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에서 온 사촌언니

[서울=동북아신문]몇 년 전에 나의 사촌언니가 평양에서 중국으로 오셨다. 사촌언니가 온다는 소식에 나는 며칠 전부터 아버지 생전에 우리가 살아온 생활을 돌아보면서 북한에 있는 혈육을 만날 수 있는, 지금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다시 한 번 가슴이 뭉클해났다.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혈육들의 생활에 대한 궁금증과 우리가 도와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고향에서 멀리 떨어 져 도시에서 살고 있는 언니와 나, 동생은 직접 산촌언니를 마중하러 가지 못했었다.
사촌언니가 오자 우리 형제들은 돈을 모아 옷도 사주고 이것저것 가정생활용품을 챙겨주기도 하였고, 현찰로 인민폐를 얼마쯤 봉토에 넣어주기도 하였다. 평양에 다녀 온 적 있는 오빠와 언니의 얘기를 들어서 그 곳의 상황은 잘 알지만 우리도 우리 환경에 맞춰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에 사촌언니가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성심껏 잘해주려고 노력하였다.
욕심은 항상 집착을 동반하게 되고, 집착은 자신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강요함으로써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사촌 언니의 욕심은 우리가 해주는 것만으로 성차지 않아 했다. 오빠네 집에 가서 통곡을 하면서 넋두리를 하더란다. “너네는 이렇게 잘 살면서 이 정도밖에 도와주지 못하냐?”라고.
그 얘기를 듣자 나는 그 동안 마음속 깊이 고이 간직해왔던 동정과 사랑에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듯 큰 충격을 받았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고, 인차 단단히 화가 났었다. "그 만큼이라도 해주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얼마를 해 줘야 만족한단 말인가?"하고 속으로 나무랐다. 그러나 마음을 눅잦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촌언니는 평양으로 돌아갈 때 짐이 너무 많아 오빠가 단동해관까지 바래다주었다.
사촌언니가 돌아가자 얼마 후 나는 곧 후회를 했다. "좀 더 도와줬을 걸!"하고.
시간이 흐르니 또다시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에 둥지를 틀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됐다. 그래서 혈육의 정은 갈라놓으려고 해도 갈라놓을 수 없는가 보다. 끊겼다가도 다시 이어지는 끈인가 보다. 북한도 중국처럼 빨리 경제개방을 한다면 우리가 함께 할 일들이 많을 테고, 중국보다 더 빠른 경제성장을 할 것이고, 우리 혈육들도 잘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깝기만 했었다.
이제 만나게 되면 내가 예전에 했던 북한무역 경험을 살려 글로벌시대에서 가능한 항목들을 얼굴을 맞대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그들의 잠재력을 진정으로 발굴할 수 있는 출구를 함께 찾아봐야겠다.
나는 남과 북의 징검다리 중간에 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남녘하늘과 북녘하늘을 번갈아 바라본다.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버릴지, 어디에 우리의 노력을 배가하고 어디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할지를 정리해 보면서 바이런의 시 한수로 마음을 달래 본다.
이렇게 밤 이슥토록
우리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리.
마음 아직 사랑에 불타고
달빛 아직 밝게 빛나고 있지만
칼날은 칼집을 닳게 하고
영혼은 가슴을 헤어지게 하는 것이니
마음도 숨 돌리기 위해 멈춤이 있어야 하고
사랑 자체에도 휴식이 있어야 하리.
받은 사랑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
그 밤 너무 빨리 샌다 해도
우리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리
달빛을 밟으며
그 곳에 있는 나의 혈육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지만 삶의 큰 흐름 속에서 슬픔은 점차 녹아 없어지리라 믿는다. 나는 지금 가끔 농담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언젠가는 내가 북한에 가서 <라면공장>을 할 것이라고. 글로벌 3.0시대에서 북한도 끌어안고 함께 달려가야 한다고. 우리가 어려운 시기에 한국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북한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고구려의 기상은 살릴 수 있다. 이제는 분단이 아닌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면서 새로운 한 민족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가족 단위도 좋고, 단체도 좋고, 무역그룹도 좋다. 서로 대화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소통함으로써 우리사이에 가로 막힌 장벽을 허물어뜨려야 한다. 우리 민족이 함께 둘러앉아 새로운 궁전에서 탕평채(蕩平菜)를 먹을 때도 된 것 같다. 그 때는 분단의 아픔을 안고 가지는 눈물겨운 상봉이 아닌, 통일의 축제에서의 즐거운 눈물의 상봉이 되길 두 손 모아 빈다.
그러면 중국-북한-한국 세 나라를 당일로 오갈 수 있는 그날도 오게 될 것이다. 그런 분홍빛 희망을 안고 어쩌면 나의 나머지 시간들이 익어갈지도 모르겠다. 평양 사촌언니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 함께 미래를 열어가 보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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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통일을 실천하셨네요.
덕분에 통일이 하루가 앞당겨 질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