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설화집]청루에서 난 비명소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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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설화집]청루에서 난 비명소리 1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2.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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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조 저

    머 리 글

    한 로인님이 들려준 옛말을 정리한것이 어느 잡지에 발표되였기에 그 잡지를 로인님께 드리려 시골로 내려갔다. 싱글벙글 좋아할 로인님의 얼굴을 눈앞에 그려보며…
    그런데 이게 웬 말이냐, 청천하늘에 생벼락이. 로인님이 음독자살하셨단다.
    동네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들도 있고 딸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로인님을 모시려 하지 않으니 그만 한을 품고 모진 마음으로 험한 행차를 하셨단다.
    한잔 두잔 술을 드시며 사람좋게 껄껄 웃던 그 모습, 지금도 때때로 살아숨쉬는듯싶다.
  아니, 확실히 살아숨쉬고있다. 그이의 그때 그 소탈한 모습과 그이가 한 옛말은 나에게 인생을 배워주었다. 오늘 또 그이가 한 옛말이 민간이야기집에 실려 세상에 나가게 되니 많은 독자들에게 인생을 배워줄것이다.
    필자에게 옛말을 제공한분들 대다수가 이미 고인으로 되였다. 하지만 그이들이 남긴 옛말은 대대로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인간지도(人间之道)를 깨우치게 할것이다.
    재간없는 글솜씨나마 이 책을 펴냄으로써 그이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으로 되였으면싶다.
    머리글을 빌어 이 책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충고의 말씀 드리고싶다. 누구나 자식을 키우면서 그 자식이 효자로 자라줬으면 하고 바랄것이다. 효자를 두고싶으면 부디 자신이 먼저 효자가 되여라.
    끝으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가르침을 바라며 이 책을 내는데 힘이 돼주신 료녕민족출판사 여러 선생님들께 깊은 사의를 드린다.

                                         장봉조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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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릴 수 없는 녀인


    만주에 가면 사람살기 좋다는 풍문을 듣고 조선인들이 살길을 찾아 남부녀대로 련속부절 중국에 건너오기 시작한 초기에 있은 일이다.
    조선 북녘 한 시골동네에 젖먹이어린애가 딸린 한쌍의 나젊은 부부가 있었으니 남편 혁철은 신체 좋고 일 잘하는 품팔이군이요 안해 향분은 인물 곱고 솜씨 좋은 삯바느질군이였다. 비록 가난한 살림살이지만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정답게 지냄이 그야말로 일심동체였다.
    어느날, 혁철은 괴나리보짐을 지고 향분은 어린애를 업고 고향을 떠났다.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살림은 펴일줄 모르는지라 만주에 가면 돈벌이 좋다는 소문이 그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였던것이다. 그들은 두어해간 억척스레 벌어 뭉치돈을 안고 환고향하겠다는 일념으로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기냐저기냐 하며 정착지를 찾아 며칠을 헤매다가 올려다봐도 하늘이 보이지 않게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명월구 원시림속에 들어서서 그만 길을 잃고말았다. 갈수록 수미산이라더니 걸어도걸어도 길은 나지 않고 밀림에 어둠이 깃들더니 이윽고 지척도  분간키 어렵도록 캄캄해졌다. 맹수들의 울부짖음소리가 먼데서 가까운데서 온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게 들려왔다. 혁철은 한손에는 굵직한 나무가지를 꺾어들고 한손에는 안해의 손목을 잡고 행여나 수림을 빠져나갈수 있는 길이 있을가 하여 앞으로만 걷고걸었다. 향분은 이미 발이 부르튼데다 어린애까지 업은지라 기진맥진하여 숨을 할딱거리며 남편에게 끌리다싶이 따라갔다.
    《여보, 인가가 있소.》
    혁철의 말에 향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앞을 내다보니 저 멀리에 한가닥의 연한 불빛이 보이는것이였다.
