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신주의로 점령된 오늘날 사회의 실상을 보여준 「선글라스를 낀 동지」는 악덕 대부업계 횡포에 말살되는 평범한 인간들의 처참한 인본몰락실상을 문학예술적 의식으로 그린 휴머니즘 작품이다.
작품집 「선글라스를 낀 동지」는 장편소설『스콜』,『별나라를 지나는 소풍』을 비롯하여 현재 한국문단에 문제작으로 일컬어지는『숭선에서』를 써낸 강준용의 세 번째 작품집이다. 순수문학을 지향하며 30여 년 동안 칩거한 채 창작만 해온 작가의 문학예술적인 삶과 작품을 밖으로 드러낸 강준용 문학의 30여 년 변천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집에는 1988년 등단 작품에서 2012년 최근 작품까지 발표한 90여 편의 작품 중에 8편을 선별하여 담아 강준용의 문학의 전체 흐름을 밝히는데 의의를 두었다. 특히 25년 전인 1988년에 발표한 등단 작품「하얀 궁전」을 게재함으로 작가의 문학 출발을 알려준다. 철학적 의식으로 분출한 가장 완숙한 최근 작품집『숭선에서』의 작품과 다른 이면을 가진, 강준용 문학의 새로운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물신주의와 메카문명에 파괴된 인본회복을 위해 치열한 문학예술 정신으로 빚어낸 강준용 문학의 본질을 보게 한다. 작가 특유의 강하고 간결한 주지적인 서사 문체에 담긴, 극히 사고 적이며 철학적인 논리의 전개가 고급적인 순수문학을 잉태시킨다. 소외된 인간들을 다루며 휴머니즘의 근본을 인간들한테 회기 시키려는 투쟁적인 창작 혼이 스며든 작품집이다. 작가의 문학예술적인 삶과 작품세계를 날카롭고 세밀하게 분석한 방민호, 고명철, 김성호 평론가의 평론이 작가와 작품의 중량을 재게 했다.
특히 「좋은작가」 출판사는 문학책으로는 전통으로 되어온 흑백 단색 책을 풀 칼라 섹션으로 발행하여 기존 문예물 발간 법을 깨트렸다. 작가의 화보를 30여 페이지로 담아 문학작품 서적의 단조로움을 시각적 감각으로 독자를 이끄는 혁신적인 발행을 단행했다.

[순수문학의 사포가 된 작품집]
1999년 발표한「점령된 사회」와 2002년에 발표한 중편소설「나를 찾는 술래」도 최근 문학 작품과의 변화를 아는데 잣대가 될 것이다.「문장 없는 귀족」과「그을음 유리 속의 시간」은 가장 최근작이며 제호로 뺀「선글라스를 낀 동지」도 2006년 발표한 오래된 작품이다.
이번 작품집은 대표작인「숭선에서」와「핸드폰 핸드폰」을 첨가하면서 문학 전반부의 변화를 알게 했다. 작가 개인적으로「그을음 유리 속의 시간」에 애착을 갖고 있다. 전반 모두 소외된 인간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과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그린 것으로 가치 있는 삶을 부각시키려 했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 평론가 방민호도 『숭선에서』와는 아주 다르게 어떤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며 평한다. 주인공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가지게 함과 더불어, 독자 스스로 어떤 애수와 비애에 빠져들게 하는 면을 이 창작집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 소개]
“현대문학 100년사에 전무후무한 생존 작가를 위한 문학연구회가 생긴 작가로 중견 문인들을 포함하여 30여 명의 애독자들이 ‘초설회’를 통해 작가의 문학예술적인 삶과 작품을 연구”
한국 현대문학 100년사에 살아있는 작가를 위한 문학연구회는 없었다. 소설가 강준용은 그 신화를 깬 문학예술인으로 혹자들로부터 전설의 소설가로 불린다. 20여 년 칩거하며 오직 소설만 창작, 「숭선에서」,「핸드폰핸드폰」을 빚어내며 좋은 평론가 몇 분으로부터 찬사를 받는다. 가난과 병마와 소외로 점철된 치열한 창작생활 30여 년 만에 드러난 결실이다. 하지만 일찍이 문단에 던진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라는 명구호 탓에 문학인들한테는 낯선 작가가 아니었다. 문학예술적인 순수문학을 지향하며 창작 외에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은 채 칩거하여 빈민으로 30여 년 작가의 삶을 살았다.
