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균 인물탐방]베풀고 나누고, 그 재미에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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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균 인물탐방]베풀고 나누고, 그 재미에 살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3.10.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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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 진선미 생활문화 연구소 조선순 이사장

▲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2013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가하여 한국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오른 쪽으로부터 여섯 번째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고 일곱 번째 사람이 조선순 이사장임)
[서울=동북아신문]한국인으로서 장장 20년간 연변에 와서 현지 조선족들의 생활 및 문화의 질향상을 위해 모지름을 써 온 여인이 있다. 바로 조선순이다.

중국진출 한국인들을 놓고볼 때 현지 조선족들에 대한 시각은 여러 가지이다. 친구로 사업파트너로 미래 지향적으로 손잡은 한국인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조선족을 비문명하고 거칠며 예의도 모르는 군체로여기며 기시하고 비하하는 한국인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조선순 이사장은 그 전자에 속한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 조선순씨가 연변에 처음 왔을 때 이곳은 지금과는 비할 수도 없이 어수선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조선순씨는 이를 개의치 않았다. 생활문화가 잘 보급된 지역보다 이런 곳에서 사업을 펼치면 어딘가 보람이 더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그가 북경이나 상해같은 대 도시보다 조선족이 집거한 연변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녀는 우선 거칠고 비문명하고 예의도 모른다는 조선족들을 기시하기에 앞서 그들의 생활문화를 바로 잡아 주기로 했다. 그래서 몇 년 간의 시장조사를 거쳐 1999년에 세운것이 연길 진선미 생활문화 연구소였다.

연구소에서 조선순씨는 한식요리, 직장교육, 예절교육, 퀼트(손바느질), 한지공예, 홈패션, 상담(부부상담, 자녀상담) 등 코너를 설치해 현지 조선족 특히 여성들한테 강의해 주기 시작했다.

조선순이사장에 따르면 당시 한국에 가 돈을 벌어온 조선족은 많으나 기술을 배워 온 사람은 극히 적은 상황, 돈은 써버리면 없어지나 기술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기술은 써 먹을수록 더욱 연마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조선족들한테 돈을 벌게 하면서도 기술을 장악하게 하는 것이 바로 조선순 이사장의 사업취지었다.

그외 조선순 이사장은 연변의 지역상 특점으로 조선족들이 한국인들과 많이 접촉하기에 한국인을 보다 잘 알게 하고 한국인 예의범절을 보급시킬 필요가 있다고 인정, 문화연구소 내 코너와 연길시TV방송을 통해 몇 차례 강의한 결과 사회상의 반향이 아주 뜨겁고도 좋았다. 다음 생활상담 또한 일깨워줄 것이 많았다. 예하면 가정에서의 고부 사이, 부부 사이 등에서 바로 잡아 줄 것이 있었는가 하면 지어 부자 사이와 모자 사이에도 풀어줘야 할 애로사항 등이었다.

한 번은 조선족 여성 한 명이 찾아와 아들이 대학입시에서 미끌어져 속이 탄다면서 실망한 나머지 집 밖에 나가기도 싫고 남과의 대면도 싫으며 전화를 받기도 짜증난다고 했다.

이에 조선순 이사장은 2시간 정도 그녀와 상담을 진행, “자식을 부모의 부속물로 생각치 말라”로 시작해 “반대로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어머니로서 인생의 선배로 돼 보라”는 등으로 풀어 나가면서 때로는 그녀의 심정을 아우르기도 하고 때로는 생활 지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더니 과연 그녀는 설득되었고 이듬해 아들을 재수시키기로 결심하는 것이었다.

한편 지난 세기 90연대 초부터 2000년 초반 당시 연변에는 한국인들로부터 사기피해를 당한 조선족이 많았었다. 이는 전반 한국인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 때 조선순 이사장은 어느 한국인이 중국 조선족한테 피해를 줬다면 다른 어느 한 한국인은 자신의 희생으로 꼭 이를 보상해 줘야 한다고 인정, 연속 3년간 150여 명에 달하는 당지 피해가족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인민폐로 연 평균 30만위안)하였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기업인과 유지인사 등을 동원해서는 “한국은 나라지만 연변은 중국의 한 지역이고 구석에 불과하다. 연변을 상대로 우리 한국이 어른다워야 한다. 연변 조선족을 돕는데는 조건이 따로 없다. 무조건 도와야 한다”면서 모금해서는 그 행사를 만들고 견지해 왔다.

중국경제의 맹진적 성장과 더불어 현재 연변의 모습은 몰라보게 변했고 사람들 자질도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개변되었다. 지난해 9월 3일 연변 조선족 자치주 창립 60주년 경축 행사에 초청받아 참가한 조선순 이사장은 눈물이 나왔다. 행사의 성공은 연변의 주력(州力)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도 전례없이 밝고 명랑했다. 연변경제의 발전과 사회적 및 문명의 진보에 자신의 힘도 어느 정도 들어갔다고 하니 더욱 눈물이 나왔다.

지금 조선순 이사장이 운영하는 문화연구소의 규모는 늘어난 것이 하나도 없다. 15년전 연변으로 진출할 때와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많다. 연변땅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또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문명예의의식을 심어주는 등으로 보이지 않게, 자리가 나지 않게 한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기여로 한국 전 대통령 노무현과 현임 대통령 박근혜 등 정상들의 접견을 받았는가 하면 “해외에 한국의 선진문화를 전파하고 현지인들을 적극 도운 인물”로 중국내 한인회에서도 수차 인정받게 되였으며 재중 한국인회 고문으로 위촉받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사는 재미었다.

현재 조선순 이사장은 연길시 공원가의 어느 한 건물에 가게를 차려놓고 현지인들로부터 기증받은 옷, 신발, 책, 놀음감, 소형가전제품 등을 재판매하고 있다. “나한테는 필요없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할 물건”이라며 그런 물건들이 쓰레기소각장에 들어가기보다는 꼭 필요한 사람들한테 돌아가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하고 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판매수입의 40%를 불우이웃, 장애인 및 독거로인 등을 돕는데 쓰인다고 한다.

다른 한편 조선순 이사장한테 아직 다른 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연변에 민족문화원을 세우는 것, 지금 그것이 바야흐로 준비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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