    《빨리 가자요.》
    백척간두에 몸을 올려놓은듯 불안하기만 했던 그들은 불빛을 향해 힘을 내여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곳에 간 그들의 마음은 또다시 싸늘해지고말았다.
    사면이 토담으로 둘러싸였는데 토담대문에는 총을 멘 사람이 보초를 서고있었다. 묻지 않아도 산적의 소굴임이 분명했다.
    《어서 다른데로 가자요.》
    향분은 몸을 떨며 남편에게 속삭였다.
    《간들 어디로 가겠소.》
    《그러면 어떻게 할 작정이예요?》
    《아무리 산적이지만 그들도 인간이 아니요. 우리 몸에 뺏을만한 물건이 없는대야 저희들이 어찌겠소. 밖에서 헤매다가 짐승들게 잡혀먹히우기보다 마음 편찮은대로 하루밤 잠자리나 빌어야지.》
    혁철은 저벅저벅 보초군에게로 다가갔다. 향분이 역시 마음을 도사려먹고 남편을 뒤따랐다.
    《누구야!》
    보초군의 놀란 소리이다.
    중국말을 모르는 혁철은 보초군이 알아듣건 못알아듣건 조선말을 해가며 자고가자는 시늉을 내였다. 보초군은 잠시 들어갔다 나오더니 그들 내외더러 자기를 따라오라는것이였다. 아마 괴수의 지시를 받고온 모양이였다.
   두 내외는 보초군의 안내대로 한 집안에 들어갔다. 집안에는 나이 마흔너덧 되여보이는 무섭게 생긴 사나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산적괴수였다.
   산적괴수는 졸개 한놈을 불러들여 두 내외에게 밥을 가져다주라 하였다. 두 내외는 시장하던차 체면불구하고 한소래의 밥을 다 먹어치웠다.
   밥을 다 먹은후 혁철은 산적괴수가 불러온 조선인졸개와 담배를 피우며 한담을 하고 향분은 온몸에 피곤이 몰려들어 어린애에게 젖을 물린채 벽에 기대앉아 살풋이 잠이 들었다.
    향분이 비록 앉은잠이나마 제법 달게 자는데 어린애가 젖꼭지를 깨무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향분의 눈앞에는 돌변한 광경이 나타났다. 웬 영문인지 산적괴수와 남편사이에 돈무더기가 놓여있었던것이다. 향분은 다시 눈을 살며시 감고 자는척하였다. 조선인졸개의 통역으로 산적괴수와 남편사이에 말이 오간지 오래된 모양이다.
    《어떤가, 응? 이 삼백냥이면 만족하지 않은가?》
    혁철은 함구무언으로 머리만 푹 숙이고 앉아있다.
    《그까짓 계집이야 또 얻으면 되잖는가? 이 삼백냥이면 집사고 장가들어도 얼마든지 되잖겠나… 자, 그럼 오백냥을 주겠네.》
    혁철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괴수가 혁철에게 안해를 팔라고 얼리는판이였다. 물론 강제로 빼앗아도 얼마든지 될 일이였지만 그러고나면 녀인의 함원으로 하여 안해로 삼으려는 자기의 욕망이 뻐그러지기 쉬우리라 생각한 괴수는 혁철을 극력 동원하여 팔게 하였던것이다. 남자가 돈을 받고 판다면 녀인은 원남편을 원망하고 하는수없이 자기의 고분고분한 안해로 되여줄것이리라 여겼기때문이였다.
   백년해로 언약하고 고난속에서 동고동락하며 서로서로 의지하여 살아오던 사랑스런 안해를 판다는것은 인간이 할짓이 아니요, 그렇다고 안된다는 말 한마디만 떨어지면 무소불위 못할짓 없는 놈들이 자기를 어떻게 하리라는걸 너무나도 빤하게 아는 혁철은 바람같은 한숨만 푸푸 내쉬였다.
