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나는 우연히 이철호의 유화 27폭을 접할 행운을 가졌다. 너무 인상적이였다.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인가 좀 쓰고 싶었다.
이 27폭의 유화는 일단 민족적인 색채가 진해서 좋았다. 민족적인 색채, 옷, 인물, 경물, 도구들이 확 안겨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민족적인 정서, 정취, 지향이 물씬 풍겨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민족의 혼이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사실 우리에게는 거세찬 세계화의 바람에 알게 모르게 민족의 혼이 얼마간 빠져나가 있다. 그래서 이철호 화가의 그림을 감상해보는 것은 가뭄에 단비 격으로 적시적인 줄로 안다.

1. 이철호 유화 27폭 스케치적 조명
이철호는 분명 스스로 이 민족의 혼의 문제를 많이 고민했다. 그의 ‘魂魄’시리즈 작품이 이것을 말해준다. 일단 이 시리즈를 보도록 하자.
[魂魄-生], 흰 수염을 흩날리고 노란색의 삼베옷을 입고 오른 손에 부채를 들고 왼손의 식지를 치켜세운 훈계를 하는듯한 할아버지의 모습과 대각선상에 있는 오른 쪽 아래 부분의 흰 옷을 입은 노인이 ‘全州李氏’라고 쓰여 있는 신주를 두 손으로 머리 위까지 정중히 받쳐든 모습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대표하고 그 대각선상의 뒷 켠에 희미하게 처리된 불상 및 그 뒤쪽에 정화수를 받쳐든 듯한 노인, 그리고 왼 쪽에 삼실을 두 손에 받쳐든 삼신할매 혹은 불교의 散花女를 대변하는듯한 여인은 전통신앙에 기초한 아름다운 기원을 나타내고 있다. 바로 이런 전통적인 가치관과 기원을 바탕으로 하여 화면 오른 쪽 위쪽의 달콤하게 자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부부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의 생명의 뿌리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생명의 뿌리는 [魂魄-傳歌], [魂魄-奏應]에서 예술적으로 승화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魂魄-傳歌]를 보면, 어린아이가 차렷 자세로 머리를 뒤로 젖힌 체 열심히 노래 부르는 가운데 농악대 차림의 남정은 도정신하여 장고를 치고, 흰 머리칼에 돋보기를 걸고 흰 수염을 내리 드리운 할아버지는 북을 치며, 姑婦 간은 훨훨 춤사위를 날리는 정경은 祖孫三代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예술의 圓融 경지창출을 보여주고 있다. [魂魄-奏應]에서는 북을 앞으로 드리운 체 흔들흔들 춤을 추는 남정, 주로 두 팔의 춤사위로 신명나는 춤을 보여주고 있는 두 여인의 이미지로 민족적 신명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魂魄-慰魂]는 주 화면으로 처리된 오른쪽에 민속신앙을 상징하는 거무틱틱하게 나란히 솟아있는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 두 장승 및 그 오른 쪽 옆의 솟대 사이에서 양반 갓을 쓰고 쇄납을 부는 남정과 눈을 지그시 감고 장삼을 너울너울 날리며 춤을 추는 여인은 일종 민족의 비원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좀 뒷면으로 처리된 왼쪽의 북을 치는 남정과 땅에서 건뜩 들린 듯한 맨발바람의 여인의 굴곡적이고 휘감기는 듯한 치맛자락을 통하여 활기에 찬 민족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魂魄-祭禮], 흰 옷을 여인의 역동적인 춤사위를 정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인의 오른쪽에 세워진 솟대, 그리고 뒷면의 채색기들을 통해 볼 때 이 여인을 무당으로 보아 마땅하다. 그럴진대 이 여인이 추는 춤은 예사로운 춤이 아니라 무당춤이 되겠다. 일종 살풀이의 축귀춤이 되겠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검은 색에 모호하게 처리되고 눈 가장자리만 흰색으로 처리된 형상이 몸을 비스듬히 기울인 체 여인의 등 뒤에서 가만히 ‘굿을 보는’ 귀신모습은 이 점을 한 층 더 증명해준다. 漢族의 ‘鬼上身’의 민속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도 하여 재미있다. 이 화면은 간단한 구도로 전통적인 민간신앙을 명징하게 내보이고 있다.
