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로 물든 연변 '38세계여성의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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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로 물든 연변 '38세계여성의날' 기억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4.03.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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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겨울은 아직 물러가지 않고 추위는 샘을 내고 있는데 따뜻한 햇살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봄이 오고 있는 3월이 다가오고 있다. 자연이 소생하는 3월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날 38절이 다가 오고 있다. 중국 연변에서의 38부녀절--장미로 붉게 물들었던 그날을 다시 떠올려 본다.


방송국에서 여성시대라는 사회교육프로를 8년 넘게 꾸려가면서 38절 부녀절이 다가올 때마다 각 분야의 우수한 여성들을 찾아서 프로를 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하지만 방송애청자들이 꽃바구니나 명절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하고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지은 고추로 고추 가루를 만들어 보내주기도 했고 떡을 보내주는 애청자도 있었는데 여성으로서 또 방송인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하루이기도 했다. 38절 날 각 조선말 방송과 텔레비전에서는 북한의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아내를 잃고 어린 두 남매를 키워야 했던 북한의 김 송남이 작사한 노래로서 북한 남성이 처음으로 북한 여성을 칭송했다는 색다른 의미가 있음을 한국에 와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가족

▲박연희 PD, 2007년 3.8기념 여성시대프로에 출연한 세계여성챔피언 심영희(재미조선족 오른쪽)와 함께.
연변에는 이런 설이 있다. <38절 하루를 아내한테 잘하는 남편은 일 년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한 남편은 일 년이 괴롭다> 중국의 한족남자들은 평생 부엌에서 열심히 후라이팬을 흔들지만 조선족남자들은 별로 주방 일을 도와주는 편이 아니지만 38절 날 만은 많은 연변의 남자들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소박한 아침상을 아내한테 바친다. 여유가 있는 남자들은 아내한테 선물을 사주거나 현금을 봉투에 넣어주거나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일부 고약한 남편들은 이런 남편들은 아내한테 미안한 점이 많거나 죄를 진 사람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비웃으면서 여전히 아내들이 아침상을 차리게 한다.

동창
소학교 중학교 대학교 동창 그 외에 가까운 친구들끼리 38부녀절은 건너뛸 수 없는 명절이다. 그러다 보니 3월 한 달 거의 절반을 여성들은 술에 절어 있고 노래방에서 자기의 18번을 얼마나 불렀는지 가사를 외울 정도이다. 나도 언젠가 친구들과 38절을 보내다가 찜질방에서 잠들어 외박한 적이 있다. 그날 아침이 바로 38절 날이었는데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지친 가족들이 아침을 먹고 뿔뿔이 갈 길을 가다보니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수밖에 없었다.

사회구역
사회구역에서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여성들과 노인들이 함께 모여 입쌀만두나 물만두를 빚어 먹으면서 장단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면서 나름대로 즐기었으며 선진적인 사회구역에서는 38절 날 모여서 식사를 함께 하기 전에 <모범며느리>를 선거하고 상장을 주고 선물로 내복이나 타올을 주기도 했다.

직장
3월 8일은 여성들이 휴식하는 날이다. 만약 38부녀절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끼였다면 앞당겨 금요일 혹은 목요일에 부서별로 모이고 그 다음에는 방송사 별로 그 다음에는 전 방송국 직원들이 식당으로 가서 거하게 한 상 차려먹고 2차로 노래방까지 간다. 3월 1일부터 노래방이나 식당은 예약이 안 되면 들어 갈 수 없는 상황이기에 38절은 업주들이 고대하는 명절중의 하나이다. 직장에서는 여성들에게 38절 선물로 처음에는 생리대를 주다가 후에는 기념품을 주기 시작했고 그 후는 2원부터 5원으로 다음에는 100원에서 300원 500원을 주었고 좀 더 여유가 있으면 상품권을 덤으로 주기도 했다. 그중에서 38절에 제일 수입이 많은 여자로 손꼽으면 중소학교의 담임선생님들이다. 특히 영어반 반주임은 생활조건이 비교적 우월한 학생들이 모인 반이라 천원을 반주임한테 주는 학부모가 수두룩했다. 그러나 일반 교원들은 스타킹이나 하나 받으면 그만이었다. 

