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 허영섭 심천시 통세달수출입유한회사 대표
최근 중국 하문에서 ‘2014 제7기 중국-대만 문화예술박람회’가 개최되어 박람회 평가위원회에수만 개의 예술작품들이 접수됐다. 그 가운데는 중국과 대만 자수분야에서 올라온 자수 작품들이 엄청 많았으나, 딱 4점만 당첨이 됐다. 그중 허영섭 사장의 창작사에서 낸 작품 ‘구름타는 선녀’와 ‘무송이 범을 때려잡다’ 등 2점이 수상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1등과 2등상은 자수가 아닌 대나무 조각과 명나라 가구여서 허사장의 자수 작품이 단연 돋보였다.
이 몇 년간 중국에서 예술품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와중에, 많은 손자수 미술품들이 인민폐화 100만 위안(한화 2억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50대 중반의 중국동포 허 사장은 1989년 여름 심천으로 오기 전까지는 길림사범대학교 물리계에서 기하광학을 강의했다. 현재는 ‘심천시 통세달수출입 유한회사’와 ‘당대동방자수예술연구중심’을 운영하고 있다.
허 사장이 손자수 아이템에 접하게 된 계기는 북한 방문이다. 1991년도 말 무역 건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민예종합상사, 만수대 창작사, 그리고 조선수예연구소를 참관하고 그들의 손자수작품의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작품내용의 제한성, 특히 상품의 시장성에 대해 발전시켜야 할 점들이 많다고 보았다. 그래서 방문 계획에는 없는 자수 작품에 대해 이들과 함께 토의했다. 자수분야에서 북한에서 제일 쳐주는 리원인 할머니와 김청희씨를 위주로 10여 명이 팀을 구성해 2달간 연구를 했다. 2년간 중국자수를 한국에 수출한 경험이 있기에 이들에게 의미 있는 제안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 때의 자수시장탐구 활동이 북한 중앙에 보고되고 김일성 주석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과 함께 문예공연을 관람하고 김일성 주석을 접견하고 선물도 받았다. 허 사장은 당시 북한 민예종합상사와 자수합작 계약서를 체결하고 귀국해 지금까지 계속 거래하고 있으니 그의 자수창작 역사도 20여 년이 된 셈이다.
허 사장은 처음 7-8년간은 북한자수를 상대로 일을 했다. 그런데 사회제도가 너무 달라 제한이 많았다. 할 수없이 중국 자수인력을 배양하기 시작하고, 스스로도 자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만들 수 있는 자수 작품은 내용에 너무 한계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종교적인 내용, 인물화중 나체나 반나체작품, 심지어 입은 옷이 좀 짧아 피부가 좀 많이 드러나도 안 되고, 자본주의 나라의 명인 초상화, 자본주의 국가의 신화와 관련되는 건 모두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 직원들이 만들어야 할 작품이 점점 많아졌고, 또 직원들 자수기법을 손수 가르쳐야만 했다.

그러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허 사장은 2002년도부터는 북한 자수 예술인들을 심천으로 초청하여 자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일성 주석의 접견을 받은 경력 때문인지 몰라도 2002년부터 한 번에 30여 명씩, 수차례 북한 예술인들을 심천으로 불러 들여 미술창작을 하였다.
그는 그동안 북한에 23차례 다녀왔다. 갈 때마다 평양에서 먼저 자수 작품을 평가하고 가장 잘된 작품을 만든 사람을 만나 면접한 다음 합격되면 초청명단에 넣곤 하였다.
그는 창작사 직원들이 만드는 작품마다 작업기술지도서를 써 준다. 자수 창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예술가이지만, 이들의 입장이 자기와 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만든 수백 점 고품격 자수 작품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수기법을 알게 되었고, 부분마다 미술적 형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실의 굵기, 실 꼬임 방법, 실 색상 및 자수기법 등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작품의 주제와 그림의 중점부위 및 작품구조에 대한 이해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인 작업기술지도서를 작성하곤 했다.
현재 중국에서 손자수 작품이 엄청 비싸게 팔리고 있다. 그러나 허 사장은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기만 하고 판매는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이유는 언젠가는 자기가 만든 수준급의 자수 작품 단가가 엄청 오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 친구들이 입소문 듣고 찾아와서 사가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다. 1점당 단가는 50만 위안에서 180만 위안화 사이이다.

그는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를 “시장과 가격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여러모로 노력하여 자수 작품이 상을 타게 한다거나 유명인사의 좋은 평가문을 받는다거나, 심지어 경매에서 자기 작품을 고가에 판다거나, 지방정부나 공예미술협회에서 공예예술가 칭호를 받는다거나 등, 이런 식으로 작품의 가격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요즘 중국의 자수예술품 붐은 대단하다. 국가 성급 문화예술품 교역소에서 인민폐 6,000만 위안 주고 자수 작품 2점을 산후, 주식이 상장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자수 작품 100여개를 저당 잡히고 국가 은행에서 3,000만 위안을 대출받는 사람도 있다. 이외에도 국가 신용기관에서 인정을 해주는 사례들이 빈번해지자 자수 작품이 소장품으로뿐만 아니라 투자물로 변하고 있다.
그동안 허 사장은 1992년도부터 2002년도 사이에 만든 100여점 고품격 자수 작품을 만들어지는 대로 유럽에 모두 판매했다. 그러다가 2003년도 중국시장 단가가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판매하지 않고 모으기 시작했지만, 그사이 그래도 3~40점은 팔았다. 지금은 260여점이 남아 있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창작사’ 예술팀은 작품 12를 만드는 중에 있다. 그중 가장 어렵고 큰 작품이 장대천의 ‘노산’인데 높이 90센치, 길이 6미터가 된다. 장대천의 후손들이 자수 작품을 내놓으라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작품이다.
허 사장은 남은 자수 작품을 상장회사와 상의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자수 작품 모두 위안화 4억 정도의 감정 평가를 받았다. 예술품 주식시장 운영 원칙상 감정가의 50% 안팍에 구입을 하게 되어 있으니 최고 2억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요즘 허 사장은 또 미술자수 관련 교재를 쓰고 있다. 자수 작품이 진정 미술품으로 발전하자면 낡은 평가 관념을 깨고 진짜 미술적 평가기준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지식과 자수기법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중국 자수 뜨는 이들이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미술작품을 만들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북한, 베트남, 일본 여러 동방국가의 자수기법을 종합하여 가장 미술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자수 기법 교재를 만들고자 노력 중에 있다.
그는 진정 중국대륙의 자수 작품 창작의 ‘왕’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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