    이때, 향분이가 벽에 기댔던 몸을 발딱 일으키며 나앉았다. 향분은 돈무더기를 괴수의 앞으로 밀어주며
    《이 돈을 줄 필요 없어요. 제가 당신의 안해로 될테예요. 저 남자를 따라다니며 이제껏 한 고생만 해도 진저리가 나요.》라고 말하곤 혁철에게 얼굴을 돌렸다.
    《우린 갈라지자요. 당신과 같이 살다간 한평생 무슨 고생을 할줄 모르겠어요. 자, 당신의 이 아이도 가져다 키우세요.》
    향분은 아이를 혁철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 돌연적인 일에 혁철의 눈은 둥그래졌고 괴수의 얼굴엔 희열이 안개피듯 어렸다. 괴수는 졸개 몇을 불러들여 혁철을 끌어내가게 하였다.
    혁철은 다른 집에 들어가 졸개들의 감시밑에 하루밤을 지내고 날이 희붐하자 가슴 터지게 차는 원한과 분노를 가까스로 참으며 어린애를 안고 담밖을 나섰다.
    이로부터 향분은 산적괴수의 부인이 되여 졸개들에게 마님으로 불리우며 하늘처럼 높이 떠받들리였다.
    산적괴수는 뜻하잖게 꽃같은 젊은 안해를 맞음으로 하여 하강선녀나 얻은듯이 희불자승으로 나날을 보냈다. 민간략탈도 작은 두목들과 졸개들만 내보내고 자기는 밤낮으로 향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럭저럭 한해가 지나자 향분은 포동포동한 사내애를 낳았다. 이로 하여 산적괴수의 기쁨은 더 이를데 없었다.
    또 한해가 지난 어느날 아침이였다.
    산적괴수는 자기가 친히 졸개들을 거느리고 재물을 거두어와야겠다며 털이 부숭부숭한 입으로 향분의 보들보들한 입술과 어린애의 야들야들한 볼을 한참씩이나 번갈아 빨더니만 향분에게 말하였다.
    《며칠동안 당신과 요 귀염둥이를 못보겠구만, 그동안 아이를 잘 보살피게.》
    산적소굴에는 향분이외에 괴수의 집 심부름군졸개와 토담문 지키는 졸개만 남았을뿐이였다.
    그날 저녁, 향분은 술상을 차려놓고 심부름군졸개를 불러들여 술을 권했다. 졸개는 마님의 앞인지라 쭈볏쭈볏하며 술을 마시지 못했다.
    《어서 마시세요. 아무도 없는데 상관있나요?》
    드디여 졸개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향분은 온갖 아양을 떨며 졸개에게 술 몇잔을 권한후
    《난 일찍부터 당신이 제일 미더워 한가지 의논할 일이 있었어요.》 하고 애교스레 말하였다.
    《어서 말씀하시우. 마님의 일이라면 부탕도화라도 사양치 않으리다.》
    《한평생 이 산속에서 살고말겠어요? 이 기회에 우리 같이 도망쳐 함께 살자요.》
    《아니 마님, 그게 참으로 하시는 말씀이시우?》
    《그렇지 않구요. 입이 비뚤어지라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아, 나는 진정 복받은 인간이옵니다.》
    이렇게 향분은 졸개를 꾀여냈다.
    졸개는 그길로 나가서 토담문지기를 날창으로 찔러죽여버렸다. 졸개는 이젠 이 꽃다운 녀인이 내 색시다싶어 마님이란 소리는 아예 멀리 던져버리고 여보, 당신 하며 일만정을 쏟아부었다. 그럴수록 향분은 더욱 인정스레 술과 안주를 권하였다.
    《그런데 이 삼림을 빠져나가는 길을 당신이 아시나요?》
    《그걸 모를턱이 있나. 토담문 왼쪽으로 돌아서서 아무아무 곳으로 나가면 된단말일세.》
    향분은 그 말을 명심코 기억하고는 졸개가 술에 취해 꺼벅꺼벅할 때 날창으로 가슴을 힘껏 내찔렀다.
