 권 책에 틀린 것이 만자에 한곳 이상이면 불합격으로 판정되고 10 곳 이상이면 책을 폐기한다. 특히 교과서의 경우 10만자에 한곳이 틀리면 교과서를 폐기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 등 학술계는 민족감정노출이 너무나 심하고 객관성을 잃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어느 한 역사세미나에서 제가 한 발언에 10여명의 ‘준 학자’들이 깡패상을 연출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지요, 교수라는 학자들이 참석한 학술세미나라고 누가 믿겠어요?”

1989년 출장편으로 한국에 오게되면서 지금까지 한국과 20여년 인연을 쌓아왔고 지금도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체제에서 공부하고 학술하고 생활하던 정인갑 교수의 한국정치에 대한 느낌과 판단은 피부에 스쳐서 사라지는 바람같은 존재가 아니라 이곳에 정착하면서 관찰하고 느끼고 경험한 결과물인 것이다.
“한국에는 미국식 의회민주주의가 정착한 것이죠. 하지만 한국시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그 만큼 되지 않는 상황이라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깁니다. 한국의 정치를 보면 파벌싸움이 심하지요. 상대방을 부정하고, 여야가 대결하고 국민분열을 조성하고 결국은 정책에서 결단성을 잃고 비효율적입니다.”
중국의 10년 문화대혁명시기와 같다는 비유를 하기도 했다. 먼 일이라면 김두한의 “의회 똥바가지 사건”이 있고 근래에는 “전기톱 의회 등장”사건이 있겠다, 세계적으로 소문난 한국 “의회정치”인 것이다.

한국사회를 이야기 하려면 무의식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국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게 된다. 중국사람은 여유 있고 길게 생각하고 자제의식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동방이 밝지 않으면 서방이 밝을 것이다”라는 전형적인 사유방식이다.
반면에 한국은 여유가 없어 보인다. 늘 맴돌아치고 신경질적이고 직설적이고 낭설하고 자제력을 자주 잃고 탁구식처럼 서로 욕을 주고 받고, “한국은 작은 나라로서 보이지 않는 약점이 많고 중국은 대국으로서 보이지 않는 장점이 많습니다. 가게를 보면 한국의 길 양편에 가게가 촘촘이 들어섰지요. 중국은 길 양편 1/4정도에 가게가 있을 뿐입니다. 한옥을 예로 보면 처마와 방의 비례가 2:1입니다. 극히 비효율적입니다. 문살을 봅시다. 중국은 유리의 변화와 더불어 문살이 소실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오늘에도 한옥 문살을 볼 수 있습니다. ”
그 심층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국일 경우, 경쟁이 심하여 내가 개혁하지 않고 신조류에 따르지 않으면 개혁적이고 새 사물을 접수한 이들에 의해 차츰 도태되지만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낡고, 후진 것이 수천년동안 지속하여 내려올 수 있는 바탕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성이 강한 것이다.

“한국의 청탁문화 역시 개변되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청탁에 있어서 즉흥적이고 결과 절대주의이며 노골적이지요. 청탁할 일이 있으면 사나흘 전, 또는 하루전에 하거나 당일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사 제의하고 신세를 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핑계 대고 식사예약을 취소할 수도 있고, 아예 먼저 신세를 진후 ‘훗날 잘 모시겠다’고 하고는 그런 일 없었던것처럼 외면하는 이도 있지요. 청탁해 놓고 돈도 어느 정도 찔러주고 일이 되지 않으면 서로 원수지고 ‘내 입이 터지면 그 사람 끝장이야’ , 양심선언이다 뭐다 하면서 소란 피웁니다. ”
인간이 살고 권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부패, 또는 좋은 말로 청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요. 중국같은 환경에서 그러한 청탁이 더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권력이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더 집중되었으니. 하지만 한국은 날마다 이런 일로 국회부터 지방정부까지 떠들썩 하지만 중국은 조용하다. 청탁문화의 차이가 그 원인의 하나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한국은 현재 선진국으로 가는 도중에 있고, 선진적인 제도, 우리가 배워야 할 우수한 점이 많은 것 역시 부인하는 것 아니지요. ”
기름끼 흐르는 흰 입쌀밥에 돌 하나 섞였다고 합시다. 맛이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계열 취재는 더욱 진실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글 육삼 / 사진제공 정인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