물신주의와 메커니즘에 점령당한 현대의 사회와 인간들에게 문학예술을 통해 인본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창작 주제를 맞추며 특유의 문학을 형성시킨다. 소외된 인물들의 참담한 삶을 지적이며 철학적인 특유의 문체로 그리며 그들이 패배해 가는 과정에서 휴머니즘을 뽑아 참다운 삶을 정의한다. 특히 초기의 리얼리즘의 이야기식 문체를 의식과 철학적으로 전환, 인간본질의 탐구와 구제를 주제 삼아 사고하는 서사체를 개발하여 작품을 빚는다.
서울대 국문과교수 방민호 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구인환 평론가, 서강대 교수 이태동 평론가, 서울대 영문과 교수 장경렬 평론가, 중앙대교수 감태준 시인, 조선족 평론가 김성호, 서울대 법대교수 남효순 등 30여 명의 연구회원들에 의해 강준용 문학과 삶이 평가되고 있다. (홈페이지 참조. 검색에 ’초설회’ 나 ‘강준용’ 입력) 중국 조선족 문학계에도 인정되어 중국에서 한국문학인으로 유일하게?「숭선에서」작품의 무대인 숭선마을에 작가의 알림판이 세워졌다.
1952년 섣달 초이레 경상북도 영양읍 아담한 초가집 안방에서 강준용은 삭풍의 겨울바람을 첫 호흡에 담았다. 읍내 최고 부잣집 아들로 부유한 생활 속에서 시골의 자연을 만끽하며 유년, 청년기를 보낸다. 1978년 산사를 떠돌다 쓴 희곡을 갖고 연극생활로 들어선 작가는 소설을 습작하면서 희곡을 써 나갔다. 극단 ‘집시’를 통해 「개의행복」,「한잎의 진실」, 「무인도」,「누드 모델」등 창작 희곡이 장기간 무대에 올린다. 1986년 단편「철석골의 막장」이 월간문학에 가작으로 당선. 1987년 희곡「누드 모델」, 「개의 행복」이 『예술계』 신인상 당선. 88년 봄 월간문학에 단편소설「하얀 궁전」이 신인상으로 당선된다.
등단 2년 만에 문단을 떠날 결정을 한 후 20여 년을 타협 없이 무명으로 창작만 했다. 칩거 후 93년 장편『스콜』을 탄생시킨다. 특히 1993년 『스콜』발표 당시 선언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라는 명구는 문단과 언론에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오늘날 작가의 분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2년 중국 숭선을 방문한 후 단편 「숭선에서」를 완성, 2003년 발표함으로서 작가 본인이 만족하는 작품으로 여긴다.
2005년 강준용 문학작품과 삶을 알리기 위해 애독자 모임 겸 문학연구회가 30여 명의 각 분야 내로라하는 인물들로 인해 결성한다. 2008년 1월 창작집 『숭선에서』가 발간되자 발굴한 평론가 방민호에 이어서 평론가 이태동에 의해 재발굴되고, 서울대 장경렬 평론가가 학술적으로 접근하여 문학예술의 백미를 확인시킨다. 결국 『숭선에서』의 걸작은 작품의 무대 중국 숭선마을에 조선족 문인들로 인해 현판을 걸게 한다. 한국 문학인으로 최초로 중국에 걸린 안내판이다.
미혼으로 병마와 빈곤한 삶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치열한 문학의식으로 문학예술에 임해 온 작가의 생활담은 ‘전설의 소설가’ 란 닉네임을 갖는 전환기를 맞는다.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은 작가는 누구와 타협치 않은 외곬정신으로 30여 년 동안 해온 칩거를 계속하며 문학예술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 문단에 순수문학의 상징인으로 알려진다. 지금까지 9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난 후 결과이다.
문학생활 근 40여 년, 2012년 현재 전 재산은 책과 그릇 몇 개가 전부이다.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는 혈혈단신 부랑 신세, 아직 글을 쓸 수 있는 여력에 만족하며 예술의 길을 걷고 있다.

[목차]
작가화보
작가의 말 - 종반기의 서술
작품
선글라스를 낀 동지
그을음 유리 속의 시간
점령된 사회
나를 찾는 술래
하얀 궁전
문장 없는 귀족
핸드폰 핸드폰
숭선에서
평론
방민호(서울대 국문과교수, 평론가) - "선글라스를 낀 동지론"
고명철 (광운대 국문과교수) -소설을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김성호( 중국평론가) -강준용 소설창작 연구 방법
작가 약력
작품 연보
[출판사 추천]
한국문단에 순수문학의 사포라 할 수 있는 강준용의 문학예술 의식이 우러나오는 작품집이다.
