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나의 나이 27살, 자신에게 주어지는, 자신에게 보여지는 세상을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살다가 그 어느 순간 멈추고 걸어온 길을 돌아다본다. 주위에 새로운 사람들로 자리를 채워가고,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맞춰가고 내 속에 모나고 못되고 그릇된 버릇들이 하나하나 둥그렇게 무드려 가는것을 느낄때, 그렇게 의식없이 정신없이 보내버린 시간들이 쌓여서 좀 더 어른스럽고 좀 더 성숙된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것, 그 달콤하고 뿌듯한 성장으로 기쁘기도 하고 마음 또한 설레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을 즐길 틈마저 잃어버리고 욕심 아닌 욕심에 젖어 때이른 “어른”으로 되여버린 나 자신을 느끼면서 메말라 가고 있는 내 가슴에, 내 꿈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줄 에피소드를 더듬으려고 시간을 거슬러 가본다.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떠오르는 학창시절 친구들의 때묻지 않는 얼굴들, 유치하지만 찬란했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며 진정한 사회인으로 되기까지 나를 건강하고 밝게 만들어준 내가 자부심을 가진건 나의 사랑스러운 모교 연변대학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너무 좋아했기에 대학 입시 때, 학부 선택에서 과감히 조문학부를 선택하였다. 연변대학 조문학부가 중국내 최고학부(最高学府)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너무도 뿌듯한 마음으로 시끌한 교정내에 들어섰다. <<자, 후배님들 조문학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우리의 조문학부가 최고 학부인걸 아시죠?>> 멋진 학생회 선배님이 미소를 띠우며 우리를 보고 있다. <<왜서 최고학부인지 이제 알려 드립니다. 귀담아 들으세요.>> 침을 꼴깍 삼키며 부풀은 가슴을 감추지 못햇다. <<왜냐하면…>> 또다시 의미심장한 기운이 흐른다. <<그 원인은, 전국적으로 위도가 제일 높은 대학이 바로 연변대학이며 조문학부는 또한 연변대학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꺄르르 웃음소리가 온 장내를 메웠다. 내가 입학첫날 피부 가까이에 느낀 존경하고도 사랑스러운 우리의 선배님들이였다. 그리고 우리를 흐뭇하게 지켜보시는 교수님들, 아직은 어리고 철들지 못한 우리를 크게 성장시켜주신 교수님들의 모습도 역력히 떠올랐다. 이것이 바로 나의 캠퍼스생활의 시작이었다.
연변대학은 오늘따라 시끌벅적하다. 캠퍼스 문화의 또 하나 바로 동아리일(社团日)이였기 때문이다. 활동적이고 전통문화에 빠져있던 나는 조문학부 동아리인 아리랑 민속사에 가입하였다. 가면을 쓰고 늦은 템포에 맞춰 힘차게 뛰는 탈춤, 덩기닥, 덩기닥쿵 장고, 북소리에 맞춰 흥겹게 도는 사물놀이가 한창이다. 모두모두가 새롭고 싱싱한 사물로 나한테 다가왔다. <<인간은 만남으로 자란다.>> 아리랑 민속사 동아리 근거지인 민족학원에 걸려있는 우리 민속사의 사훈처럼 우리는 민속인, 유학생, 그리고 모든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우리의 문화를 더욱 넓게 발전시켰다.
꼭 내가 땡땡이 치면 출석 체크하시는 우리 교수님들, 그래서 많이 혼도 나고 나의 수업시간 참가여부로 땡땡이 칠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의리 없는 놈들이라고 화도 났었지만, 기쁨과 슬픔, 또한 청춘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들 이기에 너무 행복했었다. 겨우겨우 일어나 고양이세수를 하고 부랴부랴 수업시간에 참가하였다가 교수님의 생동하고 재미있는 강의로 때없이 웃고 있던 내 모습도 이젠 웃고 넘겨가는 한때의 이쁜 추억거리로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억들도 나에겐 소중한 흐뭇한 추억거리로 될수 있음에 기쁘기도 하다.
그리고 연변대학 뒤 거리의 먹거리들, 종류도 많은 음식들에서 민족대학의 내함을 뚜렷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교정내를 거니는 다민족, 다국가 학생들과 외교들은 또한 종합대학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 각지에서 모여온 친구들, 전 세계에서 모여온 외국계 친구들로 시대의 단합과 지식의 배움에는 국계와 지방을 뛰어넘는 놀라운 마력을 지닌 연변대학임을 절실히 반영해주고 있다.
그 어느날, 갑자기 벅차오르는 마음을 안고 모교로 발걸음을 돌려본다. 더 생기있고 활발한 현입생들의 모습들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다. 나도 한때는 이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날개를 펼쳤던 학생이었다는 자부감도 든다. 재학시기 좀 더 노력하고 좀 꾸준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 그 시기에 나름 열심히 공부했으며 열심히 즐거웠었기에 후회는 없다. 지금은 여러 학원에서 모두 한자리에 모여 더욱 크고 넓게 발전하는 우리 연변대학, 4년간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서 나의 메모리 속에 꼭꼭 저장하고 내 삶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연변대학이 더욱 빛나길 기원해본다.
박영란 글
2011년 서울에서/연변대학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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