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러싱교회 아카시나무
대상│장복자(복영미)(미국)
이민 1번지, 훌러싱교회
백 살 넘으신 아카시나무가 있다
닭장 아파트 6층 창문까지 넘실넘실 아카시향기 풍기는 나무는
그 키만큼 품도 넉넉하시다
교회에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신
군대시절 금성보다 빛나는 별이 두 개였다는 슈 리페어 박사장
몇 백 명 거느린 대기업 하청 부품공장을 운영했다는 스카이클리너
김 사장
남대문시장 골목 수북이 쌓은 속 옷 다이위에서 브래지어를 차고
골라골라 외쳤다는 델리가계 하사장
예배 마치고 하나님 품 보다 넓은 아카시나무 그늘에 둘러 앉아
과거와 현재를 늘였다 줄였다한다
지금은 내 이마처럼 구겨진 손님 셔츠나 펴고 있는 머슴이지
만 왕년에는…….
별 두 개씩이나 따서 어깨에 달아본 적 있는 눔 나와 보라구해
아카시 꽃처럼 살짝살짝 부풀린 이야기 주렁주렁 꾀고 있는 나무는
수천 개 귀를 팔랑거리며 즐겁게 들어주신다
어릴 적 아버지의 등인 양 온 몸을 우듬지에 기대고 있는 정 집사
허기를 채우려 한주먹씩 따먹던 아카시 꽃, 입 안 가득 군침이 돈다
3년 전 마련한 개나리 울타리 집 은행의 숏 세일로 넘어가고 역이민을
고민하는 최 집사
나무는 긴 손가락으로 그들의 머리칼 초록물 드린다
입 꾹 다물고 있던 팽 집사 자장면이나 먹으러가자며 팽하니 일어선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테이블을 돌리며 단무지와 양파에 식초를 뿌리던 마 집사
마 이렇다 저렇다 캐 사도 여가 맘 편 한기라
마누라한테 출근 한다 캐놓고 산이다 공원이다 양복 빼입고 헤매는
오십 줄의 백수들
달랑 두 식구에도 김치냉장고 들여놔야 체면이 서는
아파트 팽수가 인격 팽수가 되는 고국보다야
우리 모도 사장님 아이가
자장면 곱 베기 한 사발씩 시켜 묵고 쪼매만 견뎌 보재이
수타면처럼 쫄깃쫄깃하고 면 위에 듬뿍 얹은 소스처럼 진한 정을
비빈다
고추짬뽕 국물 보다 매운 땀 흘리며 뿌리 옮긴 삶
바람이 불 때마다 잎새는 흔들리나
뿌리는 깊어진다
오늘도 예배당 문을 나서는 박 장로 김 권사 하 집사…….
울며 쓰러지는 아직도 정정하신
아버지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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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금
우수상│고정숙(독일)
진득한 거미줄 쳐진
작은 손 펴며
눈부신 햇살만 찾아오길 바랐으나
병든 벌레 찢어진 꽃잎들이
걸려들었다.
