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은 말] "가족이 모여 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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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말] "가족이 모여 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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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김정금씨가 기자를 찾아 한 이야기입니다. 가족의 이산을 종말 짓고 싶다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본지는 지속적으로 동포들의 ‘하고 싶은 말’ 사연을 받습니다. 이메일로 글을 보내주시거나 전화로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ys048@hanamail.net . 전화: 010-9357-3368 편집자 주]

저는 흑룡강성 통화시에 사는 김정금입니다. 2008년 말 방문취업비자로 입국하여 체류중입니다. 1997년부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산의 고통이 언제면 막을 내릴 수 있겠는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1997년 저의 남편은 몇 년 동안만 고생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일념을 안고 거의 10만 위안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고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의 고생이 아니라 장장 1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고역이었습니다.

입국한지 얼마 안 되어 한국이 IMF경제위기에 닥쳐 돈 벌이는커녕 일도 못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안 되는 임금마저도 받지 못하고 두 아이의 공부 뒤 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거액의 빚만 잔뜩 지고 있어 막연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때 상해교통대학에 입학한 아들의 등록금은 또 다시 돈을 빌려서 내야 했습니다.

그 후 한국 경제가 점차 회복되면서 남편의 돈벌이도 시작 된 듯합니다. 워낙 부지런한 남편은 악착 같이 일하여 돈을 벌었습니다. 불법체류다 보니 숨을 죽이고 모든 것을 참으면서 옷이 소금이 되도록 일 하였습니다. 바라는 것은 오직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켜 출세시키고 가족이 쪼들리지 않고 여유롭게 살아갈 그날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벌었습니다.

몇 년 지나 빚도 갚고 아이들 교육비도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체불한 임금이 1천8백 만원, 그 돈만 다 받으면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자그마한 장사라도 하면서 살겠다고 체불한 임금을 독촉했습니다. 이것이 화를 불러올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신고라면 신고겠지만 밀고라 함이 더 가깝습니다. 단속에 걸려 2005년 3월에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집, 그립고 그리운 집에 돌아 왔건만 거액의 임금을 받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온 억울함에 가슴은 멍들어 있었습니다.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피땀으로 벌어놓은 1천8백만 임금 때문에 끙끙 속만 앓았습니다. 입국규제에 걸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다시 7만 위안이라는 돈을 내고 2007년도에 위명으로 입국하였습니다. 당연히 첫 일과가 체불한 임금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오야지는 전화번호도 바꾸고 연락이 닿지 않아 지금도 그 돈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일을 잊고 다시 벌어야지 하면서 거의 3년 동안 악착 같이 벌었습니다. 2008년에 제가 무연고 방문취업비자로 입국하여 우리 부부가 겨우 재결합하였는데 또 다시 운명은 우리를 희롱하듯 갈라놓았습니다. 지난해, 3년 만기가 되어 귀국하다가 위명이라는 것이 들통 났습니다. 그리하여 재입국이 불허되고 규제까지 걸렸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남편의 명의로 된 적금과 전세집이 있는데 본인이 없어 제동이 걸려 필요시 쓸 수도 없습니다.

불법체류로, 위명으로 한국에 있었다 해도 거의 12년을 모국에서 울며 웃으며 정을 가지고살아 온 사람입니다. 물로 불법체류, 위조여권이라는 위법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핍박에 못 이겨 양산에 올랐다"고 하지만 잘못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두 자식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재외동포비자로 한국을 드나들면서 사업하고 있습니다. 묻노니 저의 남편이 꼭 입국이 불허가 나고 규제까지 받아야 합니까?

90년대 초 제가 직접 목격한 일입니다. 저의 동네에 일본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녀가 일본 사람인걸 몰랐습니다. 일본이 패하여 돌아가지 못한 그녀는 중국 사람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하고 결혼까지 하여 자식 여럿 낳고 수 십 년을 살다가 일본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두 차례의 방문을 거쳐, 세 번째는 그 여인의 요구에 응하여 그 여인과 그 남편 가족까지 모두 일본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까지 저의 부모님들의 고향인 모국으로 오는 길이 너무 험난하고 너무 많이 에돌아 오고도 또 "입국규제", "입국불허"라는 죄 값까지 치르면서 가족의 고통스러운 이산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언제면 이런 역사가 종지부가 찍을까요? 너무나 안타깝고 속 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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