60평생 오직 문학창작 이외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은 작가로 저명한 중견 문학인들이 독서 연구회를 만들 정도의 주요작가이다. 특히 구인환 서울대학 명예교수는 강준용의 치열한 문학적 삶을 중시하여 양말 한 짝도 챙겨두라는 중언을 남겼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인 장경렬 평론가는 작가의 작품을 극찬하며 호평한다. 서강대 이태동 평론가는 동아일보에 강준용의 문학예술적인 삶의 가치를 안타까워하는 칼럼을 발표할 정도의 주요작가이다. 강준용을 발굴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준용을 다뤄온 서울대 방민호 평론가는 평생을 빈곤과 병마와 고독으로 창작해 온 강준용의 문학예술에 안타까움을 발하며, 급기야 고명철 평론가가 한국문단이 더는 문학예술적 미를 간직한 강준용 문학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며 일침을 가한다.
강준용을 아는 분들은 ‘전설의 소설가’ 로 부른다. 한국문단 100년 사에 강준용의 문학적 삶과 유사하게 산 문인이 없는 탓이다. 30년을 소설을 써 와도 아직도 무명인 것도 큰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타협하지 않으며 칩거로 창작을 해 온 진실로 문학예술적 삶을 사는 작가이기에 가능하다. 더욱이 그는 30년 전 문학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빈민으로 미혼인 채 부랑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순수문학의 상징인물이 된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라는 구호를 문단에 던진 작가로도 알려졌으나 의식과 철학과 주지적인 사고로 작품을 빚는 문학예술적 고급 문학 지향의 작가로 더 알려졌다.
작품 모두가 소외된 자의 인간 찾기로 메카와 물질문명에 점령당한 오늘날 인간들에게 인본의 중시를 인식케 하는데 있다.
[평론가 추천]
방민호 - 서울대 국문과교수
단편 한 편 쓰는데 일 년이 걸린다고 자신에 대해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는 작가, 어떤 작가도 자신이 쓰는 작품을 완성했다고 할 수 없으리라는 말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작가가 바로 강준용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요즘 작가들이 단편 한편을 쓰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잘 알고 있다. 또 왜 대부분의 작가들의 문장이 그렇게 졸렬한지도 잘 알고 있다. 소설 문장에는 언제나 비약이 필요하다. 소설 문장 역시 궁극에서는 시적이어야 하며, 시적 상태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이 넓어야 한다.
강준용은 바로 그러한 문장을 구사할 줄 아는 작가다. 단지 그의 의식의 투명함 때문에가 아니라 그의 문장들이 삶의 본질을 언뜻언뜻 비추어 주는 그 순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본질적 문제를 꿰뚫어보려는 그의 의지는 이 현대 세계의 일상들이 자아내는 환영 같은 흐름에 현혹되지 않고 그 가식성과 인위성과 허무함을 갈파해 나간다. 그의 주인공들은 이 싸움 속에서 대부분 패배하고 말지만 현대소설을 읽어나가는 경험이란 원래 주인공의 패배 속에서 현실을 상대할 혜안을 얻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한다.
나는 이 작가가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지극히 힘든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대문자로 된 문학, 즉 이 세계의 본질을 갈파하려는 문학의 외길을 고수해 나가는 것을 아주 귀하게 생각한다. 안타깝고도 기쁜 심정으로 이 작가의 새 창작집을 그와 더불어 세상에 내보낸다. (『선글라스를 낀 동지』 평론 중에서)
고명철 -광운대 국문과교수_
강준용은 주류 문단과 거리를 두면서, 강준용만의 독특한 소설 세계를 정립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그로부터 방외인(方外人)의 치열성과 핍진성에 대해 성찰해본다. 소름끼칠 정도로 냉철히 파헤치는 그의 서사적 문제의식은 어떤 것도 그의 도저한 부정의 정신과 비판의식을 가로막을 수 없도록 한다. 세계와 존재의 비의성(秘儀性)을 에돌아가지 않고, 단숨에 파고드는 그의 소설은 ‘서사의 마성’ 혹은 ‘마성의 서사’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하여, 그의 소설은 비루한 세상을 이야기하되, 비루한 세상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비루한 세상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응시하며 보란 듯이 이 세상을 넘어서는 미적 저항의 매혹을 발산한다.
