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어머니 품 떠나
걷기 시작한 걸음
얼마나 걸었는지 알길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십 여년을
열심히 걸었다는 것
오늘도 걷는 걸음
고국을 걷고 서울을 걷고
도림동 골목길을 걷다가
집 찾는 걸음이 헷갈려 버렸다
사글세 단칸방 나의 안식처
가야할 길 평탄하면 좋겠지만
복잡한 길이라도 걸어야 된다면
걸음마다 긴장해야 하겠다.
집 찾는 나의 길은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길이였네
2011年 2月 11日 草稿
갈 대
순천만 갈대는 안다
가벼운 것들은 흔들리며 살아야 함을
바람이 이끄는 대로 몸을 뉘고
비에 젖은 몸을 말리는 갈대
가을하늘 아래 춤추고 노래한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물 자국 하나 없이 명랑하다
작은 바람에도
요람인양 흔들리는 품에
철새를 보듬어 키우는 것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외로움 때문이다
하여 갈대밭에는
웅글진 메아리는 없고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순응하며 살자는
갈대들의 속삭임만 무성하다
2011年 10月 23日 草稿
달팽이
비 그친 아침 콘크리트 바닥에
구불구불 기인 선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천둥번개 불빛을 의지해
소나기 쏟아지는 그 밤을 지나온 달팽이 노정이지
비바람같이 다급한 세월
그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모든 것을
안테나 같은 두 촉수로 더듬더듬 만져가며
달팽이는 이아침을 지나쳐 갔는데
끈끈한 정감 때문인가?
가다 말다 주춤거리는 달팽이 걸음
고전(古典)처럼 느긋이 지나온 길에는
침묵의 함성이 모록이 남아있다.
바람처럼 빠르기도한 시간의 흐름을
느긋이 거스르는 달팽이지만
하루살이의 죽음이 슬퍼 좌우로 머리를 휘젓기도 했다.
삶의 감각을 찾듯 촉수는 잠시도 쉬지 않으며
이제 한낮의 땡볕을 피해
묘비석의 음달에 자리 잡고 조용히 명상에 잠긴
달팽이는 지금 무엇을 사색(思索)하고 있을까?
2012年 7月 13日 草稿
***굳이 달팽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는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큰아버지 묘소에 갔다가 비석의 뒷면에 붙어있는 달팽이를 보고난 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인생의 탐욕과 집착이 결국 행복과 담을
쌓게 된다는 것 저는 이 점이 제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심사평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영원을 살아야 하는 생명체들도 있다. 이를테면, 심심산천의 나무와 풀 같은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물들은 신의 축복을 받은 존재들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본다는 것은 은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길을 나의 생각을 따라 걸어가는 생명체들은 정말 행복한 것일까? 이것은 이 영철 씨의 시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숙고하게 했던 부분이다.
이 영철 씨의 시들은 이미지를 촘촘하게 교직(交織)하는 것이나 주제를 끌어오는 시각의 독특함에선 아직 내공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생명체의 길에 관하여 같는 관심에 있어서 독특한 것이었다. 그의 시 다섯 편은 대부분 생명체의 걸음에 주목하는 것이었는데 달팽이의 걸음에 눈길을 주는 그의 관심은 심사평을 종합 정리하는 필자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다.
끈끈한 정감 때문인가?
가다 말다 주춤거리는 달팽이 걸음
고전(古典)처럼 느긋이 지나온 길에는
침묵의 함성이 선명히 남아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저 빠른 사나이 자메이카의 볼트같이 달리기를 원한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걷고 싶지만 그렇게 걸으면 모두가 나를 제껴 버리고 내 앞서 멀리 달려가기 때문이다. 이 영철 씨는 이런 세상에서 달팽이의 느슨한 걸음을 주목하며 달팽이가 걸어온 길에 시심을 모은다. 시란 무엇인가, 그 근본은 인간의 삶에 대한 사유가 아닌가, 사람이 걷는 발걸음에 대한 성찰이 아닌가, 그리고 남은 우리의 걸음들에 대한 기대가 아닌가, 이러한 소박한 시의 본질들을 감안할 때 이 영철 씨는 시인으로써 첫 발을 내디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지적한 대로 보다 숙달된 이미지 세공(細工)과 신선한 주제를 포착하는 작업들은 이 영철 씨의 창작 과제로 남는다. 하나 더 주문하고 싶은 것은 시의 단어를 고르는 일에도 좀 더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아무쪼록, 걸어온 길을 자주 돌아보면서, 아무리 바빠도 여유를 가지고 걸으면서, 걸어가야 할 길들을 시어를 통해 부지런히 노래함으로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바란다.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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