[魂魄-解憂1], 젊은 남녀 한 쌍이 등장한다. 그런데 가면을 쓰고 주홍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남자의 심볼, 물론 호미모양으로 상징화된 심볼을 들이대며 흰색의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깔끔하고 정숙한 여인에게 성적 공격을 가한다. 가면은 부끄러움을 차단하고 주홍색 옷은 정열을 나타낸다. 이에 여인은 부끄러운 나머지 놀란 동작에 얼굴을 돌려버린다. 오른 손에 부채를 들은 것을 봐서는 양반집 규수 같음에라. 배경으로 처리된 근엄한 표정에 합장을 한 부처가 금욕을 설교하고 있는 듯 하건만 남자의 성은 거침없이 노출되고 공격성을 띤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민간예술에서의 상놈이 양반을 性적으로 놀리고 희화하는 탈춤을 방불케 한다. 이 그림은 전통사회에서의 억압된 性적 콤플렉스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발산하는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살다보면 삶이 삐긋할 때도 있는 법. [魂魄-敎誨], [魂魄-解憂2]에서는 민족의 서글픈 현실에 대한 화가의 우환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魂魄-敎誨]를 보면, 주로 파파 늙은 할아버지와 새파란 젊은 새애기의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다. 흰 도포자락에 머리를 젊은 새애기 쪽으로 향한 체 왼손에 부채를 들고 오른 팔을 들고 오른 손 식지를 치켜세운 모습은 완연히 훈계투다. 아마 배경으로 처리된 충효례에 관한 훈계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듣는지 마는지 자지색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앙큼한 새애기는 요염한 춤사위를 구사하고 있다. 새애기 뒤 화면의 춤사위들도 새애기에 가세한다. 일종 우리 민족의 세대적 갈등-代溝를 보여주는 듯 하여 씁쓸하다. [魂魄-解憂2]에서는 한 술 더 떠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아름다움은 멀리한 체 향락에만 빠져있는 우리 민족의 젊은 세대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런 [魂魄] 시리즈 외에도 이철호 화가의 민족적 빠뽀스는 계속된다. [人與自然系列] 시리즈를 잠간 보도록 하자.
[人與自然系列-正月十五], 정월대보름날 산간마을의 공지에서 간만에 채색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 태를 드리운 젊은 처녀들이 끼리끼리 손에 손 잡고 둥근달을 모방한 ‘강강수월래’ 춤을 추고 아낙네와 남정네들은 한 잔 잘 된 자세로 역시 신명나게 춤을 춘다. 머리에 갓을 쓰고 회색 도포를 입은 양반은 부채 쥔 손을 점잖게 내두른다. 그러나 그 옆에 ‘상놈’인 듯한 흰옷 입은 남정은 제멋대로의 춤사위를 구사한다. 이 두 남정의 왼 쪽에 있는 두 여인도 보면 양반집 마님과 하녀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는 사회적 계층을 뛰어넘은 십오야 둥근달처럼 둥굴게 살아가자는 우리 민족의 인간합일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人與自然系列-山泉頌], 자연배경을 보아서는 늦가을로서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기발을 내걸고 양반과 상놈이 어우러진 신명나는 농악무로 풍년을 축하하고 있는 듯하다. 우람진 검은 산과 흰옷으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 사람들을 대비시키면서 천인합일의 경지를 창출하기도 한다. [人與自然系列-送行], 흰옷 입은 무리 즉 우리 민족의 상여대열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유소포장의 상여로 보아 양반의 상여대열인 듯하다. 거무틱틱한 자연배경은 죽음이미지를 잘 돋보여주거나 상징해주고 있다. 그리고 상여 앞 대열이 오던 길을 꺾어 산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이 죽으면 ‘북망산’으로 간다는 민속습속을 잘 이미지화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은 죽으면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유소포장의 화려한 상여도 무의미한 것으로 안겨오는 역설을 보여주기도 하여 철리성이 돋보인다.