한국소설의 양적 팽창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산문정신의 가치를 벼리는 한국소설의 진경(眞景)을 마주하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소설이 아직 낙담하기는 이르다. 지금까지 우리가 간과해온, 아니 외면해온 강준용의 서사로부터 한국소설의 진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호 -중국 평론가
강준용,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은 물론 남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을 그가 해냈다. 문학창작을 위하여 삼십년을 하루와 같이 드팀없이 꾸준히 노력해 왔다. 한 마디로 말하면 눈물과 감동이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그의 과거지사이다. 그는 진정으로 문학예술적인 프로작가다. 아마추어작가들이 작가랍시고 어디서나 떠들어대는 이 세월에 그는 말없이 꾸준히 창작을 해왔다.
오로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라는 명제를 가슴에 새기고 그는 근간에 또 한편의 소설작품집 『선글라스를 낀 동지』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이 작품집은 하나의 새로운 문학창작 방법을 완성시킨 성과작이며 이로써 강준용 작가는 문학창작방법상 하나의 산맥을 이루게 된다. 그는 바로 대한민국의 문학사조사에서 순수문학 유파의 대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속으로]
선글라스를 낀 동지
그는 실처럼 가는 금빛의 쇠테로 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살쾡이의 눈처럼 위로 약간 처든 듯한 안경알은 먹지를 붙인 듯 까맸다. 레이밴 선글라스의 대표적 형으로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내 의식에 각인된 두 사람의 선글라스 유형을 그렸다. 한 사람의 남자는 의수 끝에 달린 갈고리에 볼펜을 끼어 내밀며 읍내 가게를 휘돌아다녔다. 갓 전장에서 돌아온 영웅처럼 계급 없는 군복에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허리에 권총집 같은 안경집까지 찬 괴물은 검은 안경을 가게주인의 얼굴에 고정시키고 말없이 볼펜을 사줄 때까지 기다렸다. 갈고리가 달린 팔이 신기해 따라나선 나를 쏘아보는 검은 안경은 유년의 내 호기심을 두려움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용돈을 달라고 조르다가 상이군인한테 잡아가라고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입을 다물고 검은 안경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쁜 사람들만 검은 안경을 쓴다는 고정관념을 연약한 내 유년의 기억 판에 찍은 나는 즐겨 그리는 그림에도 도둑과 깡패들과 범인들은 모두 검은 안경을 씌웠다.
문장 없는 귀족
세상은 돈이 최고다. 아버지의 귀족 자격법에는 이 화두가 자리했다. 귀족 품위유지에 대한 애착은 강렬했다. 아버지 평생의 삶의 방식이었고, 절대권적인 투쟁의 강렬한 힘과 서두르지 않는 인내심은 능력의 꽃을 피웠다. 그 꽃으로 순화된 그는 아버지의 귀족정신을 이어받았다. 귀족이란 말 자체보다 귀족이란 존칭을 좋아했다. 귀족은 삶과 죽음에서 의연해야한다. 그것이 일반인과 다른 것이다.
하얀 궁전
아이들한테의 의혹은 경험이 해답이다. 실버들같이 연약한 다리가 황소의 뒷발처럼 강해질 때부터 밭에서 내쉬는 아버지의 한숨 속에 무엇이 달린 것을 알았다. 논뙈기 몇 마지기를 내어주는 특권 앞에 인생의 패배를 자인하는 아버지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과자 부스러기와 장난감에 미혹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들매골의 탈출을 부추겼다. 아버지의 한숨과 텃밭과 들매뜰과 성호의 기와집이 안 보이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았다.
핸드폰 핸드폰
개미들이 비스킷에 콩고물처럼 달라붙어졌을 때 나는 흥미와 쾌락의 예고로 달구어진 감정을 분출시키며 비스킷 주위로 유황가루를 울을 치듯이 촘촘히 뿌려 쌓는다. 대륙 같은 먹이를 한 입 뜯어 문 것으로 만족한 모자란 녀석이 길을 따라 나가고, 갓 소식을 받고 부지런히 달려오는 성실한 녀석들로 인하여 만들어진 길에는 검은 줄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줄이 지워질까를 염려하면서도 나는 비스킷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만들었다. 유황가루를 뿌리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 대문이었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워두어 그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허락하는 것으로 대문의 사실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대문을 왕래하는 녀석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누가 하늘의 복을 타고 났는지를 가름했다.
