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결과로 한국은 전통적인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하게 된다.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은 한국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국민을 기아와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추진하지도 못하고 있던 1950년대 중반, 세계 경제는 1956년의 대륙 간 전화 회선 서비스를 시작으로 정보 혁명의 전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후기 산업사회 또는 정보화 사회로 이전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에게는 산업화의 과제와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과제도 동시에 주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 정권에서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디지털 전자교환기(TDX) 사업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고, 기술 수출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어서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절대적인 사업이었다. 한국경제의 지식경제로의 도약, 한국사회로 하여금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을 가능케 했던 역사적 계기를 연 것이 TDX 사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올해 8월 15일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62주년을 맞이하는 2012년 대한민국은 2010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2012년 OECD 34개 국가 중 행복지수 26위, 2010년까지 14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가장 일을 많이 하는 국가’ 1위를 차지하는 등 부정적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2012년 세계 7번째로 20-50클럽(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진입, 2011년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액 1조 달러 진입 등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전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나라가 됐다.
그러면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들이 보는 한국 사회는 어떠할까? 동포들이 보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내국인들이 보는 한국사회와 어떻게 다를까?
제38차 재외동포포럼은 32년 동안 미국 이민자로 살아온 최지형 전라북도 국제교류자문관을 발제자로 해서, 32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해외이민자로 살아온 사람의 눈으로 보는 한국의 변화한 모습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으로 마련된다.
최 자문관은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로 이주, 17년을 캘리포니아에서 산 후, 뉴욕으로 이주 15년을 뉴욕에서 살았다.
그는 미공군에 복무했던 4년을 제외하곤 이민 32년을 한인회 활동을 통해 동포사회에 봉사해왔다.
1990년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한인회에서 한인회 사무총장으로 봉사할 땐 한인회장의 추천으로 국민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청소년야구세계대회가 새크라멘토에서 열렸을 때는 한인회가 선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여행안내까지 도맡아 했다. 새크라멘토한인회는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한인사회의 단결된 응원을 통해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기여를 했다.
최 자문관은 한인회에서 보낸 많은 시간을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자랑하는 사람의 보람으로 여긴다.
최 자문관은 거의 2년에 한 번꼴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사회가 어떻게 지식사회로 변해 가는 지를 목도했다.
그는 최근 5년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5년 동안 한국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변했음을 발견했다.
그가 한국에 오지 못했던 5년은 거의 대부분을 이명박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었고,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으로선 처음으로 당선돼 미국을 통치했고,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세계를 휩쓰는 시기였다.
최 자문관의 눈에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제38차 재외동포포럼
일시 : 2012년 7월 17일 오후 4시~6시
장소 : 방송통신대학교 역사관 2층 세미나실
주제 : 32년동안 해외 이주자로 산 한 재미동포가 본 한국사회의 변화 모습
발제 : 최지형 전라북도 국제교류자문관
최지형 국제교류자문관은?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중앙고등학교 졸업하고 1980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미 하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1981년부터 1985년까지 미공군에 현역으로 복무했다. 복무 기간 중인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미공군 커뮤니티 칼리지로 등록된 우필드대학(Woodfield University)을 졸업했다.
1989년 캘리포니아주에 부동산회사를 설립해 사장으로 취임했다.
1995년 이태리기계를 직수입하는 미주총판회사 사장이 되었다.
2001년 뉴욕주에 부동산회사를 설립 대표를 맡았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뉴욕업스테이트한인회장을 맡았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전라북도 국제교류자문관을 맡고 있다.
2011년에는 USGTF(미국골프교사연맹)의 티칭 프로 자격증을 획득했다.
2011년에 TESOL(해외영어강사 자격증)에 등록, 2011년 9월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Monroe Golf Country Club Teaching Professional 골프 티칭 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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