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필(墨筆)의 혼(魂)이 녹아든 의백(衣白)의 창작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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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필(墨筆)의 혼(魂)이 녹아든 의백(衣白)의 창작세계
  • 이동렬
  • 승인 2012.02.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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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조선족 화백 주훈선생과 대담하다

[서울=동북아신문]기자가 중국 연변조선족의 저명화가 주훈화백을 만난 것은 2012년 1월11일 오후 4시, 서울시 인사동에서 한중수교 20주년과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MBC가 주최한 '중국 조선족 화가 5人5色展'에서이다.  

그날, 기자가 본 주훈화백은 키가 꽤 컸고 근엄한 얼굴에 학자연한 모습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뉴스를 보아 알고 있었지만, 현재 그는 중국 국가1급 미술가이고, 중국미술가협회 연변분회 부회장이며, 연변예술관 미술부주임 등 직을 맡고 국내외 화단에서 주목받으며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었다.

행사에서, 이재철 MBC 사장도 축사를 하며, 그의 작품은 "대륙의 기질을 유감없이 표현하였다"며 주훈화백의 화풍(畵風)을 높이 칭찬하였다.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실경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한 작품, 먹의 이미지를 작가 나름대로 풀어낸 작품, 작가의 손때가 묻어있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의 모습을 담아낸 대작"등에 손색이 가지 않는 대작들이었다.

주훈화백은 젊었을 때 10여 년간 서양화를 그리다가, 점차 동양화인 수묵화(水墨畵)와 필묵화(筆墨畵) 창작에 올인 해 왔다.

수묵화는 붓의 운필 속도에 따른 변화와 여백의 느낌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중국 당나라 중엽부터 시작하여 왕유를 시조로 하는 남종화에서 그려졌고, 조선시대에 문인화로 성행하기도 한 전통화법이다. 그중 필묵화(筆墨畵)는 筆이 조형의 주요한 표현기법이며, 역대화가들의 오랜 예술적 체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체계와 고유한 특성을 갖고 형성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랜 중국회화 필묵화가 주나라 때의 비단그림이라고 하는데, 이로써 우리는 필묵화의 기법과 전통이 중국화에서 얼마나 오랜 역사를 거쳐 발전해왔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 봇나무

주훈화백은 자기 것을 만들기 위한 오랜 시간의 고민과 탐구 끝에 결국 "전통의 길"을 선택하였고, "필묵화(筆墨畵)"를 선택하였다.

영어에서 전통(tradition)이란 사상, 신양, 습속의 계승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통이란 “계통”과 “혈통”이다. 그는 "미술전통의 체현은 역대로 전해지는 경전작품과 경전 화론"으로 보고 있다. "임의의 작품의 심미가치를 토론하려면 반드시 그것을 이 전통의 좌표에 넣어야만 그것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정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의 어떠한 권위적인 판단도 이런 좌표계를 떠날 수 없었다"고 그는 단정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그는 평소에 늘 '작업노트'를 쓰며, 자신을 끝임 없이 성찰하고 끝임 없이 사색하며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참(眞)의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우리는 그 시대의 한민족 역사와 풍속과 삶의 희노애락을 보아낼 수가 있고, 그 속에 담긴 화백의 사색과 추구, 열정과 영감과 재치를 발견할 수가 있다.

주훈화백의 호는 의백(衣白)이다. 자기 민족의 것으로 세상의 화풍과 겨루어보려고 '백의(白衣)'를 입은 것이다. 그는 졸박(拙樸)이 좋고, 꾸밈이 없는 미완성이 좋다고 말한다. 사람은 자기의 미완성을 감지해야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백두산

