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詩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 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은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시인 박인환 시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중에서
2. 문학의 강에서 함께 노를 젓는 부부사랑
탱탱하게 약이 오른 고추바람이 옷 속을 헤집으며 불고 있었다. 1983년 12월 서울 동대문 ‘영 커피 숍(young coffee shop).’ 국문학자 이숭녕 박사님과 연세대학교 마광수 교수님을 ‘한국 순례문학회 송년 문학의 밤’ 행사장에 초대하였다. 시인 ‘윤동주’의 문학성과 시대성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등의 주제토론과 회원들의 주옥같은 시 낭송을 하였다.
밤 늦게까지 행사는 이어졌다. 그간 성공적인 행사를 위하여 한 달여 동안 준비를 하느라고 우리들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르겠다. 피곤하기도 하였지만 행사 후의 허전함에 어디라도 훌쩍 떠나고 싶었다. 본디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먼 낯선 곳으로 가서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푹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나의 발길은 승강장 쪽으로 시나브로 가고 있었다. 이때 집 방향이 마침 영등포 쪽이었던 회원 미스 김과 동행하게 되었다.
“어디 가세요?”
“예, 어디 훌쩍 여행을 다녀오려고요.”
“아, 그러세요. 멋있는데요!”
문득 여행은 혼자보다 옆에서 말벗이 한 사람 있는 것도 괜찮다 싶어 미스 김한테 말을 걸었다.
“우리 사고(!) 한 번 칠까요?”
“예······· ?”
“이곳 영등포역 플랫폼에 나가 어느 방면이든 제일 먼저 오는 남행열차를 타고 어디든지 가는 것 입니다.”
“······ ?”
“뭐,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납치는 안 할 터이니 갑시다. 그까이꺼····· ”
“······. 예, 괜찮을 듯싶네요.”
“맞아요, 하하하--- 가히 떠나는 자의 가방을 둘러맨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든가요!”
“호호호--- 플랫폼에서 마지막 열차를 놓친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아름답구요! 표현이 멋있어요.”
1983년 30년 전 미스 김과 미스터 김을 우연히 태운 열차는 끝내 부부열차가 되었다. |
그날 밤 미스 김과 함께 탄 열차가 훗날 우리들을 운명의 타래 줄로 묶어놓을 줄이야!! 이때의 시간은 아마 밤 열시 전 후였으리라. 여행의 진미는 약간의 술과 간식거리가 아니던가. 역 구내에서 술과 오징어 과자를 조금 사고는 열차에 올랐다.
야간열차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미스 김과 나는 열차의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았다. 호남선 행 열차는 깜깜한 중원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애초부터 목적지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어디를 가다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내리거나 말거나 하는 식의 정처 없는 밤길 여행이었으니 부담이 없었다.
두 사람은 술과 과자를 주고받으며 의자를 뒤로 젖혀 편안하게 앉았다. 마치 사랑하는 한 쌍의 연인처럼 말이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호기심과 이성과 함께 라는 설렘이 주는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어정쩡했던 마음 한 켠을 슬금슬금 이야기꽃을 피우며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사랑과 인생을 얘기했다. 문학이란 것이 무엇인지 시나브로 다가왔다가 더러 허무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가치관의 혼돈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앞으로 나아가야할 사회적 진로에 대하여도 얘기를 했다.
우리는 피 끓는 스무 살 청춘이라고 다짐했다. 스무 살은 그냥 스무 살 이어서는 안 된다며 말했다. 감탄사가 붙는, 아! 스무 살 이어야 한다. 희망과 절망의 간극이 존재하는 삶이어야 한다. 본질의 현상과 현실의 이상이어야 한다. 스무 살의 언어는 현재형이 아닌 미래형이기에 매력적이다. 스무 살은 애로라지 의문형! 감탄형! 이어야 한다는데 둘의 공통분모가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었다. 나는 말했다.
