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질병진단의 '법관', 병리과 김경호주임의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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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질병진단의 '법관', 병리과 김경호주임의사의 이야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1.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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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병리분석에 몰두하고 있는 김경호주임(중간)과 그의 동료들(예빈 찍음)
[서울=동북아신문]정확한 질병진단은 병 치료에서의 선재조건이다. 만일 질병진단에서 착오가 생기면 그 후과는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임상병리학진단은 질병진단에서 제일 권위성적인 ”금표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병리과 의사는 “의사의 의사”로서, 질병진단 “법관”으로 불리우고 있다.

중국 흑룡강성 가목사시부녀아동보건원 병리과(佳木斯市妇幼保健院病理科) 주임인 김경호(金京浩) 주임의사는 20여년 간 자신의 열정과 심혈을 임상병리검사 사업에 고스란히 바쳐 의학 및 생명과학의 모든 검사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의사로 거듭났다.

그는 수십년 간 5만여 명 환자 병리진단에서 한 번도 오차를 내지 않아 환자들의 절찬을 받고 있으며 가목사시 의료계통에서 학과선두자로 활약하고 있다.

1964년 생인 그는 김경호씨는 1989년8월에 할빈의과대학 림상의학학부를 졸업한 그는 삼강지구 최대규모인 가목사시중심병원 병리과에 배치 받았다.

이때로부터 그는 젊은 열정과 패기로 모든 질병의 진단과 예방을 위한 임상병리검사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최신의학기술 이론습득과 첨단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실기를 연마하는데 전력을 다 하였다. 그는 점차 진단혈액학, 임상화학, 진단면역학, 임상미생물학, 수혈의학, 세포유전학 및 분자유전학, 검사정보학 등 여러 면의 풍부한 경험으로 병원에서 이름있는 의사로 꼽히게 되었는데, .2000년에는 부주임의사로, 2006년에는 주임의사로 승급되었으며, 2002년 4월부터는 병리과 림시책임자로 활약하였으며, 2004년 11월에는 특수인재로 가목사시 부녀아동보건원병리과 주임으로 발탁되어 병원을 옮겼다.

그때 당시 이 병리과는 인원이 1.5명(전직인원 1명,겸직인원 1명)이고 년간 수입은 18만 위안밖에 안 되었다. 이에 김경호 주임은 높은 자질의 전업기술인재양성에 중점을 두고 정체적 실력추진에 중시를 돌리며 엄격한 규장제도로 관리를 강화하여 병리과의 쾌속발전을 가져왔다. 2005년에는 병리과 수입이 40만 위안에 되어 전해보다 1배 증가했고 2010년에는 180만 위안에 도달해 10배를 초과했다.

병리과의 환자진단인수도 과거의 년간 1천 명으로부터 지금의 년간 3500여 명으로 증가되었다. 또 이 몇 년 간 첨단장비에 투자한 자금만 해도 근 300만 위안에 달하며 전업일군도 7명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일전에 장춘에서 있은 전국업무시합에서 이 병리과에서는 전성의 유일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지금 이 병리과의 진단기술수준은 전시에서 앞서가고 있으며 전성의 일류수준에 도달했다. 이 보건원의 부과주임 한영준(조선족)주임의사는 ”김경호주임이 이 병원으로 조동해오기전에는 다른 병원원에 가서 병리진단을 했지만 지금은 다른 병원에서 우리병원에 와서 병리진단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론연구에도 심혈을 쏟으며 다 년래 20여 편의 논문을 국가급 및 성급 간행물에 발표하였으며, 시과학기술진보 2등상도 2차 수상했다. 특히 60만자에 달하는 그의 저서 '乳腺肿瘤诊治'는 흑룡강과학기술출판사에서 정식 출판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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