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상
드디어 비는 멎는다
구름은 서서히 흩어지고
달이 얼굴을 내민다
달은 우에서도 아래에서도
살짝 웃으면서 서성이고
그 중간에는 봇나무 한그루가 처연히 서있다
“진시명월한시관”(秦時明月漢時關)이라더니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툴때
항우와 류방이 어이하여 형제가 원쑤로 되였던가
달은 그대로 진(秦)나라때의 달
구름과 봇나무와 나는
어느때의 구름과 봇나무와 나였을까
스치는 바람에
바람보다 더 가벼운 꽃향기
나의 마음은 설레인다
보타산(普陀山) 인상
섬은
지성과 신앙과 은절한 기탁으로 무져진 산
산은 상서러운 구름과 안개에 휘감긴다
바다를 바탕으로
산을 기탁으로
자욱한 구름과 안개속에 절은 우뚝 솟아있다
향객(香客)들은 보살(菩薩)과 함께
마음을 맞추고
정성어린 언약을 주고받는다
보살님을 용케하려면
진정이야한다
줄줄알아야한다
덕을 쌓고
선(善)해야 하고
또 부단히 터득해야한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톺아 오르고
신고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합장(合掌)하고
절 올리며
제일 좋기는 두눈을 지긋히 감는다
마음이 조용해야하고
정신이 집중되여하며
천만에 숨소리를 죽여야한다
한 시인이 가르치기를
꼭 세번은 와야한단다
그래야만 모든 액문을 뛰여넘을수 있다한다
결 별
부르하통하강변에서
그번의 만남은
생동하기가 너무나 심각하였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모두 기억이 될것이다
출렁이는 강물 따라
날아예는 물새 따라
세월은 쉬임없이 흘러가는데
적막강산이나
조잡한 인간세상이나
별로 흔적은 남기지 않는다
우주에서 쌀알같이 조그만 지구
우주에서 개미같이 미소(微小)한 인간
천지개벽후이면 또 서서히 등장한다
고향의 태양
하늘의 먼 한끝에서
마차 한대가
아침부터 굴러온다
고향의 태양이
타향을 비추면서
친절을 베푼다
동쪽으로 북쪽으로
어머니는 집에서
창문을 활짝 제쳐놓으신다
그다음부터
나는 어디를 가나
고향의 그 태양을 볼수있다
그 따스함은
영원히 나와 함께하면서
항상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혹 시
별무리들은 졸고 있는데
호수물은 끓고 있다
옛날옛적의 시인이 문득 나타나
리태백의 시를 읊고 있다
억양이 연변맛도 아니고
한국의 맛도 조선의 맛도 모두 아니다
중국의 맛도 아닌데
적어도 당대의 중국맛은 아니다
혹시
그리고 혹시 또 그래서 혹시일까
령은사(灵隐寺)
이곳이 바로
유명한 천년의 고찰 령은사였구나
황혼무렵
상스러운 경읽는 소리에
향이 피여오르는 연기가 자욱하다
나는 늦게나마
여기로 와서 배알하게 된다
날이 저물때야 향불을 올리고
은은한 소원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서자호(西子湖)에서
효험이 서서히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산문이 닫히려할 무렵이다
스님들도 퇴근할 무렵이다
부처님도 쉬려할 무렵이다
나는 고집스럽게 우뚝 서서
이맘때 이곳의
특유한 성스러움과
장엄(壯嚴)함을 령혼으로 느껴본다
석양아래
조박초(趙朴初)*선생의 굴직한 휘호가
금빛으로 번쩍인다
과연 이 절은
한없이 광대무변한 대웅보전(大雄寶殿)이로다
별다른 고독
방금 고향의 고독에서 헤쳐나와
금방 또 다시 타향의 고독으로 말려든다
해녕(海寧)의 밤하늘에 떠 있는 달님아
어이하여 서지마(徐志摩) 의 시처럼 이슬이 맺혔을까
와당탕 거센 진동 울리는 전당강(錢塘江)의 파도소리
이맘때면
시공의 테널을 뚫고 나가는 광음(光陰) 처럼
추석의 밤을 랑만과 허무로 현시한다
혹시는
력사의 어느 한 단락을 재현시키는것이 아닐까
천군만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달리는
싸움터마냥 여직 승부를 가르지 못한다
야밤에 파도소리 듣고
백주에는 조수가 구을러가는 장관(壮观)을 지키면서
마음은 쪽배처럼
우주의 조용한 곳에서 기묘하게 대안(彼岸)으로 건네간다
방불히 어디에서 본듯이
방불히 타향에서 고향의 친지를 만난듯이
모든것은 이처럼 례사롭고 탄연하고 자연스럽다
가슴이 오래간만에 심하게 들뛰더니
문득
디지털카메라가 의미깊은 춘추를 렌즈에 담아넣는다
고향의 어느 한 번 월식에 관하여
고로한 전설에 의하면
멀고 먼 옛날에
큰 하늘개(天狗) 한마리가
종내 굶주림을 못이겨
달을 떡으로 간주하고
그만 넝큼 한입에 삼켜버렸다한다
그래서
