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탐방기]경주, 그 천년의 古都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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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탐방기]경주, 그 천년의 古都 속으로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4.01.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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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어느새 겨울의 한 복판이다.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겨울을 더욱 실감케 한다. 그렇다고 자꾸 움추려드는 몸을 아랫목에 맡길 수만은 없다.

만물이 잠들어 있는 계절, 겨울.

이 계절 2013년 마지막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경주로 떠나보자.

여행은 어쩌면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찾아 인생의 숨 가쁨을 뒤로하는 여유인지도 모른다. 그중 연말의 해돋이는 또 다른 삶의 희망을 주는 그런 것일 것이다.

여행은 나의 무엇과 머무르는 그곳의 교감이다. 하지만 지친 일상은 나와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희열을 느낀다. 여행은 삶의 진정한 삶의 정직함이다.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삶의 활력소다.

우리는 이 활력소를 얻고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을 만들어 머릿속에 카메라와 같은 영상을 간직하고자 하는 지도 모른다. 도심의 불빛 속에 갇혀 영혼을 그곳에 맡긴 채 살아가는 한정된 틀 속에서 우리는 떠나는 시간속의 여행에 자신을 맡긴다. 또 다른 탈출이다.

이런 탈출을 동북아신문과 함께 2014년 갑오년(甲午年) 해맞이 여행은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가벼운 발걸음처럼 푸근한 남녘의 쪽빛 바다에서 시작해 본다.

배는 바다로 나갔고, 떠난 배의 만선을 기다리는 아낙의 마음처럼 포근하게 다가오는 감포의 푸른 물결은 죽어서도 한 마리 용이 되어 신라의 천년을 기원하는 수중의 문무대왕 능에서 펼쳐진다. 

 

천년의 고도 / 석천 박세영

춤추듯 흩날리는 오릉의 푸르름은

고개 숙여 나를 바라보고

감포 깊은 물의 문무왕은 한 마리 용이 되어

고도의 천년을 묵묵히 바라보고

신들린 듯 뼈를 깍는 골곡의 천년 세월은

인생의 무상을 비웃고 있건만

흘러가듯 가버린 천년의 세월은 할 말을 남긴 채

자자손손 묵묵히 흘러만 가고

 

대호강의 맑은 천은 이내 가슴의 애간장을

이리도 슬피 읊어 대는데

자신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세월의 뒤안길에

고개 숙인 황금 낱알들은 영글어 가고

젊은 아낙은 바다에 손을 담그고

 

몰려오는 저 파도는

나의 무엇을 깨우치려

그리 애를 쓰는지

또 그렇게 천년의 한은 흘러만 간다.

 

겨울의 하늘은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거대하게 펼쳐지는 감포의 해변은 따뜻한 차 한 잔으로도 몸을 녹여 눈을 즐겁게 한다. 추위 따위는 어느새 싹 가시고, 먼발치 희미하게 떠오르는 천년의 고도 경주의 물줄기속에서 2014년 갑오년(甲午年) 붉은 해는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희망이 용솟음치고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새해 첫날을 맞이한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모래사장 너머로 애써 올라오는 붉은 가슴은 어제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지만 마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섬세하게 많은 이야기 꺼리를 쏱아 놓는다.

매일 뜨고 지는 해가 뭐 그리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겠냐마는 지난 1년간 모든 것을 지는 해와 함께 날려 버리고 새해 첫 번째 희망으로 뜨는 해와 함께 소망을 빌어 보는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그 소망의 간절함으로 우리는 이렇게 멀리까지 새해맞이 해를 보러 떠나는 것이다. 지친 일상 속에서 이 하나만으로도 여기 오신 많은 분들은 모든 시름을 날려버리고 새해의 간절한 소망과 희망을 비는 것 일 것이다.

지난 12월31일 저녁 10시30분, 동북아신문 일행은 서울 교대역에서 ‘감동이 있는 여행! 여행톡’의 이성주 대표의 안내를 받으며 경주로 향했다.

 

이튿날 아침,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선 길은 바다를 끼고 아름답게 펼쳐진 둘레길이다. 이 둘레길은 마그마에 분출된 용암이 흘러 마치 논바닥에 표면이 갈라지듯이,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의 절리(틈)를 형성하여 여러 형태의 기둥모양(주상, 柱狀)이 만들어진 이곳의 상태를 주상절리라 부른다. 주상절리는 풍화와 침식을 거치면서 작은 돌기둥들을 겉으로 드러내었고,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독특한 아름다움은 가히 경주의 문화유산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간간히 하서항으로 이동하는 길옆으로 큼직큼직한 그림들로 벽화를 이루는 읍천항 벽화마을은 넓은 바다와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와 더불어 또 다른 여행의 묘미를 더한다.

경주 여행을 하면서 나그네의 발길을 이끄는 또 다른 하나는 이곳에 있을 것이다. 이곳은 KBS2 1박2일 “경주 남산 7대 보물 답사여행”에서도 소개가 됐던 신라 불교 문화의 중흥과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남산이다.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의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金鰲山)과 고위산(高位山)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 부르고 있다. 산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40여개의 계곡이 있고, 바다에 있는 갈매기 숫자보다 더 많은 사찰이 있었다던 장소이기에 이곳에는 아직도 수많은 불적(佛蹟)산재되어 있으며, 여러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다.

신라 건국 전설이 깃든 나정(蘿井), 신라 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터, 김시습이 거처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하는 용장사터(茸長寺址)등 많은 신라시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한 이후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되어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디디며 천년의 고도의 무게감에 짓눌릴 즈음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입구에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나그네를 반긴다. 신라 중흥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남산 자락을 지나다 보니 거대한 여섯 분의 불상이 앞을 막는다. 이 불상은 남산에서도 드물게 선각으로 된 불상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臺座 )에 앉아 있고, 본좌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 된 아미타불 삼존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오른쪽 암벽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法堂)이 세워졌던 흔적이 남아있다.

 

조금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듯한 일정 때문에 남산을 일주하지는 못하고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稜溪谷 線刻六尊佛)을 뒤로 하고 최씨 고택으로 향했다. 이곳은 최씨 고택 이외에도 신라시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사랑을 나눈 요석궁이 있으며, 신라 신문왕2년(682년)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으며, 월정교(月精橋),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계림(溪林),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인 오릉(五陵)등이 경주 교촌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동서양을 통해 수많은 부자들이 있었지만 경주 최부자처럼 오랜 기간 변함없이 주위의 존경을 받아온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부(富)를 유지하고 신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경주 최부자가 가문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가족문화, 그리고 최부자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이곳 교촌마을에서는 다양한 체험 요소를 활용하여 교육단체 및 학교 체험학습과 연계하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악 문화 예술캠프는 국악 체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렇게 꿈꾸는 듯 경주는 천년의 고도를 가슴에 안은 채 오늘도 굽이쳐 흐르고 있다.

 2014년 1월 1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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