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외국인노동자 쫓을 권리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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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외국인노동자 쫓을 권리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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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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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3-11-23

배가압류 조치의 잔인성과 비정규직 차별의 부당성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소위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혹독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지난 8월17일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면서 이 법에 의해 22만7천여명의 불법체류 외국인들에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주기로 했다고 크게 선심을 베푸는 듯이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법은 합법화 신청을 할 수 있는 외국인의 체류기간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을 뿐더러 그들이 취업할 수 있는 업종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인이 취업을 기피하는 거칠고 힘든 일자리만 외국인에게 허용하되, 그들이 이 땅에 영구히 정착할 꿈을 꾸지 못하도록 일정기간 부려먹고 내쫓겠다는 것이 그 법의 진정한 의도이다. 그 결과 지난 3월말 현재 3년 이상 체류자와 그후 새로 생긴 불법체류자 등 15만명 정도는 자진 출국하거나 잠복하는 길을 택하였고, 심지어 몇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내국인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또 그들의 존재가 우리 경제에 어떤 긍정적 역할 내지 부정적 효과를 발휘하는지 제대로 거론할 만한 식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몇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동포도 한때 해외이주-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생물은 먹이가 있는 곳으로 몸을 움직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돈벌이가 되는 곳으로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 점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농촌붕괴와 중앙집중-도시과밀화는 국가목표로서의 산업화정책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말부터 우리 동포들은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로, 일본과 아메리카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현재 6백만명에 이르는 해외 한민족의 숫자는 유태인을 제외하면 인구 비율상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최근 15년간 주로 동남아인들 40여만명이 한국으로 노동이주를 한 것은 우리 민족의 해외이주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외국인노동자를 억압하고 추방할 권리가 있는가.

그런데 험한 일에 종사하던 숙련된 외국인노동자들이 출국·잠복함으로써 중소기업 사업장은 지금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수십만의 청년실업자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범죄와 타락의 유혹에 노출되고 있다. 대체 왜 이런 모순된 현상이 발생하는가.

한마디로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천시되고 차별당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빈곤의 세습이 제도화되어 가고 그것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교육이라고 인식되는 현실에서 대졸실업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내 생각에 근본적인 문제는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고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데에 있는 것 같다. 한 나라 안에서 그럴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그렇다. 가령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유국이고 자원의 소비국가로서 외국인노동자에게 최고의 선망대상이지만, 동시에 내부적 소득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평등 자체가 자본주의체제의 작동을 위한 불가결한 동력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노동 국제이동 보장돼야-

지금 초국적자본과 강대국들 즉 세계의 지배집단들은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국제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세계화’라는 기만적 이름으로 불리는 이 수탈체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외국인노동자의 체류와 취업을 제한하고 금지하는 것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끊임없이 계속된 이주의 관행을 거역하는 것이며 인간의 기본적 생존권을 부인하는 것이다. 따뜻한 곳을 찾아, 사냥감이 많은 곳을 찾아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가로질렀던 기억은 인간의 두뇌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염무용/영남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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