“문학(文學)에서 지적(知的)인 재미를 누리려고 하는 것은 삶의 참다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생명의 발견을 뜻하자는 것이지요. 이것이 곧 문학에서 가장 소중히 가꾸고 넓혀 나가야 할 소임 입니다. ‘문학이 또 하나의 기능인 상식의 세계 속에서 주변의 당면문제를 펼쳐놓고 깨우치게 하는 상식적 재미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이지요. 그러나 ‘문학의 비중으로 볼 때 상식적 재미를 추구하는 문학’은 ‘지적인 재미를 형성화하는 문학’ 에 견주어 높은 평점을 줄 수 는 없지만 상식의 세계를 풍족하게 하고 인간사회를 따뜻하게 밝혀준다는 의미에서 마냥 무시 할 수 없지요.”
미스 김도 질세라 말을 받아친다.
“그러나 지적인 것도 재미를 동시에 찾는 독자들도 휴식의 공간으로써 상식적인 재미를 누리고 싶은 인간의 본성도 있어요.”
미스 김은 수필이 좋아 수필을 쓰게 되었다며 수필 강론을 제기한다.
“저는요, 수필이 원숙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고아한 생활의 표현이며 조화의 미를 잃지 않는 문학이기 때문에 이 장르에 매력을 느꼈어요. 마음의 여유에서 우러나는 솔직한 독백을 통하여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표현하는 산뜻한 글이어요. 어떠한 제재이든지 개성과 무드에 따라 써야하며 균형 속에서 파격하는 여유를 필요로 하기에 말예요.”
“아, 맞아요. 수필은 그렇지요. 온아우미(溫雅優美)하며 따뜻하고 아담한 아름다움 같은 그런 것이 수필문학의 백미(白眉)이지요.”
“저는 중수필 류 인 에세이(Essay), 즉 비교적 이론적, 비평적인 소논문 보다는 연수필 미셀러니(Miscellany)라고 총칭되는 체험적이고 부드러운 정서적인 수필이 좋아요. 마치 마가렛 꽃의 하얀 꽃잎과 짙은 녹색의 잎사귀가 달린 청초하기 이를 데 없는 초여름의 꽃, 신록의 유월에 결혼하는 신부, 준 브라이브의 수필을 쓰고 싶어요.”
“미스 김은 수필에 대하여 아주 신뢰가 깊군요. 저도 산문을 좋아하기에 수필도 쓰지만 특히 소설로 성공하고 싶어요."
미스 김은 손에 쥔 오징어를 찢어 내 입에 넣어준다. 그러면서 말을 받는다.
“왜 이랬잖아요. 이십 대에는 시를 쓰고, 삼십 대에는 소설을 쓰며, 사십 대에는 희곡을 쓰고, 오십 대에는 수필을 쓰라고 말이에요.”
헤밍웨이의 절대적 고독과 사투를 벌이는 고뇌의 문학에 강 |
“저는 유명한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소설’이라는 깊고 넓은 강으로 빠져 들기 시작하였어요. 그 소설 마지막 대단원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요. ‘ 길을 올라가서 판자 집에서는 노인이 다시 잠들어 있었다. 여전히 엎드린 채였다.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역경을 딛고 살아가는 삶, 도전하고자 하는 삶의 에너지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어요. 노인과 바다에서 ‘사자의 꿈’ 이라는 단어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고 볼 수 있어요. 진흙탕에서 도솔천을 꿈꾸듯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깨달음의 미학 이것이 ‘노인과 바다’가 주는 소설의 핵심 포인트예요.”
나는 미스 김이 찢어준 오징어 다리를 안주 삼아 소주를 훌쩍 마셨다. 열차는 기적소리를 내며 깜깜한 터널 속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래서 그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요?”
