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노래에 「이별의 노래」가 있다. 김성태 작곡, 박목월 작사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가사는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2절)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3절)로 이어진다. “아, 아-”로 시작되는 후렴구에서 그 차원이 좀 느껴지긴 했지만, 그때에는 그저 흔히 있을 수 있는 젊은 시절의 사랑을 쓸쓸한 가을날에 추억하는 노래로 여겼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청록파 박목월 시인이 실제로 겪었던 자신의 사랑의 아픔을 담은 것이다. 그것도 결혼하여 여러 명의 자녀까지 둔, 40을 바라보는 나이의 가장으로 자신을 지극히 사랑한 여대생과의 사랑이고, 이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마무리가 부인의 현명한 대처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대구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박목월은 경주의 동부금융조합에 취직하고, 1938년에 유익순 여사와 결혼하였다. 1939년 목월은 <문장> 9월호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들어섰다. 1946년에 박두진 조지훈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1948년에 서울로 이사 온 목월은 6․25사변으로 대구로 내려가 살았다. 일은 1952년 봄에 시작되었다. 목월은 자신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와의 만남에 나갔다. 그 중에 젊은 여형제가 있었는데 둘 다 목월을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언니는 날이 갈수록 목월에게 적극적이었다. 목월은 몸을 사렸다.
다행히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서울로 이사 올 무렵에 언니는 결혼을 했다. 1954년 서울 E여대 국문과를 다니게 된 동생은 목월에게 뜨겁게 다가섰다. “슬픔과 안타까움이 어린 애절한 시선으로 거의 매일같이 목월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이형기의『박목월 평전』) 초봄부터 그들은 서울의 밤거리를 자주 함께 거닐었다.
목월은 안 되겠다 싶어 친구에게 그녀를 설득하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서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겠지요.” 그 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오자, 목월은 그녀와 함께 끝내 제주도로 떠났다.
부인 유익순 여사는 늦가을에 남편이 그녀와 살고 있는 제주도 집을 방문하였다. 유 여사는 목월과 그녀가 겨울을 지낼 한복 한 벌씩과 생활비를 담은 봉투를 조용히 내밀고 돌아왔다. 본부인인 유 여사의 그러한 태도에 젊은 그녀는 통곡을 하였다. 결국 목월은 4개월 만에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 동안의 격정을 가라앉히려고,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반대쪽인 효자동 종점 부근에 하숙을 정하고 한 동안 지냈다.
마흔을 넘기며 목월은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1955년에 첫 시집 『산도화』를 내고, 1956년에는 홍익대 교수가 되어 자작시 해설서인 『보랏빛 소묘』도 발간하였다. 1959년에 한양대 교수,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을 지내며, 시집 『난․기타』를 출간했다. 이후 한국시인협회와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의 회장, 시잡지 『심상』창간 등 문단활동도 하였다. 목월은 1978년 3월 24일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목월은 30대 후반의 그 사랑을 잊지 못했다. 이별의 아픔도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가을 깊고” “한낮이 끝나면” “사랑도 저물고”, “눈이 쌓인 밤에” ”홀로 울리라” 가슴을 태우면서, 사랑도 인생도 모두 떠나가는 것이라고 달관하듯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하고 반복해서 노래했다.
목월은 고혈압으로 쓰러져 죽기 얼마 전에, 늙은 그녀의 집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적었다.
“그의 눈에는 / 영원히 멎지 않을 눈발이 어렸다.
나의 눈에는 / 눈발이 내린다.
사람의 인연이란 / 꿈이 오가는 통로에
가볍게 울리는 응답.”
<「방문백발이 되고, 이승을 하직할 무렵에 한 번 더 만나보려니 소원했던 사람을 이제 방문하게 되었다. 덧없이 흐른 세월이여. 끝없이 눈발이 내리는구나」중에서>
죽을 즈음에도 20여 년 전의 사랑은 식지 않았고, 사랑의 이별은 이승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픔으로 가슴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강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은 벌을 주고 싶게 된다. 그러나 벌을 받는다고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목월의 부인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가 감싸 주었다. 본부인으로서의 참으로 쉽지 않은 그런 행동으로, 그들은 평생을 못 잊어 하면서도 헤어진 것이다. 사랑은 어떤 사랑이든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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