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한국에 입국해서 몇 달이 안 되었을 때 나는 한모텔에서 청소 일을 했었다. 5층 건물인모텔은 60여 개의 방이 있었고, 방마다 텔레비전, 욕조, 컴퓨터, 침대가 각각 두 대씩 있었다. 특히 침대는마음대로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리모콘까지 있어 숙박료가 5만원이었지만 늘 손님이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에 청소하러 방에 들어갔을 때 콘돔이 널려 있는 걸 보고 어쩔 줄 몰라 낯을 붉히며 비닐장갑을 끼고 주었지만, 며칠이 지나니 휴지처럼 스스럼 없이 맨손으로 줍고 있는 나를 보았다.
청소를 끝내고 비어 있는 방에 몰려서 휴식을 하고 있다가 내가 물었다.
'언니 길거리의 뽑기 기계가 왜 여기에 있어요?'
"이 맹추야 그건 남자 여자가 흥이 나서 놀 때 쓰는 기구들이다."
중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고 한국 길거리에서 유리창으로 살짝 보았던 성인용품을 이곳에서 실컷 보았다.
청소하는 언니들은 모두 8명인데 네 사람이 한 팀이 되어 한 사람은 시트와 이불 베개 커버를 벗겨내고 다른 한 사람은 바닥청소 또 한 사람은 화장실 청소, 나머지 한 사람은 먼지를 닦아내는 일 이렇게 사람마다 신 들린 것처럼 정신 없이 돌아갔다.
일이 바쁘다 보니 밥도 빨리 먹어야지 늑장을 부리면 눈치가 보였다. 하루에 대실만 130여차나 나가는데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며칠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온몸이 쑤셔대고 다리도 아프고 발바닥이 저려서 엉기적엉기적 걸어야 했다. 대신 할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는 노임을 주지 않기에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손님이 적어지면 자기들이 되려 근심하고 더 일을 잘 하려고 했지 눈치를 보면서 일하는 언니들은 별로 없었다. 언니들은 찐한 농담도 스스럼 없이 했다. 자기네들은 60~70대의 손님이 좋다는 것이였다. 왜냐하면 그네들은 힘이 없어서 이부자리를 덜 어지럽혀 놓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내가 우스개를 했다. 차라리 우리가 호텔 대문 앞에 "우리는 6공 7공만 환영한다"는 간판을 내다 걸자고. 언니들은 방에 들어서면 먼저 묻는다.
'적셨어?'
이불에 사내들의 흔적 같은 것이 묻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그것이 묻지 않으면 이불커버를 새로 바꾸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한결 힘이 덜 들었다. 한국남자들이 쏟아놓은 욕망의 배설물을 중국동포 언니들이 치우고 있었다.
어느날 화장실 문을 열던 나는 코를 찌르는 비린 냄새에 발걸음을 주춤했다. 사방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욕조에 피물이 넘쳐나게 채워져 있었다. 비위 약한 나는 구역질을 참느라 입을 막고 침실쪽으로 나왔다. 제일 오래된 언니가 욕조 속에 손을 넣어 꼭지를 확 잡아당겨 피물을 빼기 시작했다.
그 언니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처럼 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놀지도 못한 년이 아이 밴 척 하긴. 내가 여길 청소할 테니 넌 나가서 방 청소나 해."
다른 한 언니가 들어와 욕조를 보더니 욕을 퍼부었다.
"썩어 문 들어 질 년 놈들, 비상시기에도 이 지랄을 하고 싶을까? 에잇 내사 언제면 이 꼴 안보고 살까."
청소를 하다가 술이 남거나 안주가 있으면 언니들은 슬쩍 호주머니에 감추었다가 퇴근 후 모여 들어 한잔 한다. 여자 8명이 한방에서 홀랑 벗고 목욕실을 들락날락하고 팬티 한 장 걸치지 않은 채 두 다리를 아무렇게나 벌리고 앉아서 술잔을 비우는 모습은 완전 가관이었다.
내가 목욕실에서 나오니 한 언니가 내가 걸친 타올 가운을 확 벗기면서 말했다.
"달린 것도 없으면서 뭘 가리고 난리야."
처음에 나는 남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술판에 끼어들지 않고 그냥 자는 척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나도 어느새 술판에 끼어들고 말았다. 곁에서는 너나 없이 코를 골아도 한잔씩 한 언니들은 잠만 잘 자는데 나만 잠잘 수 없으니 잠자기 위해서라도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손님이 제일 많은 날이다. 60여개의 방이 손님으로 꽉 찰 때는 우리는 복도도 아니고 차가운 계단에 나가서 침대시트를 뒤집어 쓰고 앉아서 손님이 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언니들마다 물통 두개를 어깨에 하나씩 걸었는데 하나는 수건 비누 등 목욕비품이고 하나는 걸레 등 청소용 비품들이다. 손님이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확 몰려가서 잽싸게 청소를 한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일은 바쁜데 네 번씩 밥이 들어간 배속에서는 연속 신호가 와서 나를 힘들게 했다.

"원래부터 그냥 할 생각은 없고 언니는 휴식하느라 잠깐 들렸네."
여자감옥이나 다름 없는데 이런 휴식도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일을 3년 혹은 7년이나 계속한 언니들도 있었다. 제일 오래 있었다는 언니는 자기가 번 돈으로 아들한테 살림집과 자가용을 사주고 올해 다시 한국에 나와서 번 돈은 손자의 생일에 적금통장에 넣어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3년 일했다는 언니는 남편과 함께 이곳에서 일하는데 숙식을 해결해서 돈을 남긴다고 했다. 또 다른 언니는 일이 쉽다고 동생까지 소개해 들어왔는데 동생이 힘들어해서 미안해 했다.
청소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열심히 일하는 언니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길들여진 그녀들을 보노라니 문득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의 영화배우 채플린이 연상됐다.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비인간적인 일로 미쳐가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줬던 찰리 채플린을 21세기 한국에서 중국의 동포 언니들이 재연하고 있었다. 중국동포 언니들은 기계 부품처럼 단순 작업만 반복하다가 노이로제에 걸려 쫓겨나는 방랑자 채플린처럼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