“소설은 현실 속에서 소재를 선택하여 그것을 이야기로 구성한 허구를 가공적으로 쓰는 것 이지요. 이야기 속의 3요소인 주제(主題. theme)와 진행(進行. ing)으로의 이어짐, 문체(文體.style)이어요. 그리고 구성의 3요소 인물(행동의 주체)과 배경, 사건으로 이어가요. 구성 3단계 발달 요소인 등장인물 소개, 배경의 확정, 사건의 실마리를 이야기의 전개로써 풀어가지요. 갈등의 분규를 일으키는 단계를 시작으로 위기의 절정을 유발하는 전환의 계기와 결말인 주인공의 운명이 분명하고 성패가 결정되는 해결이어요. 그리고 문체 3요소를 뺄 수 없어요. 서술과 묘사, 대화가 바로 핵심이지요. 그리고 소설의 시점(視點)은 몇 가지가 있어요. 일인 칭 주인공 시점이 있는데 자신의 일에 관해 이야기를 구성 하는 것이지요. 일인 칭 관찰자 시점의 주인공과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점이며, 두 번째는 작가 관찰자 시점의 삼인 칭 관찰시점으로써 작가 또는 다른 사람이 엄격히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구성이고, 세 번째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어요. 작가가 인물의 내외적인 면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어요. 나는 이 세 번 째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을 쓰고 싶어요. ‘토지’ 의 박경리님의 문체나 ‘장길산’의 황석영님에 유장한 문장과 세계적인 작가인 모파상이나 체호프, 애드가 앨런 포우 등의 전개방식처럼 말이에요.”
“예, 그렇군요. 소설에 대한 완벽한 이론과 실체가 담긴 말씀이네요.”
겨울밤 깜깜한 평야를 가로 지르는 호남선 야간 완행열차는 뚜--- 하고 긴 목을 빼며 숨차게 달리고 있었다. 조금 전 까지도 소란스러웠던 차내가 늦은 밤 시간이라서 일까. 승객들은 잠에 빠졌는지 조용하다. 종종 판매원이 침묵의 공간을 가르며 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김밥이나 오징어 있어요. 카스텔라와 시원한 사이다가 있어요.”
“자, 맛있는 울릉도 호박엿이 있어요.”
새벽이 가까워오자 스르르 졸음이 와서 잠깐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갈증이 나서 눈을 떴다. 옆의 미스 김도 지그시 눈을 감고 혼곤하게 잠에 빠져 있었다.
“으음음---여기가 어디일까 ?”
그러자 옆의 미스 김도 살며시 눈을 뜨며 말한다.
“글쎄요, 아마 이리(익산)를 지나고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럼 우리 조금만 가다가 내리지요. 속이 쓰리고 좀 지루하네요.”
“예, 그러지요.”
3. ‘여자의 행복은 바로 유혹자를 만나는 것!
그렇게 몇 정거장을 더 가다가 우린 정읍역에 내렸다. 아마 그때가 새벽 3-4시쯤 되었을까. 역 광장에는 을씨년스런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건너편 상가에는 몇 개 점포만이 전등이 켜져 있고 가끔 찾아오는 새벽 손님을 받고 있었다. 열차에서 마른 오징어에 소주를 마셨으므로 속이 쓰렸다. 그래서 어디 가서 속을 데치는 국물이라도 먹었으면 하였다.
동양의 어머니 중국의 임어당은 “인간의 행복은 대개가 동물적인 행복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
그러자 희붐한 골목에 하늘거리듯 불빛을 비추고 있는 식당이 보였다. 둘이는 식당에 들어가 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하여 차림 판을 보았다. 새벽에 먹을 만한 마땅한 음식이 없는 듯하였다. 그러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싸인 펜으로 비뚤하게 눌러쓴 ‘떡국’이란 차림표가 쓰진 식당이 보였다.
“미스 김. 우리 떡국 한 그릇 먹읍시다.”
“예, 좋을 대로 하세요.”
“아주머니 여기 떡국 두 그릇 주세요.”
“예, 곧 가고만이라우.”
잠시 후 뽀얀 국물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이 나왔다. 둘이는 배가 고픈 탓에 후루룩--- 후루룩 --- 떡국을 먹기 시작하였다. 열차에서 빈속에 술을 마시고 밤새 달려왔던 탓일까. 속이 쓰리고 출출하던 터에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다.
시장 끼를 때우고 나니 몸이 나른해졌다.
그렇다고 조금만 있으면 날이 샐 터인데 여관방에 가서 쉰다는 것도 그렇고 또 함께 활동하고 있는 문학회 여자 회원과 여관방이라니? 안될 일 이었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은 지난 밤 서울에서의 큰 행사를 마치고 대여섯 시간을 밤 열차를 타고 왔다. 거기에다 편안하게 잠도 못자고 빈속에 술까지 홀짝이고 왔으니 피곤이 겹쳤다. 잠시 어디에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주인아주머니를 찾았다.
