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무언가 등에 업은 그림자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수탉이 첫 홰를 치듯 지하철 벨소리가 어둠을 벗기자
1호선 열차는 쌩하고 차가운 공기를 가른다.
굴러가던 그림자들
등에 업은 무언가가 출렁인다.
쿵쿵 발 울림소리
지하철 역사가 흔들린다.
지하철 무인 검표구는
천천히 지나가라고 빽빽 소리친다.
청렴한 법관처럼 기관사는
인정사정 안 보고 떠나버린다,
아직 술이 덜 깬 사내는
떠나는 열차를 쳐다보며 혀를 찬다.
다리 절룩거리던 아줌마는
입에 거품을 문다.
지하철 전광판에는
다음 열차는 15분 후에 있다고, 뜬다.
지하철에서 잠자는 아가씨
내 어찌 모르랴
잠을 업고 다니는 나이
달게 잠을 자야하는 이른 새벽
취직을 위해
더 좋은 대학을 위해
그리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몸도 쪼개 써야 하고
잠도 쪼개 자야 하는
가난한 젊은이들
묶어놓은 잠이 풀어져
내 어깨로 살며시 건너온다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책을 보다 말고 낯선 어깨를 베개 삼아
쓰러지겠느냐
아가씨야
아저씨는 나쁜 사람 아니니
한잠 푹 자거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
이 세상에 너를 괴롭힌다고 굴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여라.
소
평생 멍에를 지고 말없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코뚜레와 고삐 하나로 한생이 묶여 채찍에 길들여졌다
사람 말을 할 줄 모르는
나의 언어는 길고 구슬픈 울음
논밭 갈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라고
주인이 구유에 부어주는 세 끼 여물
그 먹이에 목숨을 걸고 하릴없이 늙어버렸다
병들면 어쩌나
늙으면 어쩌나
고기와 가죽, 뼈들이 따로따로 흩어지면
북이 되어 못다 한 울음,
울어나 볼까—
세월이 좋아
소 대신 밭을 가는 경운기
그래서 소는 점점 줄어드는데
나는 보았다
돈 몇 푼에 코가 꿰여 소처럼 사는 사람들
사람인 척 살아가는 소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박수산 프로필 :
1959년 중국 길림성 서란시 출생
길림사범을 졸업, 교사직에 종사
현재 한국 모 기업에 근무
1983년 처녀작 '두릅나물'을 문학잡지 '도라지'에 발표 등단
시, 수필 수십편 발표
|당선 소감|
그동안 삶의 골목을 지나오면서 많은 것을 버렸지만 유독 문학만을 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으로 생각한다.
항상 이 바닥에서 헤매는 서민들과 함께 뒹굴면서 그들의 애환과 바램을 내 글의 바탕화면으로 만들고 싶다.
쇠뭉치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끈질긴 마음으로 자판기를 두드리면서 구석구석 내 머릿속에 있는 녹슨 생각들을 버리고 생생한 생각을 주워 모아 내 글의 소재로 삼고 싶다.
끝으로 여기까지 오게 받들어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선배 후배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린다.
더욱이 고국에 와서 시 창작의 등대가 돼 주신 마경덕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올린다.
「제18기 시 부문 심사평」
▶「박수산」의 시 ‘첫차에 목숨을 걸다’ ‘지하철에서 잠자는 아가씨’ ‘소’ 3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3편의 시를 읽으면서 편편마다 삶의 고달픔이 물씬 풍겨 기차나 전동차의 목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는 사람이 보이고 지친 신발을 끌고 귀가하는 아가씨가 보인다. ‘첫차에 목숨을 걸다’의 1연 1행 ‘무언가 등에 업은 그림자’ 3연 2행 ‘등에 업은 무언가가 출렁인다’에서 ‘무언가’는 도무지 무엇인가? 아리송한 ‘무언가’는 박수산만의 것인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박수산은 중국 길림사범을 졸업하고 교직에 종사했다고 한다. 1983년 처녀작 ‘두릅나물’을 도라지라고 하는 문학잡지에 발표하면서 창작활동 시작하고 그 후 중국에서 수십 편의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30여 년간 문학판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고국에 와서도 시를 붙들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박수산씨! 당신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시문학은 쓸쓸하지 않을 것이요.
-심사; 정성수 강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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