[民謠]시리즈를 좀 더 보도록 하자.
[民謠-梅花哒呤], 징과 북, 해금으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 전통악기의 반주 하에 부채를 들고 삼베 두루마기를 입고 ‘매화타령’을 하며 자아도취에 빠진 판소리창자를 보여준다. 여기에 젊은 여인네는 춤이라도 출 자세를 취하고 있다. [民謠-道啦基], 할아버지 옆에서 입을 기껏 벌리고 진지하게 민요 ‘도라지’를 부르는 어린 아이를 중심으로 하여 할아버지는 앉은 체 부채 쥔 손을 자기도 모르게 흔들며 가락을 잡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귀여운 듯 하던 일을 중동무이하고 쳐다본다. [謠述]도 이 시리즈에 넣을 수 있는 것으로 삼베 두루마기를 입고 오른 손에 부채를 들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자아 도취된 경지에서 판소리를 하는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상모에 북을 치는 사람, 그리고 遷度의 僧舞를 추는 사람, 그리고 춤판으로 뛰어들 듯한 여인들의 모습으로 우리 민족예술의 하모니를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이런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千年阿里郞]에서 [魂魄-生]처럼 우리 민족의 생명의 뿌리를 계속 탐구하되 신화전설에 그 맥락이 가닿고 있다. 이 그림은 민족의 성산-백두산 천지에 우리 민족 삶을 한데 담아놓은 감을 준다. 서민들의 ‘농자천하지대본’의 신명나는 춤사위에 양반의 점잖은 부채를 든 팔놀림, 그리고 遷度를 하는 僧舞 혹은 살풀이 푸닥거리하는 여인에 남자박수 등등. 그리고 이 흰옷 입은 무리들의 천지 쪽으로 나아가고 향한 모습에는 우리 민족의 생명의 근원을 찾아 나선, 일종 뿌리의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군청색의 천지를 크게 하고 천지 주위로 뭉게뭉게 흰 구름이 피어나게 한 것은 그 신성함과 신비감을 더 해주고 있다. 이 [千年阿里郞]은 2006년에 연변가무단에서 공연하여 대성공을 거둔 민족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대형 음악무용서사시『千年阿里郞』과 맥이 닿아 있다.
[紀念千字文]을 좀 보자. [紀念千字文]은 돋보기를 건 전통의상의 할아버지와 그 옆의 어린이로 대변되는 구식 서당교육과 뒷쪽의 '瑞甸書塾' 및 양복차림의 남자, 영어문자, 그리고 뒷면 배경 중간에 다소곳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듯한 여인으로 대변되는 근대교육을 대비시키고 오른쪽 현대스타일 남정의 자기가 그린 유화를 가리키는 듯한 모습은 우리 조선족의 근대적 격변기 및 현대로의 전변을 담고 있다. 이어서 [長白回聲]을 보도록 하자. [長白回聲]은 새 중국 성립초기 우리 조선족의 생활상을 콜라쥬해놓고 있다. 이 콜라쥬는 인물중심으로 보았을 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화면 중간에 위치한 흑판에 씌어진 ‘하늘 天’, ‘따지 地’, 그리고 중국어로 ‘毛主席萬歲’를 쪽걸상에 올라 진지한 자세로 써나가는 어린이 및 이 정경을 대견스레 쳐다보는 어린이의 어머니인 듯한 여인의 머리를 뒤로 젖힌 형상을 통해 이중언어사용자 및 사회주의이념에 동조하는 우리 조선족의 정체성을 어린이와 어른의 공감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삽살개가 머리를 기껏 든 체 어린이의 글 쓰는 모습을 열심히 쳐다보는 모습은 유머스러움을 보태준다. 그리고 화면 왼쪽의 양반 갓을 쓰고 돋보기를 끼고 흰 두루마기를 입고 왼손을 뒷짐진 체 서서 위풍당당이 신문인가 들여다보는 모습은 여유로움과 더불어 ‘조선족노인독보조’의 모습을 연상시켜준다. 