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 수필 17> 책을 사는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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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 수필 17> 책을 사는 뜻은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3.11.0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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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1. 학술대회가 열리는 대학 구내에서였다. 발표장 밖 복도에 늘어놓은 책들을 훑어보며 몇 권의 책을 샀다.

그런데, 아는 교수가 인사를 나누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환갑이 넘은 나이에 책은 사서 무엇합니까? 눈이 보여야 읽지요.”

나는 그 교수의 마음을 알아채곤 웃으면서 대답을 하였다. 동년배인 그는 눈이 갑자기 어두워져 책을 읽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 편이라도 읽으면 다행이고, 못 읽어도 아이들이 읽겠지요.”

그런데, 그는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녀들이야 저희들이 알아서 사볼 터인데, 구태어 사 둘 필요가 뭐 있어요?”

나는 책들을 살피다 말고 그를 빤안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필요한 책은 만났을 때 사야 됩니다. 얼마 지나면 살 수도 없고, 다시는 못 구할 경우도 있지요.”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2.

문학을 좋아하는 한 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읽어보라고 책을 한 권 내놓았다. 표제와 작자를 보니 근래에 많이 팔리는 책으로 신문광고를 크게 냈던 책이었다. 고맙다고 사례하고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왜 내게 주는가?”

그러자, 그 학생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교수님은 강의하시면서 동서양의 유명한 고전들만 읽기를 권하셨잖아요? 하지만, 현대를 알려면 요새 인기 있는 것들을 읽어야지요.”

한 마디로, 나더러 옛것만 읽지 말고 최신의 것을 읽으라는 뜻이다. 나는 말없이 읽다가 책상 위에 엎어놓은 책을 집어 그 학생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앞뒤로 책장을 넘겨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요새 한 달만에 수천 권이 팔렸다는 베스트 셀러 아녜요? 그런데, 교수님이 벌써 반이나 읽으셨어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그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왜, 내가 읽으면 안 되기라도 하나? 좋은 책이면 최신의 것도 읽어 봐야지.”

그리고는 일어나 지난주에 읽은 책을 그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작가는 이미 70여 년 전에 죽었지만, 당시에 대단히 유명했었지. 그를 기리는 상은 이 나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네. 지금 새 번역본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니 자네도 읽어보아야지.”

받은 책을 뒤적여보며 아직 못 읽었다면서 또 의아해 하는 그에게 한 마디 더 던졌다.

“명작은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고 작품이 좋아서 읽히는 것이야. 그래서, 명작은 국가와 민족과 시공을 뛰어 넘어 읽히지. 내가 읽으라는 것들은 바로 그런 책들을 가리키는 것이네.”

인기 있는 최신의 책을 이야기하다가 멍한 기분으로 돌아가는 그 학생의 뒷모습이 그날 따라 참 예쁘게 보였다.

 

3.

아는 선배 교수 한 분이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판을 하였다. 선후배끼리 조촐한 축하 모임이 있어 참석했다가 헤어지는데 일일이 책에다 서명을 해서 주었다. 그는 고전문학 전공자였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자 웃으면서 실없는 소리를 한다.

“국어학자에겐 이 책이 필요 없을 텐데요.”

생각지 않은 말에 잠시 할 말을 잊고 있는데, 그는 서명을 하고 있었다. 넘겨주는 책을 받으면서 순간 떠오른 못할 말로 답사를 하였다.

“국어학이야 학문으로 읽는 것이지만, 국문학은 교양으로 읽는 것이니까 재미있게 읽어보겠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 교수가 이렇게 되받았다.

“국어학은 기본이고, 국문학은 학문의 꽃이지요.”

한 번씩 치고 받았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책인들 어찌 마다 하랴. 서로 웃으며 악수하는 손아귀가 지금도 힘차게 느껴지곤 한다.☺ 

* 申吉雨 : 문학박사, 수필가, 시인, 국어학자, 한국펜본부 이사,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이중언어학회 총무 등 역임, 현재 종합문학지〈문학의강〉발행인 겸 회장, 문강출판사 대표. 시집 <남한강 연가>, 수필집 <차 한 잔의 행복> <모기 사냥> 등 10여권, 중국어번역수필집 <父親種下的樹>(아버지가 심은 나무) 등 노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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