"아주머니 우리는 서울에서 왔는데요. 잠시 어디에서 쉬었으면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너무도 수월하게 대답한다.
“손님 그러면 우리 식당 뒷방이 있어요. 거기서 잠시 눈 좀 붙이고 가세요.”
“아, 그래요 마침 잘 되었네요. 갑시다 미스 김.”
“ ·······. ? 그 , 그럴까요.”
두 사람은 아주머니 뒤를 따라갔다. 그곳은 허름한 식당 뒷문의 별채처럼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소오님, 쪼께만 눈을 붙이믄 아침인께요. 거기께로 쉬었다 가지라우.”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의 아주머니가 사라졌다. 그곳은 가끔씩 식당을 찾는 새벽 손님들을 위하여 편의를 잠시 제공하는 쉼터 방 같은 곳 이었다.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다. 성인남녀가 한방에 들어왔다는 야릇한 마음이 스치자 서로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좀 쉬었다 갑시다. 미스 김은 저쪽 윗목으로 눕고, 나는 이쪽 아래쪽으로 쉴게요.”
“그- 그래요. 그렇지만 왠지 이상하네요?”
“뭘 그렇게 생각해요. 자 쉽시다 “.
각기 떨어져 누워 피곤해 겹친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막상 잠을 청하려니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몸의 상태로는 금방 곯아떨어질 기세였으나 옆에 누가 있다고 생각하니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천정을 쳐다보았다. 시골 방이라서 그런지 천장에는 지저분한 파리똥과 쥐 오줌에 얼룩진 벽지가 누리끼리하다. 벽면 한쪽으로 어느 유식한 나그네가 머물다 갔는지 멋대로 휘갈겨 쓴 낙서가 빛바랜 흔적으로 남아 있다.
“햇볕에 그을리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그을리면 신화가 이루어진다.”
“‘당신이 오늘 머물다 간 이 자리는 먼저 산 나그네가 지나간 자리이며 또 훗날 누군가가 당신의 자리에서 머물다 갈 것이다.” - 나그네 백 -
가만히 저쪽의 미스 김을 살펴보았다. 그쪽도 쉽게 잠이 안 오는가 보았다. 아담한 키에 여린 가슴을 조이며 잠을 뒤척이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 이었다. 식당에 있을 때는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 같더니만 막상 호젓한 방에 들어서니 쉽사리 잠이 오질 않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처신을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었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이 문학회 모임은 약 오십 여명의 회원이 있다. 이 가운데 여성회원이 삼십 여명이 넘었다. 남자 회장인 나로서는 각종 모임이나 행사시 여성회원들을 골고루 대해야 했다. 모임 후 같은 방향으로 여성회원과 함께 걸어가면 다음날 회장과 어느 여성회원과는 이상한 사이라더라, 사귄다더라 하는 종류의 얘기가 나와 원만한 모임을 이끌 수 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문학에 청춘을 불사를 만큼 열정적으로 문학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상과 목표를 이 문학회 운영과 미래에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스 김은 문학회의 평범한 회원으로써 문학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특히 미스 김은 전북 고창이 고향이었는데 미당 서정주 시인의 집 부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미당이란 큰 시인의 문학적 영향을 받고 자랐단다. 문화예술의 고향이라는 예향 고창에서 청순한 여고시절을 마치고 서울로 갓 올라온 과수원집 막내 딸 이었다. 위로 오빠가 넷이나 있어 귀엽게 사랑만 받아오면서 자란 탓에 막내의 어린 티가 벗어나질 않았다.
김우영 김애경 부부작가가 펴 낸 부부저서 표지 |
미스 김과 나는 그저 평범한 문학회 회원으로 모임에서만 대화하고 만나곤 하였다. 젊은 남녀가 느낄 수 있는 어떤 연정이나 관심을 가질만한 관념 설정이 안 된 사이였다.