온 하늘이 어두워졌고
구름도 종전의 풍채를 잃어버리고
온 누리에
몽환만이 흐느적거리며 떠돌아다녔다한다
별들도
이왕의 빛을 잃고
오로지
긴 꼬리를 질질 끌면서
륙정산(六顶山)뒤로
줄행랑을 놓는다
하늘개의 수명은
왜 이다지도 길었던지
지금까지도
가끔씩 뛰쳐나와
옛오동(敖东) 황성터의 밤하늘을 종힁하며
으르릉거리고 왕왕 짖어댄다
물론
달님의 생명력도 엄청나게 끈질기다
하늘개에게 수없이 먹히워도
용케
오늘까지 예쁘장하게 비쳐낸다
춘절전후
섣달에 들어서면
향진과 촌마을의 그림자는
휘날리는 눈발에 장식되여
동년의 애어린 기대에서 응고 된다
하루 밤사이에
마술마냥 온세상을 뒤덮은 흰눈은
성결(聖潔)한 동화마냥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설이다
고향마을에서 친정(親情)으로 꼰 엿을 녹이면서
기나긴 한 동삼을 회상한다
한살 더먹었으면
한해의 동경(憧憬)이 많아지고
미래에 관한 퀴즈의 답이 하나 더 알려진다
붉은 초롱불이
집집의 울안에서 빛을 뿜으니
애들의 놀음에서 밝은 새해가 보인다
점차
폭죽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하더니
설기분이 공기속에서 늙지 않는 세월을 로출한다
금방
설전 설후의 한가로운 나날들이 줄지어 지나가더니
설후 설전의 다망한 나날들이 또다시 줄지어 이어진다
봄날에 관한 어떤 화제
화제(話題)는
어쩌면 길고 또 길고
어쩌면 많고 또 많다
남방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떼처럼
하늘의 천막을 서서히 가위질하여
우주는 류성우(流星雨)의 전설을 퍼붓는다
민들레의 상상
진달래의 화창
모두가 아침해처럼 하늘끝에서 솟아오른다
화제는 바로 이렇게 지속되고
계절은 바로 이렇게 련결되고
스토리는 바로 이렇게 시공간의 륜곽을 그려낸다
한송이의 장미
한잔의 와인
한번의 의외로운 스침
어떤 가능함과 불가능함을 위하여
혹은 어떤 불가능함과 가능함을 위하여
울고 웃고 간혹 웃고 운다
그런후이면
총망한 모습으로
그 울퉁불퉁하게 험한 화제(话题)를 따라 방랑한다
중원에서의 해후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던 기반(棋盘)
중원(中原)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거창한 초하(楚河)와 한계(汉界)를 사이 두고
우리는 기약없이 만난다
당신은 대안(对岸)에 서있는데
바람결에 나붓기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형양(荥阳)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름대로 나들면서
력사의 어느 한 단락의 사랑을 려과(滤过)해낸다
리상은(李商隐)의 너무나 많은 재간을 이어받았고
류우석(刘禹锡)의 천고에 전해지는 시구를 터득하였거늘
담담한 눈길에는 당송(唐宋)의 완약한 운치가 비껴 있어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경전적인 예쁨이 반짝인다
나는 오로지 묵묵히 그대를 지켜보면서
오랜 옛적의 순진함이 9월의 하늘로 탈바꿈하여
제 멋대로
진주같이 령롱한 비방울을 뿌려준다고 생각해본다
맑은 렌즈는 서서히 초점을 맞추면서
경치의 깊은 배경에 따라 머나먼 창상(沧桑)을 그려보고
생긋이 웃는 한 찰나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 풍경을 마음속 깊이 새겨넣는다
로신 생가
삼미서당(三味書屋)에서 백초원(百草園)까지
불과 200메터 가량의 거리
이렇게 짧은 길에서
선생은 어이하여 그렇게 많은 독자들을
감탄케하는 글발들을 쓰셨을까
그래서 소문이 자자한 백초원도
사실은 채소전에 불과
이렇게 례사로운 곳에서도
선생은 어이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상상할수 있게 하였단말인가
삼미서당은 그래도 꽤나 특별한 처소(處所)여서
분명한 강남의 전형적인 서당
단 <<조(早)>>자가 뜻하는 의미로만도
당년 선생의 선생은 얼마나 엄하였으며
애어린 선생은 얼마나 각고하였는가를 알겠다
문앞의 내가에는
쪽배가 종용히 머물러 있어
마치 선생이 먼길을 떠나시려는것처럼
아니면 선생이 먼곳에 돌아오시는것처럼
소리 없이 기나긴 기대를 걸고 있다
문화
정신
그리고 사상은
이렇게 여기에서 일떠서고 진흥하여
방황(彷徨)에서 헤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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