거미줄로 만족할 수 없던 손은 자라면서
그물로 만들었다
황금빛 대어를 낚아
병약했던 손의 기억을 지워
누구에게나 빛나는 손을 보여주고 싶었다
빈번해지는 빈 그물은
매달릴수록 칼날
손바닥을 활짝 펴서
빈 나뭇가지들을 떨어내
가만히 모아 준 주먹
씨앗인가, 봉오리인가
줄기 같은 팔을 따라가니
우뚝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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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 가로수 길의 봄 날
우수상│송순례(미국)
배 꽃처럼 하얀 봄 꽃 나무들이
가로수로 서 있는 노스브룩* 한 학교 뒤에
한적한 세 갈래 길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평소에는 붐비지 않아도
꼭 그때 햇살이라도 비치는 오후가 되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그 거리
그리고 어디서인지 나타난
연두색 조끼를 걸친 경찰관 아저씨가
그 중앙에 신호등처럼 서 있는 것도
사람들은 잘 모른다
맨 처음 연두 조끼를 발견한 내 차는
그가 편 다섯 손가락을 보고
멀찍이 차를 멈춘다
가고 서는 것에 잘 길들여진
한 마리 암소처럼 마음에 들었는지
경찰관은 몸을 돌려
맞은편서 오던 차를 마저 세운다
그리곤 숨겨놨던 갈고리를 꺼내 듯
집게와 장지 손가락을 들어
나머지 한 골목을 향해 까닥 거린다
그 갈고리에 걸린 수십 대의 차들이
먹이를 찾아 가는 검은 개미떼처럼
줄지어 흘러나온다
개미집에 숨어 있던 모든 개미들이 나오 듯
따듯한 봄 햇살을 등줄기로 받으며
앞서 간 개미의 꽁무니를 쫒아
부지런히 길을 돌아서 가는 개미떼의 행렬
공중을 짧게 긁어 내는
저 손가락들 만큼
가고 멈추는 생의 분별력을
우리 삶에 가질 수 있다면
그때 다시 연두 조끼가
내 차를 향해 갈고리를 던진다
이랴, 소리를 들은 암소의 다리는
곧게 뻗은 흰 꽃 가로수 길을 향해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햇살이 흰 꽂들을 살살 떨어뜨리는 봄날에
*노스브룩 : 미국 일리노이주 북부 지역에 있는 마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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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궈리*나무
가작│김학성(중국)
때론 사과의 흉내를 내어보지만
때론 배의 흉내도 내어보지만
거울 속에 비친 너는 마냥
무엇인가 되려다 만 모습이다
갑옷처럼 두룬 껍질은
눈보라 천만리
뼛골 시린 그 사연 말해주는가?
이 고장의 산천에
알맞은 노래 지어 부르며
오명 가명 두멧길에
목마른 노을만 피고 지는데
번지 없는 구름의 유산을
운명의 보따리로 짊어진 채
모아산( ) 산자락에 우두커니로
아하, 가지마다 드리운
세월의 짐이 애처롭구나
*핑궈리 : 사과접수를 연변의 돌배나무에 접목하여 배육해 낸 신품종 과일. 70%가 배이고
30%가 사과의 성질이어서 ‘사과배’라 부른다. 연변이 원산지인 연변의 특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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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흠뻑 눈을 맞고 싶다
가작│김승현(스위스)
그날 쉬임없이 눈이 내리는
숲길로 들어섰다
스위스의 눈은 참으로 포근하다
흰 가운 걸친 나무들이
두 손 모두어 기도하고 있었다
아무도 드려다 볼 수 없는
눈부신 침묵의 시간
안으로 파도치는 불꽃에
내 걸음이 휘청 한다
그러나 나를 사로잡는 빛이 있다
천지가 고요하다
저 기도하는 나무처럼
내일의 비약을 꿈꾸는 새처럼
오늘 나도 흠뻑 눈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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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다림질 하다
가작│임의숙(미국)
도심지의 유리벽을 오르던 바람들이
하이웨이를 달려 산 등성이를 넘어온다
옥수수잎을 간지럼치는 잔잔한 바람결에
나무 밑등을 뒤흔드는 강풍이
이 길로 왔다가 사라지곤 하는데
세탁소는 바람의 정비소다
실타래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재봉틀은 찢기고 터진 바람의 흔적을
꿰매준다
밀리고 구겨진 셔츠 안에는
너울파도속에서 살았을 바람이
골 깊게 파고 앉아있다
위태로이 매달린 단추는 직원감원이라는
바람을 맞아 하루를 지탱해 내는지
언제 풀릴지 모르는 실밥을 쥐고 있다
청바지에서 턱시도의 검은나비까지
스팀 다리미에서 품어주는 수증기속에서
칼퀴를 닮은 남자의 손가락이 들어가
정직한 각을 잡아낸다
쓸어주고 다독이는 남자의 손마디에
바람은 얼룩진 멍을 지우는 것일까
희미하던 옷 주인의 얼굴이 보인다
남자는 바람의 정비공이다
팔목에 찍힌 그의 자격증이 수작업으로 오랜시간 바람을 다스린 증
거인 것
한 때 남산 아래에 살았다던 남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바람을 맞았다 했다
트르트 바람이 넘실거린다 옷걸이마다
남자는 상큼한 내일을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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