그리고 흑판 뒤 부분의 중절모자를 쓰고 퉁소를 거의 수평으로 들고 머리를 약간 뒤로 저치고 부는 모습은 오늘날의 행복한 삶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오른 쪽 화면 앞부분에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흰 옷에 지게를 진 농민은 전통적인 농경사회로서의 우리의 삶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농민 뒷부분의 등에 업혀 자는 아이를 입을 헤벌리고 바라보는 장년부부는 희망찬 내일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唱]은 [魂魄-祭禮]와 같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화면의 좌우 양쪽에 흰 옷을 입은 남녀의 상이 등장한다. 이들 남녀를 관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왼쪽 여인은 선채로 장삼을 훨훨 날리며 영혼을 遷度하는 僧舞를 춘다. 혹은 원혼을 달래 저 세상으로 보내는 살풀이 푸닥거리를 한다. 그리고 오른쪽 남자는 박수로서 북을 치며 여인의 동작에 장단을 잡아준다. 연한 토색바탕에 해괴한 문자나 그림들이 새겨지고 복숭아꽃이 핀 배경은 태고연한 맛을 풍기면서 저세상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農樂]은 [人與自然系列-山泉頌]에서 원거리로 보여준 농악무를 근거리에서 밀착해서 보여주고 있다. 장고와 북, 젖대, 징, 쇄납에 상모를 신나게 흔들어대는 흰옷무리, 우리 민족의 한바탕의 신명을 잘 보여준다. 모두들 맨발바람에 성수나게 발 박자를 박는 모습이 ‘맨발의 청춘’들을 떠올리게 한다. 화면 전면의 주요 포인트로 나타난 젓대를 부는 사람의 무아도취경, 쇄납 부는 사람의 뒤로 넘어질 듯한 모습, 징을 두드리는 사람의 머리를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틀고 귀를 기울이는 모습, 역시 무아도취경이 인상적이다. [祝祭]도 이들 두 그림과 같은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즉 심히 과장적이고 박력감 있는 춤사위로 남녀가 한데 어우러진 일종 카오스적인 우리 민족의 축제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다.
[傳歌]는 [魂魄-傳歌]에서 미진한 노래를 한 톤 더 높게 부르는 듯하다. 살구꽃을 배경으로 우리 조선족의 명랑한 삶이 숨쉬는 ‘나의 살던 고향’이 울려 퍼진다. 화면 중심 구도를 차지하는 어미송아지와 새끼 송아지 대 할아버지와 손자 녀석은 상사형의 클로즈업을 이룬다. 할아버지는 뒤에서 장고를 치고 손자 녀석은 앞으로 향한 체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대대손손 행복한 삶을 이어갈 우리 민족의 소원을 노래로 대변한다. 이외에 물동이를 인 아낙네, 수놓이를 하는 할머니는 평화로움과 화목한 삶의 정경, 그리고 꼴똘이 북을 치는 남정과 해금을 타는 남정은 삶의 신명을 잠입가경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阿里郞-苹果梨花]도 우리 민족의 삶을 근사하게 콜라쥬해 놓았다. 주로 왼쪽과 오른 쪽의 대조되는 두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왼쪽 화면을 보면 흰 수건을 동이고 흰옷을 입고 지게를 진 농군이 황소목덜미의 무엇을 손질하고 있는 모습은 농경사회로서의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역시 양반 갓을 쓰고 흰 한복을 입고 뒷짐진 손에 장죽을 들고 위풍당당이 여유작작하게 걷는 할아버지, 잠든 아기를 뒤돌아보는 젊은 아낙네, 돋보기를 끼고 검은 조끼를 입고 척 들어앉은 체 어린이에게 글을 가르치는 듯한 유식한 할아버지 모습은 우리 삶의 아늑하고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오른 쪽 화면의 농악대 및 쇄납 부는 남정의 성수 나는 모습, 그 앞의 공연을 마친 듯한 여인의 모습, 이 여인 앞의 가면극을 논 듯한 사람의 모습은 삶의 희열을 신명으로 푸는 우리 민족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儀式前着裝]은 무대 뒤에서의 우리 민족 여성들의 공연 준비를 위해 서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부채춤 준비를 하는듯하다. 