직장에서 센스 있는 부서의 책임자들은 장미 한 송이를 부하 여직원들의 책상에 아침 일찍 놓기도 했다. 번화한 길거리나 노래방에 가면 문 앞에 장미를 파는 장사꾼들이 줄쳐있었는데 한잔 거나하게 한 남자동료들이 여성들에게 한 송이씩 사서 선물하는 것은 예사였다. 그날만은 저녁에 아내가 장미 한 묶음을 들고 집에 들어와도, 술에 만취에 들어가도. 새벽에 늦게 돌아와도 남편들은 너그럽게 대해준다. 하지만 노래방에서 어찌나 흥이 났던지 집에 들어갈 때 장미꽃은 이미 너덜너덜 해져 버리기가 일쑤였다.

정부
연변에서는 38부녀절을 맞이하여 우수한 여성들을 표창하는 대회를 해마다 한다. 연변 주와 연길 시에서는 학교와 직장인들, 사회구역에서 우수한 여성들을 추천하고 그 여성들을 표창하는 대회를 열고 그들에게 상금과 상패를 줌과 동시에 급여도 올려주고 북경으로 유람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으며 표창 받은 여성들은 각 지역에 다니면서 순회강연을 하기도 했다. 

지금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화룡에서 큰 홍수가 졌을 때 농촌 생산대의 떠내려 가는 비닐을 주으려 다가 홍수에 밀려 생명을 잃은 한 20대 여성을 표창했던 일이다. 그때는 나라의 재산을 구하려다 자기의 생을 마감한 그 여성의 이야기가 매우 감동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몇 푼 안 되는 비닐을 주으려다가 생명까지 바쳐야 하는가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한국
한국에 나와 있는 중국조선족은 53만 명이고 귀화한 사람까지 합치면 거의 60만명을 치닫고 있다. 그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여성들인데 그들은 한국에 나와서도 여전히 38절 날 가족끼리 친구끼리 동창끼리 모여서 대림 구로 안산 수원 등지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집들에서는 여유가 있어 남편들이 비싼 선물을 아내한테 해준다. 여성들은 한국에서의 삶은 힘들지만 38 하루만은 즐겁게 보내고 있다. 중국에서의 38절과 비긴다면 중국에서는 거의 한달 내내 즐기지만 한국에서는 돈을 버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38절 하루만 명절로 보낸다.  

조선족여성들
중국에서 한족여성들은 직장은 다니지만 가무는 남편들의 몫이다. 퇴근하면 한족남자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가서 저녁을 준비하지만 아내들은 테레비를 시청하거나 밖에 나가 수다를 떨거나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여하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하지만 조선족여성들은 한족여성들과 같이 직장도 다니면서 가무와 육아도 함께 한다. 직장과 가정 육아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조선족여성들에게 꽃과 노래로 그리고 춤으로 장식하는 3월 한 달은 어쩌면 인생의 보너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총적으로 중국연변에서 3월 8일은 여성축제의 하루 일 뿐만 아니라 3월 한 달 내내 여성들이 먹고 놀고 즐길 수 있고 대부분 여성들이 뭇 남성들로 부터 장미를 받는 날이기도 하다. 
 
비전
중국에 있을 때는 38절을 어느 나라에서나 다 우리처럼 굉장히 보내는 줄 알았고 한국은 선진국이라서 우리 보다 더 화려하게 보낼 줄 알았다.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38절은 한국여성에게 색다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38절에 내가 중국에서 받았던 혜택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연변에서의 38부녀절은 근근이 먹고 놀고 즐기는데 그쳤다는 아쉬움도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38절은 문화가 서로 다른 여성들이 모여서 서로의 삶과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38의 기억을 함께 역사화하며 새로운 여성의 파워를 만들 수 있는 38여성문화제로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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