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행은 먼저 삼릉계곡으로 갔다. 계곡입구에는 삼릉, 말 그대로 세 개의 왕릉이 모여 있다. 삼릉은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릉 주변에는 늙은 소나무들이 삐뚤빼뚤 제각각 특이한 모습으로 우거져 있었다.
사람들이 소나무들을 보며 감탄을 토해내자 인디드투어의 김종희 사장이 ‘안개 낀 삼릉계곡’은 사진가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은 촬영장소라고 귀띔했다. 새벽안개에 젖은 소나무들을 촬영하기 위해 밤을 새는 사람도 있단다.

목 잘린 부처님을 뒤로 하고 산위로 좀 더 올라가자 큰 바위 면에 새겨진 여섯 분의 부처님이 나타났다. 이른바 ‘선각육존불(三稜溪谷 線刻六尊佛)’이다.
왼쪽 바위에는 서방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새겨놓았으며 아미타불 좌우에는 각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아미타불을 향해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에게 한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는 보살이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빛으로 중생들을 비추어주는 극락세계에 있는 보살이다.
오른쪽 바위에는 석가모니불이 새겨져 있다. 석가모니불의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서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왼쪽 바위에 새겨진 아미타불과 오른쪽 바위에 새겨진 석가모니불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석가모니불은 앉아 있고 좌우의 보살들은 서있는 반면에 아미타불은 서있고 좌우의 보살들은 앉아 있다.
김 사장은 아미타불이 서있는 이유를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자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위 위에는 훼손을 막기 위해 빗물을 옆으로 돌렸던 배수구가 아직도 남아 있고 지붕의 기둥을 세웠던 흔적도 남아 있다. 선각 육존불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행은 바위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 ‘선각 육존불’을 보며 신라의 뛰어난 불교 미술을 느낄 수 있었다.
삼릉계곡은 남산의 4~50개나 되는 골짜기들 중에서도 불교 유적지와 유물이 가장 많은 계곡이지만 우리 일행은 선각육존불 관람을 끝으로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인 경주 교촌 한옥마을로 향하는 차속에서 김종희 사장의 안내가 이어졌다. 이 지역의 주요 유적으로 교촌한옥마을과 함께 경주교동 최씨고택, 경주향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지는 요석궁, 새로이 복원된 월정교 등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는 것.
한옥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경. 일행에게 이번 여행 중 가장 긴 시간, 1시간 30분이 관람시간으로 주어졌다.
한옥마을의 외곽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자 김종희 사장이 힘주어 설명했던 월정교가 나타났다.
올해 개통을 앞두고 거의 완공 단계에 있는 월정교의 규모는 길이 66미터, 폭 9미터 높이 8미터로 우리 민족의 전통 교량으로는 특이하게 전통가옥 양식의 지붕이 있는 다리이다.
월정교의 위용은 대단했다. 마치 장대한 가옥이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경주향교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명륜당, 공자 등 유교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등의 규모가 보기 드물게 컸다. 지금도 전통문화유산 체험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단다.
향교 문을 들어서자 커다란 우물이 하나 보였다. 우물을 덮은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찰랑찰랑 차 있었다. 그 옆으로 진돗개 한 마리가 관광객들이 들어오면 꼬리를 치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향교의 뒤편으로 가자 아주 큰 왕릉이 나타났다. 신라의 국가체제를 정비했던 내물왕릉이다.
경주의 왕릉은 적석총 즉 돌무덤이어서 도굴이 불가능하다고 김종희 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복원이 쉽지 않아 유적 발굴도 쉽게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길에 최씨고택, 최부자집이 있었다. 존경받는 부자의 격이 느껴지는 최부자집 벽에는 최부자집 가문을 지키는 ‘육훈’이 걸려 있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 흉년기에 땅을 늘리지마라.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최부자집은 경주 최씨 17대손인 ‘최진립’에서부터 28대손 ‘최준’에 이르기까지 200여년 동안 만석꾼으로 살았다. 부자는 길어도 3대를 못간다는데 최부자집이 왜 오랜기간 부를 누릴수 있었는지 ‘육훈’이 그 이유를 알 만하게 해준다.
최부자집을 관람하고 여유롭게 한옥마을을 들러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다 되어 아쉬움을 남기고 김종희 사장이 잘 아는 기사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막걸리를 곁들여 왁자지껄 여행담을 나누며 함께 먹었던 점심은 얼마나 맛깔나던지…. 동북아신문 식구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자리로 온 여행톡 이성주 사장에게 모두들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한 마디씩 했다.
너도 나도 “다시 오고 싶다”, “경주를 재발견했다”고 말했다.


경주 최부자집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