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눈꽃 날리는 지난해 2010년 12월 중순, 나는 동료들과 중국 강남으로 문화탐방의 길을 떠났다. 하얼빈을 떠날 때만 하여도 살갗을 파고들던 한겨울의 강추위에 움츠렀던 몸이였지만 상해포동공항에 내리니 길가에 꽃들이 웃어주고 거리로는 다양한 옷차림과 피부색이 각이한 사람들이 여유작작하게 오가고 있었다.

한 때 한국임시정부가 자리잡았던 여기, 1932년 4월 29일 일본침략군이 상해 홍구공원에서 상해사변 전승축하식을 거행할 때 윤봉길의사가 하객으로 가장하고 행사장에 들어가 폭탄을 투척하여 상해주둔 일본사령관을 폭사시켰던 유구한 도시, 어제날의 시린 한과 우리 민족의 열혈남아들의 뜨거운 숨결이 아직도 강가에 숨쉬고 있는가. 황포강은 불러도 불러도 못다 부른 역사의 애환과 비가를 목메이게 부르며 사품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번화한 상해의 화려한 외곽보다 구경 오늘 상해라는 이 유서깊은 땅에 우리 조선족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있는지를 알려고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산다는 룡백단지로 갔다.
룡백단지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한글간판들이 보이고 어디에선가 경쾌한 한국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흑룡강성에서 왔다는 조선족이 꾸리는 <진달래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푸짐한 주안상에 마주앉아 주인이 들려주는 창업사를 듣고 있노라니 상해라는 이땅에 우리 조선족의 선구자들이 찾아들어 생소한 풍토와 문화속에서 생존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는 진한 감동에 전율을 느꼈다.

다음날 우리는 곤산시로 떠났다. 중국의 제일 물의 고장으로 불리우는 주장(周庄 )은 가는 곳마다 물이요 물이 있는 곳에 루각이 있는 920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관광명소였다. 당지 관광국 책임자의 소개에 따르면 2007년 관광객인수는 350만명, 광광수입은 12억원이고 2008년에는 관광수입이 15억원을 바라보고있다고 했다. 주장에도 많지는 않아도 조선족 음식점과 한국기업들이 입주하고 있었는데 아직은 자기의 기틀이 잡히지 않았지만 2008년도에 한국관광객이 3만 명을 초과했다는 사실과 조선족기업이 작년 한해사이에 20여개가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역시 자기의 생존기반을 위하여 어디에나 찾아들어가는 우리 조선족들의 신근하고 근로한 한단면을 보여주기에는 족했다.
주장을 떠나 소주시에 찾아갔을 때는 정오무렵이였는데 자글자글 내리쬐는 한낮의 해볕이 길바닥을 달구고 있었다. 이번 문화탐방에서 소주시는 주요한 목적지였다.
우리 조선족들과 한국기업이 많이 집결된 곳으로서 국제적인 대기업인 한국삼성전자를 비롯해 한산로에는 시대상가와 수원성, 한국음식점 소머리국밥집과 유흥업소인 한국노래방, 한국슈퍼 떡집까지 들어앉아 우아한 한민족의 전통문화가 고집스럽게 틀고 앉아 자기의 막강한 역사를 고집해가는 중국문화에 끈질긴 침투를 해가고 있었다.
현재 소주시에는 5000여 명의 조선족과 4000여 명의 한국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소주시를 돌아보면서 어디를 가나 자기민족사업의 건전한 지역사회 구축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참여의식, 그리고 상호간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면 우리의 생활터전이 넓어지고 생소한 문화속에서도 자기의 독특한 문화를 고수해나간다면 박토에서도 생활은 무르익을 것이고 보람찬 삶의 꽃들이 소담하게 피여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강남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교육도 비약적으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1300여핵타르의 부지. 63만평방미터의 건축면적과 10만 명의 학생을 가진 6개 대학이 오붓하게 들어앉은 상주시의 대학성은 말 그대로 문화공원이었고, 일류의 배움의 전당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한국어학과 주임으로 있는 장춘조선족중학교의 전 박동남교장을 찾았다. 대학성에 천여 명 한국어학과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어가 강남땅 곳곳에서 한족들에게 인정이 되고 접수가 되었다는 현실에 무지한 자부심을 느꼈다.
인간이 자기의 생존기반을 구축해가자면 협애한 집단의식에서 벗어나 관념을 갱신하고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피부로 감지했다. 오늘 세계의 앞장에서 부를 누리며 달리고 있는 선진국의 발전역사는 문화의 발전이였고 문화의 업그레이드였다.
우리 조선족들도 협애한 농경사상에서 벗어나 우리가 괴나리보짐을 지고 중국땅에 개간의 첫삽을 박던 그런 정신과 투지로 연해나 강남땅 곳곳에 새로운 생활터전을 마련한다면 우리는 줄어만가는 마을인구와 침체되는 교육의 아픔을 단 얼마라도 달랠 수 있다고 본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 되는 것이다. 땅과 고향을 떠나기를 회피하고 호박꽃에 벌들이 우는 것을 보고 어떤 향수를 맛 보고 달밤에 연연한 향락에 만족했던 어제날의 생활을 답습하면서 낙후한 지방향락에 도취되다보면 고루한 문화속에 경제는 쇠퇴되여 갈 것이고 경제기반을 상실한 우리의 문화도 전통도 모두 잃고 말 것이다.
강남을 비롯해 중국 곳곳에 한겨레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이 꽃으로 떨기떨기 피여나고 가는곳마다 자랑스럽고 떳떳한 우리 민족의 문화와 그 문화를 고수하고 계승발전하는 참다운 얼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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