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에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애가 한국으로 나왔다. 한국에 도착하여 이틀 후부터 아들애는 치킨 집에 들어가 야간 일을 했는데 설거지도 하고 화장실청소도 하고 닥치는 대로 했다. 새벽 한시에 치킨 몇 개를 튀겨서 모여들어 먹는 것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처음에는 낯이 가려워서 치킨 한쪽을 먹네 하더니 다음날부터는 배고파서 체면 없이 먹어줬다고 아들애가 말했다. 후배들이 자기 일까지 아들애한테 시켰고 선배들은 아들애가 대답을 바로 하지 않는 것을 자기들을 무시하는 줄로 여기고 트집을 잡았다. 아들애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을 맛이라고 하면서도 돈을 벌려고 그냥 꾹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퇴근 후이면 전철이 끊기어 집으로 오지 못하고 옆 가게에서 일하는 친구네 집에 가서 자거나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 6시가 되어서야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만원이 넘는 택시요금을 절약하느라 아들은 추위도 배고픔도 이겨냈다.
한 달 후에 아들애는 송탄에 있는 한 핸드폰조립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역시 야간 일이었다. 처음에는 수당까지 합쳐 월 170만원을 준다고 해서 갔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고 보니 급여도 작았고 밤중에 밥을 12시쯤 먹고 아침에는 라면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휴식마저도 일이 많아서 쉴 수가 없었다. 숙소는 열두 사람이 함께 자는데 한족도 있고 나이든 사람도 있고 해서 워낙 까다로운 성격인 아들애는 투덜대더니 차츰 적응이 돼가는 눈치였다.
두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애를 보니 눈 주위가 검게 돼있었고 먹지도 자지도 못해서 아주 볼품없이 야위어 있었다. 불쌍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픈 마음을 꾹 누르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해주었다.
핸드폰을 구매하려고 매장에 가서 아들애가 번 돈으로 산다고 했더니 우리 모자를 의아한 표정으로 보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한테 스마트폰쯤은 쉽게 사준다는 것이었다. 아들애도 은근히 내가 사주기를 기대했지만 나는 그렇게 모든 걸 쉽게 아들애를 만족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들애는 자기가 번 돈을 천 원 한 장도 마음대로 쓰지 않았고 중국에서 마구 사들이던 옷도 인민폐로 환산해 본 후에야 구매했다.
아들애가 한국에 와서 얼마 안 돼 나는 앓아눕게 되었다.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웬만하면 집에 있는 성격이 아니지만 부모가 아프면서도 돈을 벌어서 너의 학비를 대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나는 한 열흘 동안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들애는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고도 200만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야 어머니가 왜 자꾸 아프다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이죠? 어머니가 돈이 없다고 하는 마음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제 내가 몇 달 후면 대학을 졸업하는데 한국에서 그만 일하세요. 내가 벌어서 어머니한테 돈을 보내주겠으니 이번에 아예 나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건 내가 아들애한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평소 아들애는 돈이 필요할 때만 나한테 전화를 했고 때로는 한 달에 40만원도 넘어 쓸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늘 돈 없는 부모를 만났다고 신세타령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들애가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아들애를 한국에 불러내와 직접 체험하게 한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아들애가 장차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적응하고 앞으로 어떤 취업의 길을 택할 것인가를 남 먼저 체험하여 자기만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의 자녀들도 몇 명이 한국에 나왔지만 정작 일했다는 애는 하나도 없었다. 그 애들은 두 달 혹은 석 달씩 부모 돈을 펑펑 쓰다가 중국으로 돌아갔다. 물론 부모들이 곁에 없어서 자녀들이 사랑에 굶주린 것을 보상해준다는 심리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고생을 응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얼마 전에 한 직장에서 일하는 언니의 딸이 중국에서 놀러 왔는데 엄마의 카드를 가지고 나가서 일주일에 30만원을 쓰고도 모자라 아버지한테까지 돈을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든 살도 넘는 엄마가 관절염으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딸은 매일같이 돈타령을 했다. 그런 딸한테 매정하지 못한 원인도 있었다. 십여 년간 본가 집 엄마한테 딸을 맡기고 한국에서 일하느라 돈만 보내주었다는 엄마의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이었다.
반면 한국의 아이들은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기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돛의 무게를 이기는 배라야 항해를 할 수 있다."
이는 프랑스의 철학가 겸 소설가 사르트르의 충고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대로 커간다면 과연 앞으로 자신의 삶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까 싶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우리들에게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가르쳤다." 새의 이소와 마찬가지로 혼자 힘으로 우뚝 설 내 아이를 위해서는 독한 부모를 기꺼이 연기하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부모의 확고한 원칙과 일관성이 아이의 미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우리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넘치게 사랑하되 아프게 양육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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