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숙 실화]두만강 엘레지(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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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숙 실화]두만강 엘레지(悲歌)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5.08.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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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숙 수필가
 [서울=동북아신문]세상의 모든 사랑은 축복을 받아야 마땅하건만, 왜 우리 민족에게는 아직까지도 분단의 아픔과 함께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그리도 많이 겪어야 할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으며, 또 누구의 잘못으로 빚어진 것일까?!…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최대의 위기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요즘, 우연하게도 나의 머릿속에서 거의 잊혀져가던 십 년 전의 일이 떠오르게 됐다.
 
10년 전 의 어느 봄날이었다. 감기약을 사려고 약국에 갔는데 갑자기 굉장한 폭발소리가 울려옴과 동시에 약국의 출입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놀란 사람들과 함께 약국을 뛰쳐나왔다. 약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사고가 난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가는 그 곳에 가보니 현장은 노란 줄을 쳐놓아 접근금지 상태였고, 땅바닥 한 곳에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가녀린 여자가 대충 이불에 덮여 있었다. 한참 있으니 구호차가 와서 그 여자를 싣고 갔다.
 
이틀 날, 나는 파출소에 학원에 다니는 한국인들의 거주등록을 하러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날 구호차에 실려 간 여자는 탈북자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조선족이라고 했는데 조사를 하던 중 중국 글을 하나도 몰라서 의심을 하게 되면서 탈북자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족 경찰이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년 전 24살인 옥경이(가명)는 두만강을 불법으로 건너 와서 신변의 보호를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연변의 어느 시골총각에게 시집을 갔다.(느낌에 팔려 간 것 같다고 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딸까지 낳았다. 하지만 남편은 술만 먹으면 함부로 욕하고 폭행을 하였다. 그래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참고 참고 살다가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옥경이는 3살 난 딸애를 남겨둔 채 도망해 나왔다. 어떻게 심양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심양 가면 일을 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란다.
 
젊은 탈북녀들 대부분은 언어소통에 큰 문제가 없고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술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옥경이도 술집에 다녔었다. 거기서 비슷한 나이의 탈북녀 친구도 알게 되었고 서로 자매처럼 의지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고, 또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술집 웨이터와 눈이 맞아 사귀게 되었다.
 
시골남자와 결혼했던 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웨이터총각과의 사랑은 외로운 자신에게 잘해준데 대한 진정한 보답이고 사랑이었다. 옥경이는 모은 돈으로 셋집을 맡았고 웨이터총각과의 아름다운 생활을 꿈꾸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웨이터총각은 옥경이가 탈북자이고 애까지 낳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헤어지자고 하였다. 옥경이는 헤어지게 되면 남자 앞에서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냥 하는 소리겠지, 하고 웨이터 총각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친구가 옥경이가 출근하지도 않고 전화해도 받지 않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옥경이가 사는 셋집으로 가보았다.
 
문틈사이로 가스냄새가 나는 것 같아 웨이터 총각에게 급히 전화로 알렸다. 웨이터 총각은 소방대와 파출소에 알리고 옥경이가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총각이 급히 층계를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굉장한 폭발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뿌리워 나가면서 웨이터총각은 당장에서 숨지고 그 뒤를 따르던 소방대원은 피투성이 되어서 쓰러졌다. 그 아파트 맞은편 아파트의 유리창도 깨졌고 잠을 자고 있던 결혼을 두주 앞둔 옆집의 조선족 총각도 무너지는 벽에 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하지만 가스를 켜놓고 자살을 시도하던 옥경이는 죽지 않고 소방대원들에 의해 구조됐다. 병원으로 호송된 뒤 옥경이는 일체 치료를 거부하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다가 나흘 만에 한 많은 사연을 안고 꽃 같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갔다.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간 옥경이지만, 욕하고 싶은 생각보다 그 어떤 짠한 것이 심하게 마음을 자극해 왔었다. 옥경이도 좋은 환경에서 생활했더라면 자기가 원하는 사랑을 꽃피웠을 텐데…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왔건만 죽음의 길로 간 옥경이, 그깟 미련을 던져버리지 못하고 집착했던 건 또 무엇 때문일까?! 그 책임은 옥경이 혼자만이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 것은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고 우리 민족 모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후로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면서 수백 명의 탈북자들이 붙잡혀 북송되어 갔다. 중국국경을 넘어서 잡혀 가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도 끔찍하다.
 
서로가 말로만 통일을 부르짖지 말고 진정 통일로 나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듯이 풀어보아야 한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데 우리 민족의 평화의 길은 있음에도 서로 지나가지 못하는 외나무다리 신세이다.
 
앞으로도 남북 간에는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강이 작은 굽이와 소용돌이를 지나 바다 앞까지 왔다고 느낀다.
 
이 세상의 허다한 일은 심리전이다. 통일사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그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그에 해당한 대책을 찾는다면 분단은 머지않아 끝날 것이다. 통일은 기다림이 아니라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옥경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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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2015-08-27 21:05:53
참 재미있는 기사를 많이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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