분홍색 한복 치마저고리를 차려입고 부채로 입을 살짝 가리며 춤 포즈를 취해보는 오른쪽 여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무녀들은 팔등신의 미인들이다. 늘씬하게 드리워진 치마폭이나 미끈하게 빠진 키, 그리고 왼쪽 여인의 신비한 가슴 선을 드러낸 모습이나 오른쪽 뒷 켠의 옆으로 돌아선 여인의 미끈하게 흘러내린 뒷 잔등 선에서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위의 그림들이 전반적으로 우리 민족의 삶, 즉 집단적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면 [聖曲], [學走步], [春柳哨]는 한 가족을 통하여 세부적으로 우리네 삶을 보여주고 있다. [聖曲]은 중절모를 쓰고 흰 수염을 드리우고 퉁소 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눈을 지그시 감은 모습에서 퉁소 부는데 완전히 도취된 모습이다. 얼굴도 길고 앉은 몸채도 길고 팔도 길고 손가락도 긴 강마른 모습은 퉁소 그 자체를 담고 있어 퉁소와 하나로 녹아든 경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어린 손자 녀석은 할아버지의 퉁소 부는 모습이 신비한 듯 입을 하 벌리고 한 팔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 팔은 할아버지 팔을 잡은 체 하염없이 바라본다. 할아버지 뒷 켠의 눈을 지그시 감은 며느리는 농악무를 방금 끝낸 피곤함도 잊고 땀을 닦다 말고 시아버지의 구성진 퉁소 소리에 도취된 모습을 보인다. 오른쪽의 농악무 차림의 뒷모습만 드러내고 정화수를 받쳐 든 아들은 상아가 있다는 둥근 달님을 향해 온 가정의 소원을 빌고 있는 듯하다.
[學走步]에서는 걸음마를 타는 어린아이를 포인트로 하여 신명에 겨워 너풀너풀 춤을 추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정네의 장고를 앞에 건채 두 손을 척 들며 어깨춤을 춤과 동시에 오른 쪽 다리를 드는 동작은 전형적인 우리 민족 남성의 춤사위. 그리고 몸을 왼쪽으로 튼 체 왼쪽 팔을 머리위로 듬과 동시에 드러나는 여인의 풍만한 젖무덤은 그 즐거운 춤사위의 역동성도 보여주겠지만 생명 그 자체에 대한 노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뒤에서 재촉하고 엄마는 앞에서 이끄는 듯한 모습은 부부 합동의 후대양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春柳哨]에서는 아침에 일하러 가는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이를테면 매화가 핀 초봄에 들로 일하러 가는 한 가정의 모습이 나타난다. 개울물을 먹는 황소와 중절모를 쓰고 지개를 진체 피리를 부는 남정네의 대조적 모습은 노동과 예술을 하나로 융합시킨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구성진 피리소리에 홀렸는지 어린이는 한 손을 입에 빤 체 하염없이 황소와 아버지 쪽을 쳐다본다. 이에 밥 참을 머리에 인 아낙네는 개울물에 빠질세라 한 손으로 조심스레 어린이를 리드한다.
끝으로 [鹿巖溝慘案]은 [魂魄-敎誨], [魂魄-解憂2]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되 어떤 특정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보여 준듯하나 토황색으로 희리멍텅하게 처리된 화면 속에 분명 조선인들의 이미지로 우리 민족의 전반 수난사를 상징하고 있다.
