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강준용' 한국문단에 통렬한 일침을 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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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강준용' 한국문단에 통렬한 일침을 가하다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1.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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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미쳤다 하겠지만 국내 유명작가를 보라, 문학사에 남을 작품이 있는가”

영양 출신으로 작가주의 외길 걷는 소설가 강준용

문학에 절박한 그 뭐가 없어… 작품들 보면 다 거기서 거기

직업으로서 독자에 빵 구걸… 자아성취 작가정신과 거리

유력 문학인들이 애독자 클럽을 만들어 지지할 정도로 고매한 작가정신을 소유했지만 회비를 못내 한국문협 회원에서 제명된 소설가 강준용씨가 문학이 문인을 위해 존재하는 한국문단의 ‘속물성’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어째, 광인 같기도 하고 꼭 아이 같기도 하다. 소설이 없었다면 얼마나 ‘찬밥신세’였을까. 우리나라 구조상 ‘왕따인생’으로 저물었을 것 같다.

예순 지척이지만 아직 독신이다. 다 문학 때문이다. 1986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지금까지 3권의 장편소설을 포함, 30여년간 90여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어떤 단편은 2년을 주물러 발표하기도 했다.

봐주는 사람도 없다. 흡사 ‘호작질’ 같은 문학이었다. 오랫동안 소설가이면서도 소설가 취급도 못받았다. 제도권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를 포함, 모든 인연과 거리를 뒀다. 우리 언론도 그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언론용 작가’가 아니었다.

그런데 2006년 그에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소설가 윤정모, 시인 감태준, 문학평론가 구인환(서울대)·장경렬(서울대)·방민호(서울대)·이태동(서강대) 등 유력 문학인이 그의 초인적 문학정신을 지켜주기 위해 애독자 클럽인 ‘초설회’의 회원이 된 것이다.

초설(草雪)은 그의 아호. 일반 독자가 아니라 프로 문인들이 자청해 무명작가를 위해 뭉쳤다니. 짠한 일이었다. 우리 문단사에선 유례를 찾기 힘든 쇼킹한 뉴스였다. 처세술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한국문학에서 그는 참 독보적이면서도 기이하다.

강준용(59).

여태껏 원고료만 갖고 버틴다. 문예지조차 그에게 원고청탁을 거의 하지 않았 지만 그는 생계를 위한 별도의 직업을 갖지 않았다. 굶어죽을 것 같으면 빈병을 팔아서 라면 등으로 연명했다. 아프면 큰 돈이 들어간다면서 단전호흡으로 버텼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면서 작품 이외는  일체의 잡행(雜行)을 하지 않았다. 93년 우리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장편소설 ‘스콜’이 나오기까지 3년 동안 노숙인보다 더 비참한 생활을 자청했다.

2005년 두만강 최상류마을 ‘숭선(崇善)’을 세상에 알렸다. 그에게 반한 중국 조선족작가들도 기꺼이 그의 최고 단편소설 중 하나인 ‘숭선에서’를 알리는 안내판까지 만들어줬다. 작가와 작품이 일치해 보이는 작가였다.

지난주 그가 인터뷰를 위해 영남일보 6층 편집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초근목피도 불사하고 30여년 90여 작품을 토해낸 우리 문단의 이단아, 강준용씨가 “예술은 현실에 무릎 꿇을 수 없다”면서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요즘 몸이 말이 아니다.

곧 쓰러질 것 같다. 신장 160㎝에 체중 40㎏ 남짓. 묵정밭처럼 변한 머리카락, 봉두난발(蓬頭亂髮)을 너머 귀발(鬼髮)같다. 몸 어느 곳을 훑어봐도‘사회적인 기색’은 감지되지 않는다. 치아는 영양 부족으로 거의 잇몸을 벗어났다. 치근이 약해 식사도 잘 못한다.

사실 기자는 소설가 강준용을 두 번째로 본다. 7년전쯤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세월이 좀 흘렀다. 지난 19일 오후 창밖의 빗줄기를 보면서 갑자기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했다. 뭔가 통한 걸까.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초설회 김혜숙 회장이었다.

솔직히 그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지금 우리 문단은 문인이 문학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문학이 문인을 위해 존재하는 형국이다. 그러니 작품다운 작품이 나오기 힘든 상황. 상업적 작품만 득세한다. 유명해지기 위해 힘 있는 문인에게 줄을 댄다. 그는 그런 문단의 ‘속물성’에 환멸을 느끼고 경기도 의정부의 수락산으로 잠적해버렸다.
 
