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자의 향수의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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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자의 향수의 시편
  • 송미자
  • 승인 2010.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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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산 툰

(1)

여기는 북위42°´41´ 동경 129°45´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리다가
우중충한 돌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서면
동서로 마주 앉은 병풍같은 산사이
동쪽기슭 핥으며 두만강이 북으로 흐르고
서남-서북으로 유연하게 드러누운 구릉사이에
동북쪽 천평벌모퉁이에
동쪽강기슭에
올망졸망 하얀 연기 피여 올리는 동네들과
남산에 덩실하게 앉은 꽤 큰 부락을 통털어
산 열어 만든 마을이라 일컫는다

(2)

산 너머 아스라이 뭇 산들이 옛날 같이 서있는
역사속의 고장이 명당으로 빛난 순간은 있었다
내 조상이 피땀으로 일궈낸 고장이여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한생을 이 땅에 고스란히 바쳤다
그 대가로 우리는 행복했던 응석둥이들이었다
수천의 반짝이는 눈빛은 하늘의 별을 무색케 했고
내리막 출근길 올리막 퇴근길은 씩씩한 스포츠 현장이였고
도라지 로인들 한복차림의 고운 맵시 선남선녀 울렸다
천당이 따로 있으랴 천사들의 락원 같던 고장
뭇신선들 부러워 구름 되여 거닐던 복 받은 고장
천혜의 고장에서 번민도 모르던 시절은 어디로 갔는가

학교운동장은 쓰레기장 되고 교실마다 텅텅 빈 건물
젊은이들 흩어지고 로인들 병마에 시달리고
남아있는 사람들 독품밀수에 휘감겨 투옥되고
입소문으로 들려오는 불길한 소식들에 얼어드는 가슴이다
수만의 겨레가 명줄을 걸고 운명을 맡겼던 고장
빛은 어디로 스며들고 기-인긴 터널속에 잠 자는가
은은히 들려오는 곡성(哭聲) 저주의 굿소리 같구나
오염된 강 피 썩은 내음
산속에 재빛 안개 자오록하다

아, 바늘귀구멍만큼 한 빛이라도 잡고 나오너라
나오지 못하면 매몰되는 현실은
력사가 아니다 옛말로 남지 않는다

(3)

문득
산을 둘러보면서 강을 굽어보면서
풍수의 오묘함을 찾아 인생을 묻는다

높은 산은 동서로 이마 맞대여 해의 잰걸음 화살 같고
길잖은 강은 남에서 북으로 도망가듯 하니
어찌 짧고 꺼꾸로 흐르는 삶이 숨가쁘지 아니할가

옛날 옛적 목숨 부지하려고 어둠속에 첫 괭이 꽂은 간도
도적농사로 연명하다가 이주의 발판이 돼버리고
쫓기우는 인생들 살길 찾아 광명 찾아
정동서숙에서 지핀 진리의 홰불도 지하에서 타올랐다
안중근의 사격련습장에 왜인의 발자국소리 어지럽더니
어둠속에 도적질 꾀하여 화학섬유팔프공장 만들어
백두의 삼림자원을 여기에서 노려 빼내려 했다
너의 것이냐 나의 것이냐
피흘린 싸움 거쳐 주인됐냐 했더니
8.2참안이 피비린내로 력사에 오점으로 새겨졌다.

(4)

그래도 미련이 력력한 고장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 하늘에 날으시는데
정처없는 이 발길은 고향하늘 등지고
어디론가 가야 함을 본의 아니라고
변명함이 구차하기만 하다
돌아오겠다고 약속도 했지만
허공에 그린 그림 같다

북경에서도 개산툰
청도에서도 개산툰
상해에서도 개산툰
서울에서도 개산툰
도꾜 뉴욕 호주에서도 개산툰
입에서 떨어질줄 모르는
그 이름은 진정 무엇이냐

동화될수 없는 피의 지겨움이라 하겠다
지겹지만 질기디 질긴 삶이라 하겠다



* 개산툰은 연변의 두만강변 작은 산간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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