 따라서 주훈화백은 또 자신을 수졸재(守拙齋)라고도 호칭했다. 낮은 자리를 지키면서 겸허히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말이다. "수졸재(守拙齋)에서 두만강의 느티나무를 생각하면서 상념에 젖어보는" 그는, 가장 정직한 우리민족의 꾸밈없는 생활상의 졸(拙)이 좋다고 했다. 오랫동안 선조들이 속절로 지켜온 세시풍속(歲時風俗), 더불어 사는 조상들의 지혜와 그 의미를 살펴보는 멋을 알아보는 쾌감을 느낀 것이다. "그 한점, 한점마다 진하게 묻어나오는 조상들의 체취와 진솔한 삶의 모습들, 위대한 문화를 탄생시킨 우리 민족의 질박하고 당당했던 그 생활과 풍속의 면면들, 이미 우리들 몸 가까이에서 사라져 버렸고 또한 더 멀리 잊혀져가고 있는 것들"이기에 더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야는 늘 조선시대의 풍속화가 그려져 있다. 윤두서의 '실득(實得)'의 즉물사진(卽物寫眞)적 사생을 통한 사실주의적 창작태도가 초기단계의 것이라면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풍'의 '목화밭'·'馬上廳行圖'; 김득신의 '班常圖'·'병아리를 채가는 들고양이'; 신윤복의 '처네를 쓴 여인', '행상'등은 사실주의를 벗어난 사의적인 화풍이었다. 이와 같은 전통 앞에서 그는 그들이 지향한 근대사회를 그려보면서, 현대의 사회와 시정(市井)에서도 이와 유사한 정경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를테면 "한 세기 저편의 엿장수와 나무꾼, 시정의 유흥가 풍경, 길 떠나는 나그네의 행장, 땔나무를 팔고 오이를 파는 일상, 스님과 바구니, 여신도들의 행색, 봇짐을 지고 구걸하는 걸인의 모습, 싸구려를 부르는 장돌뱅이들, 豊年을 기원하며 和合과 協同 정신을 모아 풍물패가 한판 허드레지게 노는 마당극…"등이 그의 예술의 혼에 강렬한 창작영감을 불러일으켜 준 것이다.

사실, 그의 필묵화에는 현시대 한민족의 전통과 풍습들이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그려졌고 재창작이 되어있다. 역사와 풍속과 영감이 어울려져서 그만의 흥과 재치와 풍격으로 우리 앞에 재현되어 있다.

주훈화백은 또, 창작노트를 쓰면서 철학자처럼 간단없이 사색하고 인생을 정리해 가고 있다. 그의, 단편적인 창작노트 속의 몇 구절을 살펴보자.  

▲ 조남기 장군께 작품을 선물하다

 ▶ "우리 것에 대한 자존심과 자신감을 잃어가는 세태가 아쉽다. 서구문화를 쫓고 유행만을 따르는 풍토가 예술계에 만연(蔓延)한다 . 신윤복의 뒤를 이어 새롭고 독창적인 화맥(畵脈)을 일구며 우리화단을 지키고 싶다."

▶ "좋은 그림이라는 것은 간단하다. 즉, 내 그림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입의(立意), 내 필력, 내 운치, 내 결구…그러나 이 모든 내 것들은 전통에서 탈태 환골한 것이어야 한다. 자신만의 그림이 아니면 꿔 온 보리자루에 불과 할 뿐이다."

▶ "나는 우리민족의 뿌리와 자존을 지키며 우리의 조상님들의 인물, 문인화와 풍속 생활도가 추구한 신념을 생각하며 작업해 왔다. 고독과 적막, 인내의 긴긴 여정, 그 끝은 어딘가? 높은 곳에는 추위를 이겨내기 어렵다는 소동파의 말을 한 번 더 실감한다. 어떤 때는 생각한다. 자기 존재를 필요이상으로 낮추는 바람에 남의 눈에 띠우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소박한 천성과 겸손한 위인(爲人) 때문이 아닌지?…세상 사람들은 조만간에 나의 이 노력을 인정해 줄 거다."

▶"나는 정직한 우리민족의 꾸밈없는 생활상을 그리려한다. 애착심을 가져라! 그게 그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급해하지 말라. 급하면 이르지 못하리라(欲速則不達) 일용과 생활에서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삶의 방식이 있으니 시야를 넓히고 멀리 보자. 지금의 욕심은 그림, 오직 그림 단 하나로 충분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나의 인생의 그림을 멋지게 그리는 것이다"

▶"나는 순간 순간마다 나의 정신을 점검(點檢)한다. 그것은, 입의(立意)의 영혼은 정신이기 때문이다. 강의한 정신은 굴함 없는 모델을 발굴해내게 되며 유연한 정신은 지혜로운 모델을 창조하게 된다. 이것이 양강(陽剛)의 미(美)와 음유(陰柔)의 미(美)이다. 재능은 이런 정신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재능은 후천적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정신이 있고 재능이 있으면 회화에서의 모든 것이 겸비된 셈이다. 모델의 형체는 바로 이 두 가지에서 구현된다." 

▲ 새벽길

 ▶ "방귀가 모이면 똥이 된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 방귀는 똥의 하나의 속성, 냄새에 속한다. 나의 주위에는 남의 풍월을 듣고 만사를 다 아는 것처럼 표방하는 인간이 몇몇 된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자를 '아는 사람(知道分子)'라 한다. '아는 사람(知道分子)'은 지식분자와는 근본적 차별이 있다. 그들은 아예 모 사물을 연구하지 않고 결론만 아는 사람이다. 또 이런 결론의 정확여부는 풍월을 다시 들어야 한다.

