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와 관조(觀照)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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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와 관조(觀照)하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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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251>

[서울=동북아신문]오늘날 수필이 다른 장르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수필 쓰기를 쉽게 여기는 풍조에서 비롯된다. 수필은 수필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쓸 수 있고, 무엇을 가지고 써도 되며, 형식상 자유로우니 어떤 형식으로 써도 다 수필이 된다는 인식이 수필을 우습게보게 한다. 또 쉽게 등단되는 수필가 양산과 아무렇게 써도 된다는 식의 수필 양산도 큰 문제이다. 오늘날 수필계를 타락시키고 더욱 푸대접 받게 하고 있는 큰 원인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과 상황에서 기행수필과 기행문의 구별도 하지 못하는 수필가가 행세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문인들 중에는, 수필은 비교적 쓰기가 쉽지만 아주 좋은 작품을 쓰기에는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수필로 잘 쓰기란 다른 장르보다 힘들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무엇을 가지고든 어떤 형식으로라도 쓰면 되는 수필의 성격에서 쉽게 다가가지만 막상 써 보면 쉽지가 않다. 제법 잘 쓴다는 사람도 좋은 수필을 써 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많이 쓰면 그래도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좋은 수필을 쓰기는 정말 어렵다.

나는 수필 쓰기를 대학시절부터 했으니 어언 50년이나 되었다. 1971년에 수필문학회 창립에 참여한 이후 개인수필집도 열댓 권을 냈으니 몇 백 편을 쓴 셈이다. 국정교과서인 중학국어와 중국 연변대학의 사범대와 인문대 교재에도 수필이 실렸으니 남다른 복도 받은 셈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수필을 쓰려면 애를 태운다.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작품도 없으니 미숙하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수필, 남다른 작품을 쓰려고 많이 고민한다.

나는 수필을 집필하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특히 작품을 쓰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한다.

먼저 무엇을 가지고 쓸까 소재들부터 찾아본다. 소재는 사람과 삶은 물론, 동식물과 자연, 그 생태와 현상들을 살핀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인물들의 활동과 업적, 사상과 사고방식 등 다방면 다양의 것들을 생각해 본다. 어떤 것이든 수필로 다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런데 말이 소재부터 살피는 것이지 실은 그 소재가 쓸 만한 거리로 떠오르는가를 생각한다. 쓸 거리, 주제를 찾는 것이다. 각 소재들을 뒤져보며 쓸 만한 내용이 없는가, 무슨 이야기를 쓰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고민한다. 물론 떠오르지 않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버리고, 다른 소재를 놓고 또 생각한다.

때로는 주제를 먼저 생각하고 관련 소재를 찾기도 한다. 하나의 소재에 대해 주제를 바꿔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소재를 놓고 쓸 만한 내용을 생각하고 살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동원되는 내용이나 이야기는 내가 아는 전부와 연결된다. 남이 다룬 내용이 떠오르면 시각을 바꾸어 다른 내용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주제부터 정하고 관련 소재를 찾든, 소재를 먼저 고르고 쓸 주제를 생각하든, 쓸 만한 것을 찾아내야 비로소 쓸 생각을 한다.

이런 노력은 언제 어디서나 한다. 길을 걸으면서도, 등산길이나 잠시 쉬는 동안에도 한다. 책을 읽거나 TV를 볼 때에도 글 쓸 거리인가 생각하고, 남과의 대화에서도 쓸 거리에는 관심을 둔다. 책이나 신문 같은 인쇄물이면 표시하거나 오려 둔다. 모든 것이 다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있기에, 모든 것에서 쓸 만한 주제가 있는가 생각하며 찾는다.

쓸 만한 것이 떠오르면 메모부터 해 둔다. 그런 뒤 쓰고자 할 때 꺼내서 보고, 다시 쓸 만한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쓸 내용이 잡히면 몇 가지로 구상을 한다. 글의 체계가 잡히면 그때서야 글로 쓴다. 물론 잡히는 게 없으면 글을 쓰지 않는다. 내게는 즉흥적인 수필은 없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쓸 거리를 찾으려면, 먼저 사물을 깊이 관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좋은 글거리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수필론 〈수필과 인생〉에서 가장 먼저 이렇게 말했다.

“수필은 관조(觀照)의 문학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사물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이 마음에 어떻게 비쳐져 오는가가 중요하다. 우수(優秀)와 졸렬(拙劣), 미추(美醜)와 선악(善惡)을 불문하고 거기서 새로운 의미나 가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수필은 쓰여지는 것이다.”

