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탐방]아름다운 보배섬, 대만에 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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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청룡 탐방]아름다운 보배섬, 대만에 가다[2]
  • 주청룡
  • 승인 2013.11.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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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사림관저(士林官邸)

다음으로 우리는 사림관저(士林官邸)로 갔다. 사림관저는 대북시 사림구 복립로(台北市士林区福林路)에 있으며 원래 장개석이 살던 곳으로서 지금은 대북시의 생태공원으로 되여 있다.

▲ 사진(1): 사림관저공원

사림관저는 일본이 점령당시에 일본총독부의 원예소로 있었다. 광복 후 대만성 정부 농림청에서 농업실험소로 접수하여 사림원예실험분소를 성립하였다. 장개석이 대만에 오기직전에 당시의 대만성 정부 주석인 진성(陈诚)이 친히 이곳을 장개석의 관저로 정하고 1949년에 장개석의 관저를 짓기 시작하여 1950년 5월에 준공하여 장개석이 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 좋고 물 맑으며 환경이 수려하고 곤충들의 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아주 친환경적이었다. 1975년 4월 5일 장개석이 사후 동년 9월에 송미령이 미국뉴욕에 간 후 이 관저는 비여 있다가 1996년에 개방한 이래 지금은 관광명소와 시민들의 휴식의 한때를 즐기는 장소로 되고 있다.

사림관저는 산구와 평지로 나누는데 산구는 약 20헥타르이고 경비지대이며 평지는 5.2헥타르로 되여 있다. 원내에는 고목이 하늘을 치솟고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경치가 수려하고 그윽하다. 이곳은 광주와 같은 위도선에 놓여 기후가 광주와 비슷하였으며 식물종류들도 광주와 비슷하였다.

사림관저는 밖으로부터 안으로 외화원, 내화원, 관저 몇 개 구로 나눈다. 외화원에는 온실 분재구(盆栽区)와 장개석과 송미령이 즐기는 매화나무, 장미원, 망과, 다래 등 꽃과 나무들이 있어 연인들이 산책을 하는 좋은 곳이라고 한다.

▲ 사진(2): 장미원

내화원은 중국식 정원과 서양식정원이 있으며 서양식정원의 묘포, 꽃꽃이 예술, 조각, 못 등은 모두 서양풍정이 넘쳐나며 중국식 정원에는 아치교, 정자, 구불구불한 못, 물의 흐름 등은 동방정원의 조경이 고대 중국을 방불케 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장개석과 송미령이 각자가 자기가 즐기는 풍격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송미령은 완전히 서양화를 한 지성(知性)적 여인이고 장개석은 여전히 봉건사상이 남아있는 관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저정방(正房)은 2층 콘크리트구조로 외벽은 청회색으로 되여 있고 아래층은 큰 객실이고 2층은 침실, 식사칸, 송미령의 화실 등이 있다. 건축은 비록 서양식으로 하였지만 내부 장식은 중국전통풍격을 살리였다.

▲ 사진(3): 관저정방

식사칸에는 긴 상과 둥근상이 있었는데 사람이 적을 때에는 둥근 상에서 식사를 하고 사람이 많을 때에는 긴 상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장개석은 음식에 대하여 요구가 높지 않았으며 평시의 식사는 아주 간단하였다고 한다.

정관대문에 들어서면 복도에 4폭의 송미령의 친필국화가 있으며 책상, 걸상은 중국식과 서양식을 결합하여 만들었으며 바닥에는 암홍색의 주단을 깔았다.

송미령이 대만에 온후 중국화에 집착하여 국화대사 장대천(张大千)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난초, 참대, 산수화를 그리는데 정신이 팔렸다고 한다.

외계에서 송미령의 그림은 다른 사람이 대필한 것이 아니냐 하는 여론이 있어 송미령은 공자의 탄생기념일에 여러 국화명가들을 요청하여 식사를 하고 식사 후 손수 붓을 날려 그림재주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객실벽에는 장개석의 모친 왕채옥(王采玉)의 유화유상이 걸려 있었다.

원내에는 또 예배당도 있는데 장재석은 원래 교를 믿지 않았지만 송미령과 결혼할 때에 송미령의 어머니가 기독교신자가 되여야만이 혼인을 허락한다는 조건에 의하여 장개석도 기독교를 믿게 되였다고 한다.

▲ 사진(4): 지질공원 일각

이튿날(5월 2일)에는 먼저 야류지질공원 (野柳地质公园)로 갔다. 야류지질공원은 신북시만리향(新北市万里乡)에 위치해 있으며 북해안쪽으로 뻗은 좁고 긴 모습을 한 해갑(海岬: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 나간 육지)이다. 천백만년 동안 침식, 풍화작용이 교대로 일어나면서 버섯바위, 초대바위, 생강바위, 호혈(壶穴), 해식동굴 등과 같은 지형이 점차 형성되었다. 전체 길이 1,700미터에 이르는 해갑은 대만에서 가장 명성이 자자한 지질공원이 되였고 또한 주변의 풍부한 해양생태, 어촌풍경 등의 다양한 풍경들이 더해져 야류지질공원은 교육, 관광 그리고 휴양지 기능을 갖춘 관광명소로 되고 있다.

이곳에는 버섯바위, 촛대바위, 벌집바위, 생강바위, 바둑판바위, 피아노 바위, 두부바위, 새바위, 아이스크림바위, 코끼리바위, 땅콩바위, 구슬바위, 락타바위, 여왕머리, 선녀신발, 화석, 해식절벽, 해식평대, 절리(암석에 비교적 규칙적으로 생긴 금), 해식동굴(海蝕洞: 해안선 가까이에서 파도, 조류 또는 연안수 따위의 작용을 받아 해안에 생긴 동굴), 해식골짜기, 등이 있다.

▲ 사진(4): 지질공원 일각

표고버섯 모양을 한 버섯바위의 형성과정은 암층이 해수면 우로 노출되어 밤낮으로 해수의 침식을 받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암(砂岩)속의 단단한 결핵이 천천히 드러나게 되였다. 여기에 다시 바람과 햇빛, 비물, 파도 및 동북계절풍의 강한 영향을 받아 목이 굵은 것, 목이 가늘거나 목이 부러진 각기 다른 형태의 버섯바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지질공원에는 이러한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180여 개나 된다.

▲ 사진(5): 여왕머리바위

벌집모양의 바위의 형성원인을 보면 암석표면의 생물파편들이 용해되어 깎이고 다시 그 구멍들이 해수로 인해 용해되고 깎이게 되면서 구멍이 숭숭 난 모양을 가지게 되였다고 한다.

▲ 사진(7): 초대바위
 
▲ 사진(8): 아이스크림 바위
생강바위는 암층가운데의 비교적 단단한 칼슘성분의 돌덩이에 그 주변은 비교적 부드러운 암층으로 되여 있어 오랜 기간 동안 해수로 인한 일어나고 떨어지는 과정을 거듭하였다. 거기에 지층이 밀려오면서 가로 세로 교차된 균열까지 더해지면서 형성 되였다고 한다.

▲ 사진(9): 표범바위
▲ 사진(10): 거북바위

▲ 사진(11): 괴물바위

▲ 사진(12): 신바닥바위

해식동굴은 해갑이 해수면 우로 상승하면서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암층이나 자연적으로 생긴 파렬면을 파도가 날마다 깎아내면서 오목한 벽이 생기고 결국은 이것이 해식동굴로 되였다고 한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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