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등본에도 없는데(외 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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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본에도 없는데(외 2수)
  • 박수산
  • 승인 201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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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산 시

오늘도 꿈속에서
그녀를 보았다.

오른손에는 내가 건네준 꽃다발
왼손에는 내가 선물한 쇼핑백
좋아서 활짝 웃는 그녀

우리는 하나라고
내 품에 안겨
내 볼에 키스하던 그녀

문 여는 소리에
깨어나 보니

한 손에는 내가 즐겨 먹은 삼겹살
다른 한 손에는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
아내는 흔들며 날 보고 웃는다.

오늘은 주말이라
애들은 안 왔어도
둘이서 멋지게 삼겹살 파티를 하잔다.

세월은 바퀴처럼 굴러 이십 년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추억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하는데
왜 아직도 자꾸만 못난이처럼
아내 앞에 고개 못 들게
첫사랑인 그녀가 꿈속에서 보이나


백화점 쇼핑

백화점 가방 코너
가방 하나 골라 어깨에 멘 아내
보란 듯 반원을 그리며 무게를 잡는다.

가격표를 쳐다보던 아내
화들짝 놀라 가방을 제자리에 놓는다.

한참 망설이다
또 다른 가방 하나 골라잡고 만지작거리던 아내
살며시 나를 쳐다본다.

사지 그랬어? 보기 좋은데

눈길은 가방코너에 넣어두고
발만 나오던 아내

아니, 자기 허리띠 졸라매는 거 보기 싫어


입에서 꽃이 나온다

월급이 이렇게 많아예?

두툼한 월급봉투 받아 쥔 여자
입이 귀에 걸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처럼 5년만 월급 타면
은행융자 다 갚겠다.

주야로 팽이처럼 회사에서 뱅뱅 돌던 사내
한잔 마신 막걸리에 취기가 올랐나?
오늘따라 목에 힘을 준다.

걱정 마이소
요새는 회사가 잘 돌아
이번 달에도 야간에 특근까지 꽉 차 있소

한숨만 토해내던 입
이제는 꽃만 만들어 나온다.


<지필문학> 2013년 신년호에 발표한 시.

[저작권자(c) 평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북아신문,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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