2. 이철호 유화 27폭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
보다시피 이철호 유화 27폭에는 민족의 혼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하얀색, 한복들이 죽 관통되어 있다. 그리고 색동저고리 입은 어린이, 흰 머리수건, 흰색 혹은 삼베 두루마기 입은 사람 혹은 할아버지, 상모, 황소, 하얀 초가집, 양반 갓, 부채, 장승, 부처 이미지 및 지게 진 남정, 퉁소 혹은 쇄납 부는 남정, 농악놀이모습 등 민족적 상징코드들이 단골손님이 되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철호 유화 27폭에 나오는 인물형상들은 우리 민족의 전통민화에서 봄직한 형상들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우리의 전통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는 말이 되겠다. 이철호의 이런 민족적 성향은 그 자신의 의식적인 추구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화 [傳歌]가 2004년에 열린 중국 제2차소수민족미술작품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을 때 그가 창작담을 밝힌 내용을 잠간 보도록 하자. ‘우리의 모습이 본질적으로 서구사람들과 구별이 되듯이 우리의 산하도 그들의 산하와는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있는게 현실이다. 나는 이번 창작에 ... 자연조건에서 잉태, 탄생, 변천해온 우리의 문화에 내포해있는 삶의 정신, 생에 대한 태도 등을 표현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우리의 정신유산을 대대로 물려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창작을 하였다.’ 여기서 화가의 투철한 민족의식과 사명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이 민족적 성향을 구체적으로 보면 [人與自然系列]을 비롯한 [魂魄]시리즈 일부 및 기타 작품에서 전반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이나 정서, 정취, 지향도 나타냈겠지만 보다 많이는 중국 조선족의 그런 것들을 많이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화가의 정체성이 돋보이고 있다. 이철호는 우선 중국 조선족의 화가였다. 위의 창작담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보자. ‘이 지역작가로서 우리 민족문화발전에 일조를 하려는것이 바람직한 자세라 생각하면서 <전해지는 노래>와 같은 작품들을 계속해서 창작하려 한다’고 한 술회는 이 점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그래서 그의 화가적 사색과 붓끝은 조선족을 떠날 수 없었다.
이를테면 [阿里郞-苹果梨花], [長白回聲], [紀念千字文], [鹿巖溝慘案] 등에서는 제목 자체에서도 조선족 이미지의 멋을 풍기겠지만 실제 내용 면에 있어서 조선족의 주요 역사적 장면들이나 생활상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이철호 유화를 찬찬히 보면 그것이 굳이 조선족의 생활이나 정서, 정취, 지향을 나타냈다는 메시지를 여러 소도구를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러 폭의 화면에 여기저기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매화를 흩뿌려 놓음으로써 중국적 배경을 살려내고 있다. 그리고 같은 민족적 춤이라 해도 춤사위 하나에도 조선-한국과 다른 활달하고 시원시원하며 폭이 큰 중국 조선족의 대륙적인 스타일을 내비치고 있다. 이외에 조선족 남자들이 줄기차게 불어온 퉁소, 나들이 할 때 자주 쓰는 중절모, 그리고 근대적 여명을 알리는 ‘瑞甸書塾’, 새 중국으로의 편입을 알리는 ‘毛主席萬歲’ 같은 문자메시지 등도 마찬가지다. 중국 조선족에 대한 집착, 어쩌면 이것은 화가의 당위적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철호 화가에 있어서 이런 민족적인 사항들을 보다 많이 노래, 춤 등 민족적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적 경지를 통하여 나타냈다는데 특색이 있다. [民謠]시리즈는 더 말할 것도 없고 [阿里郞-苹果梨花], [長白回聲], [聖曲], [春柳哨], [傳歌] 등 많은 유화의 제목에서 벌써 이런 예술적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전통적인 무당의 살풀이 푸닥거리, 遷度의 僧舞, 그리고 강강수월래, 농악, 판소리가 주요 이미지로 등장함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퉁소를 부는 남정, 쇄납 부는 남정, 장고 치고 북 두드리는 남정, 열심히 노래 부르는 아이, 공연 준비하는 여인네들, 여러 가지 춤사위를 구사하는 여인네들 등 신명의 예술적 경지는 실로 다종다양하다. [春柳哨]같은 데서는 아침에 일하러 가는 마당에 소궁둥이를 따라 가면서도 구성진 피리를 부는 멋진 남정이 등장한다. 