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산 시]가던 길 멈추게 하는 곳 (외 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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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산 시]가던 길 멈추게 하는 곳 (외 2수)
  • 박수산
  • 승인 2013.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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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박수산
여기저기

물고기 통발을 대듯

버젓이 문을 열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피곤을 끌면서라도

언제나 때를 맞춰 열심히 찾아가는 곳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눈에 익은 이들.

오늘도 늘어선 줄을

더 길게 늘여준다

 

명당자리라 큼직하게 써 붙이고

지나가는 약한 마음들

끝내 납치되어

끌려 들어가게 하는 곳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마음대로 한 짐 골라 짊어지고 나올 수는 없는 곳

저 꼭 쥔 주먹 하나 밀어 넣을 수 있는 곳

 

요행에다 마음을 얹고

땀으로 절여서 모아놓은 것들

꺼내서 밀어 넣어야

겨우 종이 몇 장 딸려 나오는 곳

 

그런데 사기는 아니란다.

합법이란다.

날아가는 새들도 다 아는 사실이니

시비를 걸지 말란다.

 

아니,

배가 홀쭉한 이들

더 홀쭉하게 유혹하는 곳

 

 하수구 옆 민들레

 

하수구 뚜껑 사이

구불텅하게 허리 휜 민들레

 

코와 입을 마스크로 가려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곳

 

 악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팍팍한 콘크리트 틈새 뿌리 밀어 넣고

목숨을 이어 간다

 

 

 끝내 서지도 못하고

바닥에 누워

겨우 꽃 한 송이 피웠는데

 

아차,

여린 꽃대가 부러졌다

 

무심코 내디딘 내 발길에

 

 다시 키를 줍다

  

고참이 앉았던 자리

자동차 키가 떨어져 있다

 

주워서 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슬쩍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괴롭히던 얼굴이 스쳐 가고,

 

쩔렁!

떨어지는 열쇠꾸러미

쌓였던 스트레스 확 풀리기도 전

먼저 걱정이 쌓인다.

 

나는 다시 쓰레기통을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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