    동틀무렵, 향분은 집안을 뒤져 돈과 값진 물건 몇개를 골라 자그마한 보따리를 만들어 들고 어린애를 업고는 길을 떠
났다.
    삼림을 벗어난 향분은 곧바로 조선의 고향땅으로 찾아갔다. 가보니 혁철이가 돌아오지 않았는지라 다시 강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왔다. 하늘끝에 가서라도 혁철이를 찾고야 말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수소문하며 다녔다. 무릇 조선인이 있다는 곳이면 낱낱이 다 가보았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더니 향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밤이면 인가를 찾아 잠자리를 빌고 날이 새기만 하면 여기저기를 헤매며 다니던 향분은 꼬박 한해가 지나서야 북만땅 한 산간벽지에서 혁철이를 찾게 되였다. 그동안 향분이가 겪은 간난신고 우여곡절을 어이 한입으로 다 말할수 있으랴!
    혁철이는 조선인 여라문호되는 자그마한 동네에서 화전민으로 아이와 함께 살고있었다. 녀자라면 입에서 신물이 날지경이라 남들의 권고를 물리치고 재취를 하지 않았던것이다.
    향분이가 찾아가자 혁철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혁철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솥뚜껑같은 손을 펼쳐들고 향분의 뺨을 후려쳤다.
    《불여우같은년! 무슨 렴치로 날 찾아왔느냐?! 빨리 나가지 못할가!》
    향분은 부어오르는 뺨의 터질듯한 아픔을 간신히 참으며 차근차근 말을 시작했다.
    《당신이 날 이렇게 대하리라고 언녕 짐작했어요. 난 당신의 심정을 리해할만 해요. 당신에게 맞아죽어도 한이 없어요. 하지만 내 말을 들은후에 때리던지 죽이던지 하세요.》
    향분의 뺨에 혁철의 손이 또 한번 철썩 날아들었다. 하지만 향분의 말은 계속된다.
    《날 팔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면 그자리에서 당신과 아이는 목이 날아나고말았을거얘요. 당신도 그것을 알았기때문에 대답을 못하고 한숨만 내쉬고있었을뿐이였구요. 또 만약 당신이 그놈이 주는 돈을 가졌더라면 당신은 대문밖을 나서자마자 졸개놈들의 손에 죽고말았을거얘요. 돈에 눈이 뒤집어진 도적놈들이 당신의 몸에 거액의 돈이 있다는걸 알고 가만 놔둘리 없잖아요. 나는 여러면으로 생각을 굴리던 끝에 당신과 우리들의 아이를 사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만전지책은 그 한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댔어요. 내 할말은 이것뿐이얘요. 더럽혀진 몸을 당신이 용서치 않으리라는걸 번연히 알면서도, 그리고 내 자신도 당신을 만나볼 면목이 없다는걸 번연히 느끼면서도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야 말리라는 마음으로 꼬박 한해동안이라는 긴긴 시일을…》
    향분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참고 참았던 오열을 터뜨렸다… 한참 울고난 향분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나의 등에 업힌 아이를 보고도 저주할것이얘요. 나도 처음에는 이 아이를 죽여버리고 오려 했어요. 하지만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수 없었어요. 아이에겐 아무런 죄가 없을뿐더러 또 도적놈의 아이라 해서 그도 반드시 도적놈이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이 아이에게 정을 붙이고 참된 인간으로 키우리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업고 다녔어요.》
    향분은 자기가 가지고온 작은 보따리를 살며시 방에 올려놓고는
    《그럼 안녕히 계셔요. 당신의 행복한 앞날을 빌어요.》하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량볼을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은 정처없는 발길과 동반이나 하자는듯 끊임없이 향분의 발등에 떨어졌다.
    향분이 떠난후 갈마드는 천사만념으로 하여 몇날며칠을 두문불출하고 고민속에 잠겼던 혁철은 마침내 자리를 털고일어나 향분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그가 구경 향분을 찾았는지 못찾았는지는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조차 모른다고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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