나는 관조를 매우 중요시한다. 관조하지 않고는 의미 있는 작품을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물은 누구나 보고 들으며, 보편적인 생각이나 느낌도 가진다. 그러나 그런 것은 수필로 쓸 필요가 없다. 남다르고 새롭지가 않다면 나는 쓰지 않는다.

나는 하치않은 사물이나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관조해 본다. 그래서 거기서 쓸 만한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글로 쓴다. 수필가에게는 더러운 것, 추악한 것에서도 어떤 의미(意味)나 가치, 미(美)를 느낄 수 있는 통찰(洞察)의 안목(眼目)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새로운 내용이나 의미 있는 수필을 쓸 수가 없다. 진리는 평범 속에 들어 있듯이, 작고 비천한 것에도 새로운 가치나 의미, 깨달음이 들어 있다. 나는 바로 그것을 발견해 내서 수필을 쓰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관조는 사물을 단순히 무엇이라고 인지(認知)하거나 어떻다고 인식(認識)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는 관찰만으로도 가능하다. 새로운 각도나 남다르게 관찰한 것을 쓰는 것으로는 좋은 수필이 되기가 어렵다. 수필은 말 그대로 수필된 것이 아니다. 보고 들은 대로, 생각나고 느낀 대로, 붓 가는 대로 곧이곧대로 쓰면 평범한 글이 되고 만다. 수필은 관찰한 내용으로 쓴 글이 아니다.

수필은 또한 지식을 나열하거나 사상을 서술하는 글도 아니다. 비판(批判)이나 평가(評價)를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수필을 쓰는 데에는 많은 지식과 지혜, 판단력과 비평안도 필요하지만 단지 그런 것을 담아낸다고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은 어떤 사물이 자신의 마음에 얼마나 새로운 모습으로 의미 있게 비쳐지는가가 보다 중요하다. 수필은 바로 그렇게 남다르게 반영되고 새롭게 떠오른 것을 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조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조는 자세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며 살펴보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살펴서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왜 그런가, 그것은 어떤 의미나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하며 따져 본다.

그런데, 사물을 관조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관조한다고 저절로 깨달아지고, 좋은 쓸 거리가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마음을 평온하게 갖고 여유롭게 두려고 노력한다. 관조는 평온한 심경과 한가로운 상황에서 마음이 여유로워야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관조하는 능력부터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관조해서 얻어진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수필이 사물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이해와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의미(意味)와 미적(美的) 가치(價値)의 부여이지만, 그것이 달관의 경지에 접근하지 못하고서는 공감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관조해서 얻어진 것이 자기 딴에는 달관의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정말 그런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 판단은 작자가 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은 독자들이 내린다. 글이 잡문 또는 작품이 되는 관건(關鍵)이 여기에 달려 있다. 따라서 수필가는 평범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하고, 무가치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지혜와 함께, 높은 수준의 안목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은 곧 작품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수필을 쓰는 사람은 늘 많은 공부와 사색을 해야 한다.

수필을 공부하는 사람은 흔히 수필을 쓰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수필은 어떻게 쓰는가. 어떻게 써야 수필이 되는가를 속히 가르쳐 주기를 기대한다. 방법만 알면 금방이라도 수필을 멋지게 쓰리라고 생각한다. 수필을 가르치는 사람도 흔히 창작 방법이나 요령의 지도에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수필창작에 관한 이론서나 지도서들도 대개가 쓰는 방법에 집중되어 있다. 한 마디로 재주만 배우고 기술만 가르쳐 수필가만 되면 성공이라는 식이다.

나는 수필을 배우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필을 어떻게 쓰느냐보다 어떻게 해야 수필을 쓸 수 있는가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는 첫째 사람부터 되라. 훌륭한 사람이 좋은 글을 쓰지 못 할 수는 있어도, 훌륭하지 못한 사람이 좋은 글을 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 일상의 작은 일부터 성실하게 하라. 큰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작은 일은 더욱 소홀히 하고, 작은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은 큰일은 더욱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를 더 들어 주지만, 이 두 가지는 특히 강조해서 설명한다. 글쓰기는 보통 사람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그것을 하려면 남다르게 열심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작품은 성실한 삶에서 나오고, 글로 써낸다는 것은 남다르게 힘든 삶을 사는 일이다.

쉽게 쓰이는 수필은 없다. 쉽게 쓴 작품이 명작이 되지는 않는다. 많은 지식과 경험, 사색과 노력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그것이 좋은 작품이 되고 아니고는 작자의 능력에 따르겠지만, 쉽게 여기고 쓰려고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깊은 관조를 통해서 얻어진 것을 썼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의 수필 쓰기의 한 면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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