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최경자 글= 2011년 5월 28일에 재한동포연합총회는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필두이신 의암 손병희의 생가를 다녀왔다.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금암리 385-2번지에 위치한 그곳은 의암 손병희(1861-1922)선생이 태여 난 곳이다. 선생은 동학에 입문하여 1897년에는 동학(후에 천도교)의 3대 교주가 되었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필두로 거족적인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기독교, 불교, 대표들과 함께 3.1 운동을 영도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서 3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 1921년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서울 상춘원에서 요양하다 62세를 일기로 1922년 5월 19일에 순국하였다.
1861년 4월 8일에 충북 청원군 북이면 대주리(현 금암리)에서 청주옥 관아의 서리 손의조 공의 서자로 태여난 의암 손병희선생은 22세 때 동학에 입교하여 동학의 제2대 교조 해월최시형 선생의 신임을 얻어 수제자가 되었고, 동학혁명 때 북접의 통령으로 동학혁명군을 이끌고 남접하여 전봉준 선생과 논산에서 합세하여 공주 우금회 전투에서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1897년 12월 24일 교조로부터 교통을 이어받아 제3대 교조가 되었고, 1901년 일본을 거쳐 상해로 망명하여 해외문물을 접하고 개화에 주력하였다. 1905년 12월 1일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이용구 등 친일분자 62명을 출교조치하고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여 재정비하였다. 자손은 딸이 5명이고 셋째 사위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다.

의암 손병희는(孫秉熙)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상(1등급)추서. 묘소는 서울강북구 우이동(북한산 밑 봉황각 내)에 안장하였다.
의암 선생의 사상 :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간본위 중시."
몸 마음 영성의 교육론 : 심신교육과 삼성삼심(三性三心)의 영성교육을 잘 지키고 잃지 않으면 한울림의 형성에 이르고, 무량한 영서의 고양과 세계의 창조를 이루게 된다고 설파
자주독립정신 :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는 자주독립정신 주장


이날 재한동포연합총회 일행은 의암 손병희선생의 현충시설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제1순환로에 위치한 청주보훈 시설에도 다녀갔다.
2011년 5월 30일
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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