실로 생활, 일, 예술이 하나로 녹아든 경지. 우리 민족의 예술적 기질로 대변되는 신명을 잘 풀이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철호 화가는 이런 예술적 경지를 구사함에 있어서 그 영감을 우리 민족적 삶도 삶이겠지만 실제로 노래, 춤과 같은 우리 민족의 예술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과정에 얻었다고 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된다는 명제가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철호의 유화는 여기에 전적으로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민족의 혼을 부른 화가로 불러보기도 한다. 사실 이철호 화가의 이런 점이 인정받아 국내외 대상도 수두룩이 받은 줄로 안다. 그런데 이런 민족적인 것이 가치판단을 떠난, 전적으로 전통에 치우친 과거지향적으로 흐를 때 그것은 노스텔지아적인 향수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김소월의 感傷적인 ‘招魂’식. 이철호의 유화 27폭에는 이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을 볼 때 [傳歌], [民謠-道啦基] 등 일부를 내놓고 분위기가 좀 어두운 편이다. 유구한 전통과 고풍연한 멋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배경에는 거무틱틱한 경우가 많다. 사실 전통이요, 과거요 하는 것도 오늘을 위해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럴진대 당대를 사는 화가일진대 오늘의 우리의 민족적 현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철호의 유화 27폭에서 오늘의 우리 민족의 현실이 나타나지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노스텔지아적인 향수에 빠질 때 협애한 민족주의로 나아가기 쉽다. 현대는 민족적인 가치도 중요하겠지만 세계화 시대인 만큼 인류보편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돋보이는 시대이다. 그런 만큼 세계보편의 가치도 추구해 봄직하다. 적어도 민족성과 세계성의 균형감각은 있어야 될 줄로 안다. 사실 이철호 화가에게는 알게 모르게 이런 추구가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위에서 잠간 살펴본 [鹿巖溝慘案]의 경우 유럽의 어떤 명화를 패로디한 듯하여 전반 인류의 수난사적 의미를 담기도 한듯하여 좋다. 끝으로 한마디 더 하면, 이철호 화가는 이래저래 짓궂게 우리네 민족적인 것을 추구해왔다. 이것은 어쩌면 이철호 화가의 한 스찔로 볼 수 있다. 적어도 제재상의 한 특색으로. 그러나 시리즈의 경우에는 작품의 연속성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그래도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따분한 감을 주고 창의력이 떨어진 감을 준다. 이것은 한 화가에게 있어서 아무리 독특한 스찔이라도 너무 반복될 때는 따분함과 지루함으로 변하는 예술의 아이러니를 말해주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사진과 비길 때 미술은 사실적이지 못하다. 유화로 대표되는 유럽의 전통적인 미술은 줄곧 사실주의로 나아갔다. 그런데 19세기 말기 사진기술이 개발되면서 그것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미술은 고육지책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그리고 야수파, 인상파 등등 현대미술이 그 보기가 되겠다. 이런 많은 주의나 파가 파노라마처럼 번져 나왔으되 그것의 공통되는 점은 상징성을 많이 띠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미술은 알게 모르게 일종 상징예술로 흐르고 말은 것으로 알고 있다.