◆ 우리 문단 맘껏 패다

- 30년 가까이 문학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 문단을 실컷 패도 될 자격이 있는 것 같다.

“다들 작가정신과 직업정신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직업정신을 작가정신으로 착각한다. 대다수 작가는 문학이 취미이며, 생활이고 직업이다. 그러니 자연 돈 벌고 명예를 얻고 싶어한다. 하지만 순수한 작가정신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

-그럼, 문학예술의 본질은 뭔가.

“문학은 한 개인이 문자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사적인 일이다. 사람이 주위에 몰려들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가는 창작할 뿐이지 그 이상 기대해서는 안될 일이다. 문학예술은 나 혼자의 투쟁이며, 독자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독자는 문학예술인들의 일관된 사고를 이탈하게 하는 위험요소다. 독자는 만드는 게 아니고 몰래 오는 것이다. 독자한테 빵을 얻어먹겠다는 판단은 수치다. 빵과 찬사가 온다고 문학예술이 진전되는 것도 아니다. 남이 나를 알아준다고 뭐가 좋은가. 발표야 되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다. 필요하면 누군가 발표를 하라고 청탁이 올 거고…”

- 문학도 좋은 것과 나쁜 게 있다고 보나.

“문학과 문학예술이 있다. 문학은 글 재간 있는 분이 직업적으로 남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고 대가를 응당 바란다. 문학예술은 남을 위한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문학인은 독자가 필요하고 명예와 부를 원하나 문학예술인은 오직 자아성취뿐이다.”

◆한국문협에서도 제명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인가.

“아니다. 내가 회비를 못 내니 제명 당했다. 맞는 처사인 것 같지만 틀린 처사일 수도 있다. 형편이 되면 회원이고 아니면 쫓아내니….”

-요즘 스타가 되려고 안달인 작가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진정한 작가는 그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름 팔러다니는 작가는 반짝하는 유행을 베끼다 사라진다. 그러니 작품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이름 가리면 다 비슷하다. 문학에 절박한 그 뭐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이상, 이효석, 김유정 등은 유명을 위해 뛰지 않았다. 그냥 창작욕에 빠져 평생을 망가지듯이 살다갔다. 그들의 일상은 너무나 비참했지만 그의 문학만은 너무나 빛났다.”

- 전업작가로 버티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문예진흥기금같은 걸 지원해준다지만 몇 명이나 그런 혜택을 받겠나.

“먹고살기 힘들면 백이면 백, 다 밥한테 진다. 그만큼 생계문제는 저승사자보다 무섭다. 나는 처음부터 죽기를 각오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겨우 올 수 있었다. 솔직히 부업을 가지면 제대로 된 문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상당수 문예지가 등단을 미끼로 자기 배를 불리고 있는 것 같다.

“현재 국내 문예지가 400여종에 육박한다. 그 중 5~6개를 빼고 나머지는 문학 갖고 장사를 한다. 일정 부수의 책과 발전기금을 내면 언제라도 등단할 수 있다. 문예지가 점점 브로커로 전락하고 있다. 문단 실정에 어두운 올챙이 문학인이 유명 문인의 하수인으로 전락해간다. 수준 이하의 작품을 포장해대는 적지않은 평론가들의 작태와 유치한 글을 써서 문학작품이라고 자찬하는 수많은 문인들, 출판사의 마케팅전략에 의해 베스트셀러로 둔갑한 작품들이 한국문학 대표 작품으로 변질하는 것에 비애를 느꼈다. 그게 역겨워서 미련없이 수락산으로 잠적해버렸다.”

◆ 삼류는 자기가 삼류인지 모른다

- 왜 정면으로 싸우지 않았는가. 결국 기존 문학한테 패배해 도망친 것 아닌가. 당신도 폼을 내고 싶은데 문단이 안받아줄 것 같으니 스스로 유폐생활을 한 것 같다.

“문단을 거부한 거지 내 문학을 버린 게 아니다. 수락산에 들어가서 문학과 진검승부를 벌이려고 했다. 작품이 좋으면 지면은 반드시 온다. 작품이 좋지 않으면 고만고만한 작가들끼리 패거리를 지어 다닌다.”

-삼류문인들은 스스로 자기가 삼류인지 모르는 것 같다.

“고급독자가 되어도 충분할 사람들이 먹고살 만하니까 문인 자리까지 넘겨다 본 것이다. 아직 문인은 사장보다 더 격조있고 폼이 난다. 그래서 돈을 주고서라도 등단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한국문단의 고질병은 고급독자가 되어야 할 분들이 다 문인이 돼버린 것이다. 초설회 김혜숙 회장을 보라. 그녀같은 사람이 문학을 해야 된다. 그런데 김 회장은 아니다. 자신은 좋은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는 독자로 남겠다고 했다. 이래야 한국문학이 세계를 움직인다.”

