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흔히 권력자나 재력가는 사후에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호화분묘를 조성하는 것을 본다. 죽은 뒤에도 자신의 권세와 재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좁은 국토가 묘지로 뒤덮이고, 제멋대로 석물(石物)까지 차려 놓은 것을 한탄하면서도 국가나 사회의 지도자는 자신과는 별개의 문제로 여길 뿐이다.
그런데, 2010년 1월 12일 한창 건설 중인 세종시에 의미 있는 시설이 하나 준공되었다. 장례문화센터, 총 500억 원을 들여 12년 만에 완공 기부된 것이다. 신설하는 새 도시에 가장 먼저 완공된 시설이다.
“나라가 무덤으로 덮여 가는 것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내가 죽으면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
한 기업가의 뜻 깊은 유언이 빛을 낸 것이다.
그런데 이 시설에는 그보다 더 큰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장례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열어준 것이고, 둘째는 기업가의 사회 환원의 정신이 실현된 것이다.
1998년 8월 선경그룹의 최종현(崔鍾賢) 회장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사회에 가장 큰 공헌이 되는 일을 한 것이다.
그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헬기를 타고 다닐 때 산지 곳곳에 무덤들이 들어찬 것을 보고서였다. 땅은 작고 묘지는 해마다 늘어난다는 것은 국토가 작은 나라로서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에 오랜 관습인 매장문화를 화장문화로 바꾸는 것이 대안이며, 이것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자신부터 실천하겠다며 화장할 것과 화장시설을 건립할 것을 유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화장시설은 혐오시설이라는 인식 때문에 부지 마련이 어려워 9년이나 걸렸다. 아들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07년에야 현재의 터를 확보하고, 2년여의 공사로 장례문화센터를 완공했다. 총 36만㎡의 은하수공원 안에 조성한 이 시설은 화장로 10기의 화장장과 2만 1442기를 수용하는 납골 시설 봉안당과, 빈소와 접객실 각 10개에 2개의 영결식장을 갖춘 장례식장, 그밖에 홍보관과 편의 시설들을 갖추었다.
그리고 시설은 분진과 냄새와 매연을 처리한 무공해 첨단 시스템으로 설치했다. 또한 주변 은하수공원에는 수목장, 잔디장, 화초장 등 자연장 부지를 마련하고, 시민들이 휴식하며 즐길 수 있는 공원 시설까지 갖춰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자연과 시설 속에서 함께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화장화만이 아니라, 장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게까지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화장률은 1970년에 10.7%, 1991년에 17.8%밖에 안 되었다. 1998년에 27%, 2001년에는 38.3%가 되고, 2005년에 52.6%로 처음으로 매장을 앞섰다. 2009년은 65%로 추정되는데, 이와 같은 화장의 급증 현상은 1998년 최종현 회장의 선각적인 화장 유언과 솔선수범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이제는 유골 처리를 생각할 때다. 납골묘는 임기응변일 뿐이다. 호화 납골당은 분묘보다 도리어 더 많은 폐해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다행히 수목장과 잔디장 같은 자연장이 늘고 있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산에 안치한 최종현 회장의 유골도 10주기를 앞둔 지난해에 가족들이 수목장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화장에 이은 또 하나의 선구적인 수범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장례(葬禮)는 어느 후손이나 해야 할 일이다. 죽음은 피할 수가 없지만, 장례는 모시는 사람이 뜻대로 할 수 있다. 이제는 장례의 화장문화화(火葬文化化)뿐만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가 각기 별세계로 서로 격리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우리의 인식과 삶을 바꾸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세상은 지도자가 이끈다. 그러나 좋은 사회는 선각적인 지도자가 만든다. 장례문화센터의 개원은 그런 세상을 만드는 변화의 한 시작이다. 최종현 회장과 같은 선각적 지도자가 자꾸 나오고, 이런 시설이 계속 설치되어야 한다.
그의 아들 최태원이 “이 장례문화센터가 우리 사회의 장례문화를 개선해 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시민들의 영원한 행복안식처가 되기를 기원”한다는 헌납의 말처럼, 이런 일들이 연달아서 그렇게 된 세상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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