미술의 이런 상징예술적 특성의 극단적인 보기로 추상파가 되겠다. 피카소가 그 대표가 되겠다. 피카소의 아이들 장난 혹은 원시인들 그림 같은 기하학적 모형을 많이 구사하고 다시각, 다공간적인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개인적인 상징기호를 많이 동원한 극단적인 추상파 그림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이철호의 유화 27폭은 이런 추상파의 난해성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 하여 원근법과 해부학에 기초를 두고 리얼티를 추구한 유럽의 전통적인 사실주의 유화라는 말은 아니다. 이것하고도 분명 다르다. 입체감을 살리기 위한 울퉁불퉁함보다는 2차원의 평면적인 깔끔함이 있다. 그리고 그 상징적 이미지도 보다 많이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철호의 유화 27폭은 표현주의적인 상징미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화가의 주관적인 사상감정을 이미지화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주의 방식을 취했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 만큼 그의 유화에도 다시각, 다공간적인 이미지가 한 캔버스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콜라쥬 수법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民謠-道啦基]의 경우를 보면 집 밖 마당에 있을 법한 암탉과 병아리, 그리고 삽살개가 집안에 들어와 있으며 저 들녘에서 일을 마치고 소를 몰고 퉁소를 불며 돌아올 남정과 소도 집안사람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일종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하여 콜라쥬 수법으로 화가가 상상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조합을 했음을 알 수 있다.
[長白回聲]은 새 중국 성립초기 우리 조선족의 여러 생활상을 한 캔버스에 콜라쥬해 놓았다. 그리고 그의 유화 27폭에 심심찮게 보이는 갓을 쓰고 부채를 든 양반이미지와 농악무 옷차림의 상사람들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서 같이 놀아나게 한 것은 화가의 불합리한 사회계층을 타파하고 우리 민족의 융합을 지향한 간절한 소원을 나타내기 위해 콜라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철호 유화 27폭은 중국 전통적인 수묵화나 한국 전통민화 필법을 많이 구사하기 때문에 우리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로부터 놓고 볼 때 이철호의 유화 27폭에는 情景交融, 虛實相生, 韻味無窮의 意境이 잘 살아나기도 한다. [人與自然系列] 작품에서 이런 경지가 잘 나타나있다.
이 시리즈 가운데 [送行]은 그야말로 情景交融 속에 韻味無窮의 경지를 잘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畵龍點睛의 필치도 잘 구사한다. 예컨대 [春柳哨] 같은 데서 물웅덩이에 빠질세라 어린이를 리드하면서 아낙네가 입을 살짝 벌리는 모습은 畵龍點睛의 필치로서 모성적인 섬세함을 잘 살렸다. 이외에도 변형되고 과장된 필치로 유머스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의 신명을 나타내는 화면에서 이런 필법을 많이 보게 된다. 예컨대 [農樂] 같은 데서 쇄납을 부는 남정을 비롯하여 앞면에 나선 사람들의 형상은 일종 골계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철호의 유화 27폭은 우리에게 似曾相識의 익숙하고도 친절한 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여 이철호의 유화 27폭의 예술적 특색은 서양의 유화적인 필법과 동양의 수묵화적인 필법이 잘 갈무리되어 나름대로의 새로운 화법을 창출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이철호 화가는 유화를 그릴 때 주로 나이프와 붓을 사용한 것 같다. 춤사위의 역동성을 나타내는 휘감기는 듯한 옷사위를 그릴 때 이 붓이 톡톡히 한 몫 한 것 같다. 서양의 나이프와 동양의 붓으로 상징되는 유화와 수묵화의 東西合壁가 바로 이철호의 그림.
본고는 어디까지나 그야말로 仁者見仁, 智者見智 격으로 나름대로의 인상적인 비평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철호 화가 본인이 붙인 유화 제목하고도 잘 맞지 않는 분석을 가하고 있는 줄로 안다. 그리고 근근이 유화 27폭을 대상으로 한 만큼 以偏蓋全의 愚를 범한 줄도 안다. 그럴진대 많은 미술 애호가나 전문 평론가들의 이철호유화 다시 읽기 시도도 얼마든지 가능할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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