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미국의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이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1위로 나왔다. 노예해방의 인간애(人間愛)와 박애정신(博愛精神), 남북전쟁의 승리와 성공적인 마무리, 합중국 통합의 통치력과 순교(殉敎)라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일생을 더듬어 보면 이런 성취(成就)는 신화(神話)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링컨은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다. 1809년 2월 12일 켄터키 주의 하젠빌(Hodgenville) 통나무집에서 출생한 그는 가난으로 8살 때 길거리로 쫓겨났다. 10살에 어머니를, 20살에는 누나까지 사별하였다. 결혼하여 낳은 4명의 아들 중 3명을 생전에 잃는 고통도 겪었다.
7살 때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도 몇 주 동안 다녔을 뿐이다. 그래서 혼자 공부하고 독서하여 스스로 터득했다. 25살 때 두 번째 사업 실패로 빚을 갚는데 17년 동안 고생했다. 법률학교 입학에 실패하고, 주의원과 연방의원 선거에도 여러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맛보았다.
링컨은 1834년 26세로 일리노이 주의원에 당선되어 8년간 활동했으나, 1835년에 약혼녀가 갑자기 병사하여 신경쇠약으로 입원까지 하였다. 1842년에 메리 토드(Mary Todd)와 결혼하여 비로소 가정이 안정되었다.
그는 38세로 1846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중앙무대로 나섰으나, 1848년 재선거와 1855년 상원의원 선거, 1856년 부통령후보 지명전과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했다.
그런데 그는 1860년에 미합중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52세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노예문제로 남북과 계층간 양분되어 심하게 대결하고 있는 상태였다. 마침내 1961년 4월에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대등한 세력간의 전쟁은 승패를 가늠할 수 없었고, 여기에 외세(外勢)의 개입까지 얽힐 상황이었다.
링컨은 1862년,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구출하는 일이지 노예제를 구하는 것도 없애버리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며, 군인에 의한 경솔한 노예해방을 엄금하였다. 그리고 1863년 1월 1일을 기해 점령지역의 노예를 해방한다는 <노예해방 예비선언>을 공포하였다.
이 조치는 그의 지도력을 비판하기 시작한 북부를 결속시키는 동시에, 영국이 아메리카 남부연합을 승인하려는 움직임을 중지시킨 뛰어난 정치적 행동이었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애를 드러낸 것으로 높이 평가되면서, 남북전쟁의 북군 승리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에 새로 설치한 국립묘지 기념식에서 행한 게티즈버그(Gettysburg) 연설로 집약되어 나타났다. 링컨은 1864년 11월 8일 대통령에 재선되고, 1865년 1월에 미국 전역에 노예제 폐지를 선포하였다.
그러나, 노예제의 찬반과 남북간의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못하였다. 링컨은 1865년 3월 4일 대통령에 재취임하였지만, 1달쯤 후인 4월 14일 워싱턴 D.C.의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중 배우 존 부스(John Wilkes Booth)에게 피격되어 4월 15일 사망하였다.
링컨의 정신과 자세는 그가 1859년 9월에 자녀의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에는 건달만이 아니라 영웅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기적인 정치인이 있으면 일신을 바치는 지도자가 있다는 것을, 원수가 있다면 아이와 늘 함께할 친구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질투와 시기를 멀리하고, 미소의 만족을”, “시류에 편승한 군중을 따르는 대신 홀로 설 수 있는 뚝심을”, “힘과 지식은 최고가에 팔아야 하지만, 마음과 영혼은 가격표를 붙일 수 없다는 것을”, “무엇인가 갈망할 수 있는 용기와, 꺾이지 않고 맞서 도전할 수 있는 인내심을”,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울부짖는 군중 앞에서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십시오.”
링컨의 지도력은, 가장 치열했던 게티즈버그 전투 때 공격명령을 내리면서 보낸 편지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책임은 자신이 지고 영광은 부하에게 돌리는 리더의 표본이다.
“존경하는 마이드 장군!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공로입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만약 작전에 실패한다면 장군은 링컨 대통령의 명령이었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이 편지를 모두에게 공개하시오!”
링컨은 첫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모든 권위는 국민에게서 나온다. 대통령의 의무는 현 정부를 인수한 상태에서 관리하고 후임자에게 손상되지 않은 채로 넘겨주는 것이다.”
1865년 3월 4일 두 번째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그는 남북전쟁의 책임은 남북 양쪽에 있다고 말하고,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악의를 품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는” 박애(博愛)와 관용(寬容)의 정신을 호소했다. 이런 정신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주장한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에 이미 집약되어 있었다.
링컨을 연구한 사람이, 그가 27번이나 실패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많은 실패가 거름이 되어 그는 성공을 이루어냈다고 했다.
훌륭한 지도자는 그가 이룬 훌륭한 업적만으로도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링컨은 소신 있고 불굴하는 노력의 삶으로, 모든 인간의 평등함과 박애의 소중함을 발휘한 인간애 정신으로 더욱 존경받고 있다. 성경 다음으로 그의 전기(傳記)가 가장 많이 읽히는 것도 그의 삶과 정신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된 노예제를 그가 폐지한 지 14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오바마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그의 정신이 노예의 후예인 흑인이 미국을 통치하는 시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위대함은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정신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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