-초설회로부터 금전도 지원받나.

“내 생계와 관련 일체의 도움을 거부했다. 그래서 초설회 정기모임에도 안 나간다. 단지 내 작품집 발간과 관련해서는 도움을 당당하게 받는다. 굶어죽는 것, 하나도 겁나지 않는다. 수락산 시절 어떤 분이 그러더라. 강준용이 아사해야 한국문학이 정신차린다고. 지금도 내 소원은 굶어죽는 것이다.”

◆ 고급독자가 고급문학 만든다

-고급독자가 고급문학을 만든다고 믿는가.

“좋은 독자가 없으면 음모가 생긴다. 명작보다 졸작이 더 득세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건 문학이 아니고 정치다. 다행히 조금씩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특정인이 특정문학을 좌지우지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온라인 문학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좋은 독자와 언론이 좋은 작가를 선별하려고 한다.”

- 언론의 폐단은 뭐라고 보는가.

“신문이야 독자들에게 빨리 어필되는 유명한 작가에게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누가 강준용이를 언급하겠나.”

- 국내 유명 작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겉은 문학적인 것 같은데 실은 별로다. 나보고 미쳤다고 하겠지만 그들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라. 한국문학사에 남을 작품이 거의 없다. 등단 초반기에는 안 그랬겠지만 결국 출판계의 상혼과 맞물려 작품이 양산된 측면도 있다. 생계형 삼류가수와 목숨 건 뮤지션은 감이 다르다. 그걸 독자가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알겠나. 그냥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는 수준의 문학에 일반 독자가 놀아나고 있다. 유명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진정 당신을 위해 문학했는지를 말이다.”

-문학평론가들에게 할 말은 없는가.

“그들은 작품과 작가를 동시에 봐야 한다. 작품만 보고 평론을 쓰면 그건 좋은 독후감 수준밖에 안된다. 중앙과 지방 구분없이 대한민국 모든 작품을 다 읽고 그들의 삶에 객관적인 애정을 가져야 된다. 그냥 유명 문예지에 발표된 거, 누가 좋다고 하는 것만 갖고 평론 쓰면 그건 한국문학 죽이는 처사다.”

◆ 강준용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

-초설이란 아호는 누가 주었는가.

“진짜로 소설을 써 보면 글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참 신기하다. 글자들이 개울물처럼 흘러가고 뭔가에 부딪히며 여울을 일으키고 깊은 물에 들며 소리없이 움직인다. 20대 초반이었다. 눈 속에서 피어오른 파란 싹을 보았다. 그때 초설(草雪)이란 말이 생각나 내 아호로 정해버렸다. 눈속 새싹같은 문학을 하겠다는 각오다.”

- 30여년 90여작품에서 뭘 말하려고 했는가.

“소외된 자들의 인간 찾기 스토리다. 돈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진정 사람이 승리하는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양심 갖고 못산다고 하는데 나는 양심 갖고 사는 문학을 추구했다. 어떻게 문학이 자본에 고개를 숙일 수 있나. 고개 숙이는 건 예술이 아니다. 목숨 건 예술이라야 고개 숙이며 사는 소시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현실에 고개 숙이려면 빨리 죽는 게 낫다.”

초설회 홈페이지=http://cs.jo.st

◆ 강준용=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6년 습작기를 거쳐 86년 월간문학으로 문단에 나왔다. 93년 장편소설 ‘스콜’(훈민정음 간)과 소설집 ‘오색줄무늬 왕사탕’, 이어 96년 장편소설 ‘천재의 울음’, 2001년 ‘별나라를 지나는 소풍’, 이어 2006년 결성된 강준용 애독자 클럽인 초설회의 도움으로 2007년 소설집 ‘숭선에서’(이유 간)가 연이어 나온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두만강 최상류 마을 숭선의 존재를 알렸으며, 그 덕분에 조선족 작가들이 숭선 마을에 작품 안내판을 설치해준다.‘숭선에서’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충실한 붉은여우(냉혹한 현실)한테 이용당한 주인공이 두만강 최상류 마을인 숭선마을로 가서 이상향을 찾아 헤매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의 작품은 현재 일반 독자보다 전문 문학인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25년 이상 칩거했던 수락산을 떠나 3년전 경기도 문산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여전히 낭인으로 산다. 영남일보 이춘호기자/  제공=초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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