나를 찾는 술래
우봉이의 거센 음성이 산속에서 울리는 꿩소리보다 컸다. 바지를 입고 우봉이의 뒤를 따라 밀밭을 나왔다. 더덕바위를 지날 때 용기를 내어 그도 태양을 시켜달라고 졸랐으나 태양이 하나라는 이유로 단번에 거절당했다. 대신 언제든지 그가 그녀보다 더 용감할 때에는 낮달과 바꾸어 준다고 약속했다. 그녀와 헤어질 때 낮달이 그를 따라 오는 것 같았다. 우봉이를 따라 주막집으로 가는 태양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튿날 우봉이가 보여준 용감한 행동은 우봉이와 낮달을 바꾸려했던 그의 희망을 완전히 와해시켰다. 우봉이를 이길 확률이 없다는 걸 알았으나 포기하질 않았다. 그녀의 말만 잘 들으면 태양과 바꾸어 준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수수밭과 감자밭 그리고 그녀의 집 근처의 개울가에 누워 낮달을 바라보아도 그녀는 태양과 바꾸어주지 않았다. 이듬해 다시 더덕바위의 밀밭고랑에 들어가서 낮달을 보아도 태양이 되지 못했다.
점령된 사회
손님이 뜸했다. 지하철의 막차도 끊어질 시간이다. 그는 전을 거두기 시작했다. 한 박스 반이나 남은 귤이 눈처럼 시간이 지나면 녹아버렸으면 했다. 아내는 눈사람처럼 왔다. 눈사람은 오자마자 박스부터 뒤졌다. 아내의 생각은 온통 귤의 숫자에 있었다. 아내가 푸념을 발할 때마다 그의 가슴에 살얼음이 박혔다. 아내가 오늘만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내는 수레만 밀었다. 눈발이 아내의 입을 봉해 버린 것 같았다. 그는 차의 헤드라이트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수레를 끌었다. 발자국이 찍혔다. 수레 밑으로 사라져 가는 그 발자국에 아내의 발이 놓일 것 같았다. 왈패 같은 년한테 수모를 당한 것도 아내와 아이들 때문이다. 그는 가래침을 뱉었다. 넘어질 때 박혔던 허리가 뻐근했다. 입맛이 썼다. 철새 집에 아직도 장씨가 있을까.
그을음 유리 속의 시간
눈을 감으면 어둠을 만난다, 어둠은 늘 그에게 선보다 악의 근원을 내포시켰다. 범죄와 불륜과 타락과 패배와 빈곤과 무식과 각종 악행의 세계는 어둠으로 상징되었다. 약육강식의 동물 습성을 가진 못된 인간들만이 존재하는 칙칙하고 더러운 곳도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찾았다. 하지만 긍정하고 순응하는 것에 대한 반발의 논리도 철칙을 위반하는 교묘한 해답도 편파적이지 않은 올바른 삶의 지침서도 암울한 어둠속에 은닉되어 그를 조롱한다. 어둠의 세계는 햇살에 드러나는 맑음의 법칙보다 진실하고 통상적일 수도 있다. 그을음을 통해 본 피같이 붉은 해의 원색처럼 그가 보낸 유년도 그 속에 있었다.
숭선에서
언덕을 내려가 마을에 진입하자 경계선은 작은 개울로 나타났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앞에 섰다. 물길 폭이 4미터가 되지 않았다. 무릎을 밑도는 물살 아래로 강이 생길 적부터 깔린 듯한 굵은 돌들이 얇은 청태를 끼고 누웠다. 물살의 속력에 채 얼다만 얼음이 양쪽 가장자리의 일부분에 눈을 내려앉게 허락했다. 물은 투명했고, 할 말이 무엇이 그리 많아 속이 상한지 물밑에 깔린 거무튀튀한 돌들이 내는 빛을 반사 받아 약간 검은 색을 띠고 흘렀다. 나약한 강과 달리 미사일을 맞아도 건재할 정도의 철골과 시멘트로 축조된 다리가 육중하게 걸려 있었다. 다리 양쪽의 군인 막사는 이 마을에 가장 우람한 건물로 강을 지켰다. 다리 밑으로 지나는 물길은 곧바로 너른 강폭을 안고 두만강의 이름을 얻을 정도로 변모했다. 북한 삼장에서 흘러나온 물이 두만강 원천과 합수되어 만들어낸 결과였다.
책 문의 : 010-3713-3016(임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