회원인 미스 김과 나란히 어느 날 야간열차를 타고 낯선 땅 뒷방에 함께 누워 잠을 청하다니······? 이렇듯 남녀 사이란 참으로 소설 같은 만남이 되어가나 보다 싶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방 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나는 스스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나의 손이 어느새 저 쪽 윗목에서 누워있는 미스 김한테 손길이 가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몸도 그 쪽으로 기울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미스 김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의 떨리는 손은 누가 시킨 듯이 미스 김의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미스 김은 완강하게 손을 뺀다. 다시 다가선 큼직한 손으로 미스 김의 작은 손을 나꿔챘다.
서양의 철학자 ‘피치글리리라’ 가 말한 ‘여자의 행복은 바로 유혹자를 만나는 것이다.’ 라는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차츰 숨이 가빠진다. 미스 김의 손을 잡은 나는 차츰 미스 김의 체취 속으로 숨 막힐 듯 빨려 들어갔다. 두 사람은 호홉이 빨라진다. 어느새 바짝 다가선 나의 몸이 미스 김과 더욱 밀착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침묵만이 흐르던 작은 방안이 갑자기 거친 호흡의 소용돌이로 돌변하였다. 비바람에 폭풍우가 몰아치는가 하면, 백조가 호숫가를 거닐 듯 수면위로 사뿐사뿐 노닐고 있고, 하늘과 산이 하나로 호흡을 한다. 두 개의 세포가 겹겹이 하나로 합치되어 남녀의 사랑에 문이 열리고 있었다.
태초에 발원지에서 시작한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다가 시냇물과 만난다. 다시 넓은 강에서 만나는가 싶으면, 더 나아가 광활한 바다에서 두 줄기 인연이 합수合水를 이룬다. 포말이 일고 거친 밤바람이 부대끼며 흐느끼듯 사랑의 바다는 위대한 사랑으로 승천하였다. 동양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중국의 임어당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행복은 대개가 동물적인 행복에서 출발한다.”
남녀의 행복은 서로가 자기를 간직하고 완전히 조화하는 정(情)의 경지이며 어두운 힘에 접하는 것이다. 남성은 하복부 신경중추에서 상부의 중추에 옮겨가서 이번에는 남성이 아닌 여성과의 결합을 찾게 되고 그리하여 새로운 가정건설과 사회활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행복은 모두가 관능적인 행복의 바탕인 것 같았다. 미스 김의 경우가 그렇다. 둘이 아닌 하나의 동체로 각인이 되면서 그가 좋아졌으니까. 상대적으로 미스 김도 그랬다. 그 날 호남선 정읍역 앞 ‘떡국사건’ 이후 내게 기우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게 기울어 왔다.
이제는 미스 김과는 문학회 회원 간의 거리가 있는 남남이 아닌 하나가 되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어도 사유(思惟)의 바다는 공유될 수밖에 없고, 이제는 몸도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는 둘의 만남이 환희 일 수 도 있고 번민이 될 수도 있었다. 환희와 번민의 강을 건너며 사랑의 강을 이룬 우리였다. 이제 둘이는 어느 모임의 회원 간의 팽팽한 유격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남들처럼 서울 거리를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능청스런 ’연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난 1983년 12월. 길 위에서 만나 열차를 타고 떠난 야간열차 여행은 평생 부부열차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소설처럼 만나 부부가 되고 아이 셋을 낳고 한 방향을 향하여 우리들의 문학, 우리들의 이이야기를 30여년 도란도란 나누며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4. 나가는 시
만월 滿月의 봄밤이
아내의 가슴처럼 부풀어간다
자욱한 실내악은 어느 늙은 바이올리니스트의
긴 손마디처럼 경련에 울먹이며 율조한다
실을 감는 아내의 하이얀 손놀림은/ 청아의 소박
숨이 차는 모양이다/ 거칠은 가슴의 율동과
두툼한 실패는 자꾸만 살이 쪄간다/ 숨이 막힌다
쓰다만 강의 노트를 접어야 겠다
실 감는 아내의 체온과 늦봄의 밤은 빠알갛게 익어
가아득 실내를 메운다/ 숨이 막힐 저
더욱 숨이 막히어 버렸으면······.
--自詩 ‘실 감는 아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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