그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왈가왈부, 무엇 때문에 이 자들의 비난에 섞인 이견(異見)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장자는 똥 속에도 도(道)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하찮은 사물에도 도가 있다는 말이다. 장인(匠人)이면 장인을 이해하고, 예술가이면 예술가를 이해한다. 장인도 아니며 예술가도 아닌 사람들의 비난은 감상자의 이견으로 들으면 될 것이다."

▶ "화도(畵道)는 도(道)이다. 도(道)에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가 있다 하지만 예술 차원에서 말하면 천도에 가깝다. 천도란 자연의 도(道), 노장(老莊)의 도(道)이다. 성공한 대가들의 성공한 그 이유를 인젠 알겠다. 보라, 소식은 조정에서는 유가의 도(道), 인도를 말했지만 예술에서는 전적으로 노장의 도를 말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자기를 무함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유가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금전의 왕래에 익숙하지 못한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것은 그림그리기다. 그림그리기에서는 천도로 표현하면 그만이다. 회화는 자연이연(自然而然)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라. 하물며 내가 공략하려하는 민속화도 내가 전공한 인물화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하! 넉두리!"

▶"일등이 되지 말고 오늘의 베스트가 되자. 나! 나는 나와의 격투 속에서 전진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라. 새로운 자기를 창조할 것이다. 나는 그림으로 밥을 먹고 그림으로 옷을 입고 그림으로 잠을 잔다." 

▲ 목귀도

 ▶ "묵의 농담과 번짐의 운율을 통해 잠재한 의식속의 형상들이 어우러져 표현되고 있다. 수묵으로 표현되는 나의 작품들은 이성적이고 화려하기보다는 단순명료한 형식을 취하고자 한다. 이는 나의 심미관과 가치관에 기인된다고 생각된다."

… 주훈화백은 바로 이렇게 "끈질긴 노력"과 또 "자신과의 간단없는 싸움에서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면서 한발자국씩 내디뎠다"고 고백한다. "주위의 사람들의 평가는 그것이 感性적인 것이면 채납하였지만 입의(立意)에 대한 왈가왈부는 아예 주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현시대의 입의(立意)는 인자견인 지자견지(仁者見仁 智者見智)이기 때문이다.  

▲ 새벽길

 동양화의 형상표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구는 전신(傳神)이며, 제일 기본이 되는 조형방법은 필묵(筆墨)이다. 그는 필묵으로 마냥 "정과 따뜻함이 담뿍 고여 있는 그림을, 또 반드시 스스로의 그림"을 그려오기에 줄곧 노력해 왔고 자랑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담담한 묵빛의 부드러움과 건필의 스피드가 적절히 조화되었고 채움과 여백이 어우러진" 그의 수묵화에는 "흘러간 옛 조상들의 삶의 미와 정서"가 녹아있으며, 중국 조선족 고유의 미풍양속이 잘 그려져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 상모춤

 2010년에 주훈화백은 대형화보 '중국조선족민속도'를 출판했다. 도합 120점의 작품을 수록한 이 화책은 전설편, 생활편, 가무편, 풍경편, 예의편으로 나뉘어 중국조선족의 민속세계를 세밀하게 그려냈으며, "애정이 어린 시선과 진지한 고민"으로 조선족사회를 성찰함으로써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돌에 큰 선물을 하였고, "귀빈선물용으로 지정"되는 등 조선족 민족문화의, 또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올해에도 주훈화백은 "연변 박물관 소장용 중국조선족민속도 40여점을 그릴 예정"이며, 두 번째로 갖는 한국에서의 개인전, 한국청주직지박물관 소장용 작품 제작 등 굵직한 스케줄들을 소화해 내어야 한다.  

▲ 주말장마당(集市)

이렇게 40년 넘게 끊임없이 창작에 집념해 왔지만, 그는 지금도 "창작은 언제나 힘들다"고 한다. 정신적 수양과 기교의 수련을 겸비하고, 또 재능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최고의 경지에 가까워질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주훈화백은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인 인생은 세상과 자신의 숙명을 뜨겁게 사랑하는 삶이다”고 말한다. 그는 항상 자신의 숙명을 자각하면서, 그 주어진 숙명을 다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나가고 있다.  (끝)

[주훈화백의 일부 작품 갤러리]  

 

  >> 본지 이동렬 대표 행사장에서 주훈화백과 기념사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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