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대평원을 가다
남한땅 크기의 대평원·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강 '아!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여'
이튿날 가목사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목사를 출발한 시각은 오전 6시 20분,
동강까지는 1200리, 버스로 5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거리이다. 여기서부터 삼강대평원(三江大平源)이 펼쳐지는데 삼강평원이란 송화강과 우수리강이 흑룡강과 만나는 지점의 넓디넓은 평원으로 1930년대에는 '북대황(北大黃)'이라 불리웠던 땅으로 중국 절경 24곳 중의 하나로 그 아름다운 풍경은 한번 보면 평생 그 기억에 남는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북대황(北大黃)'이란 만주땅 가장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넓디넓은 황무지라는 뜻인데, 지금은 개척을 하여 기름진 옥토로 전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주하고 물을 대어 농사를 짓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특히 조선족들이 이주하여 땅을 개간하여 비옥한 옥토로 만들었다고 한다. 남한땅 크기라니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이 아닌가. 거기다가 만주전역의 영토가 남북한 합친 넓이의 6배라니 이 또한 어마어마한 넓이 아닌가 말이다.
옥수수랑 콩, 감자, 수수 등이 끝이 보이지 않게 심어져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비어있거나 잡초로 무성해 버려져 있는 땅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었다. 넓은 벌판이 하늘과 맞닿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동강시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였다. 한 대의 승합차에 몸을 실었는데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삼강구’(三江口)다.
물론 가 보아서 알았지만 우리는 흑룡강을 따라왔으며 흑룡강을 만나러 왔기 때문에 강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 길이 동강시에서 외곽으로 뻗어난 길인데 바로 삼강구로 향하는 길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가로질러 고속도로같이 확 뚫린 길은 정말이지 벌판 속의 완전 한 일(一)자 길이었다. 땅이 넓기로 끝이 없는 북대황(北大荒)이 삼강평원으로 바뀌어 더욱 실감을 자아내게 했다. 넓디넓은 만주땅 동북쪽 귀퉁이에 또 이런 끝없는 벌판이 풀빛 홑이불 덮고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고 있었을까?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삼강구 가는 길.
삼강구란 와 보지 않고는 실감할 수 없는 끝없는 벌판도 벌판이지만 이제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강의 풍경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북태평양으로 흘러드는 세 강이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삼강공원에 도착했을 때, 이날따라 날씨는 더없이 맑았으나,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새롭게 조성한 공원의 운치는 이곳에도 신문명이 들어와 있음 또한 직감할 수 있었는데 하늘에 치솟아 있는 형상의 조각탑이었다. 소라고둥같이 나선형으로 휘감으며 설치미술같이 세워진 탑신은 인상적이었다.
강변언덕으로 갔는데 아, 정말이지 장관을 이루는 풍경이었다. 흘러오는 강의 상류마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디넓게 그 위 하늘도 드리워져 있었으며, 수평선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강 이쪽으로 눈을 돌리면, 북태평양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끝없는 수평선과 하늘이 드리워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대자연의 웅장함이 여기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한국에서 준비해 간 광개토대왕이 만주정벌때 펄럭였을 문양같은 ‘흑룡강 7천리를 가다’ 깃발을 펄럭이며 이곳 삼강구 하늘에 더욱 높이 펄럭였다.
삼강구에 도착한 일행 모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바다같이 넓디넓은 강이 이런 곳에 자리해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흑룡강은 만주땅 최북단에서 7천리를 흘러왔고 송화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하며 만주 땅 한복판 주요도시를 관통하며 수많은 날들을 흘러 와 우수리강과 함께 이곳에서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우수리강은 또 어떤가. 만주땅 동쪽 러시아 땅과의 경계를 두고 위로 흘러들어 이렇게 세 강이 만났으니 3중주의 화음 같기도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구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곳에까지 와 있는 감동같이 만주땅 최북동쪽 끄트머리에 와서 느끼는 심정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보고 얻은 기분 같았다.
강가에서 7∼8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는데 이 강에서 나는 고기를 잡아 경영하는 선상식당도 눈에 띄었으며, 빨간 포장을 한 유람선은 가이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저쪽 섬까지 손님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강 건너 그곳 섬에는 식당이 있어 유람선 타고 그 곳까지 가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풍류 그 자체였다.
아, 삼강구! 이곳까지 오기 위하여 /몇 날이 걸렸던가 /만주 땅을 한 바퀴 모두 돌아온 듯한 느낌 /거기다가 최북단 흑룡강 상류에서 /최하류인 이곳까지 와닿기 위해 열흘 넘게 /유랑해 온 시간들이 모두 모여 이제는 평평한 /물결로 비치고 있으니 장하도다 강이여 /내 살아온 삶의 깊이만큼 짙고 /내 살아온 삶의 폭만큼 여유롭게 /이제는 뒤 안 돌아보고 잔잔히 흘러가는 /저 강물결을 보라! / 흑룡강 송화강 우수리강 삼강(三江)이 /한몸으로 뭉쳐 서로 조금의 삐걱거림도 없이 /조화롭게 사랑하며 흘러가는구나 /강물 위에 정착한 저 배들 /지금은 쉬고 있는 저 배들 /저 배들이 꼼짝 않고 정박해 /이 강의 풍경 더하고 있고 보면 /빨간 모자 쓴 듯한 저 유람선 한 척 /강 한가운데 떠 있는 것은 /강 저쪽의 내 연인을 이쪽으로 /데려오기 위함일 게다
-서지월 詩 '삼강구 강변에서 부르는 노래' 전문

이날 따라 하늘은 왜 이리도 맑고 푸른지 강물은 흐르는 것 같지 않으면서 잔잔한 물살을 일으키며 왜 저리도 시퍼런지, 강 건너 초록의 벌판은 싱싱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으니 이 모든 풍경을 합쳐서 보면 정말이지 대자연의 신비가 숨쉬고 있는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도 불긴 했으나 우리 일행은 강 저쪽까지 계속 걸어가 보았다. 거기서 만난 것이 중국국경경계비였다.
좀전에는 새 한 마리가 나타나 발레를 하듯 강상 위 하늘에서 한참을 공중비행을 하더니 그 새가 사라진 풀숲에서 흰 양귀비꽃 한 송이를 발견했는데 누가 심어두고 간 것이 아니라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어느 여인이 수천년 혹은 수백년 떠돌며 강 건너지 못하고 이곳에서 오롯이 피어 오늘 나에게 처음 얼굴 내미는 것만 같았다. 거기다가 불어드는 바람에 자꾸 몸을 흔들어 보이며 '저를 데려가 줘요. 녜, 데려가 줘요. 어디든 데려가 줘요!' 이런 속삭임의 간절한 바램인 듯한 표정이었다. 이국만리에서 흰 양귀비꽃과 내가 만난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다 아닐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강물은 뒤 안 돌아보고 북태평양으로 흘러들겠지만 땅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정지해 있을 수밖에.
나는 저 강 건너 섬으로 가서 요기를 했으면 싶었으나 흑룡강 하류인 이곳에서 물고기 잡으며 살아간다는 소수민족인 허저족이 산다는 말을 들어왔기로 마침 우리 일행을 태워온 중국인 운전기사가 허저족마을로 데려주겠다고 해 식사도 그곳에 가서 하기로 했다. 만주땅 동북쪽 끄트머리에 왔으나 사실 가장 끄트머리인 무원까지는 5∼6시간을 더 가야 하니 사정상 더 이상 뻗어갈 수 없어 허저족마을로 가기로 했던 것이다.
걸어나오는데 광장에 붉은 옷 입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중국 전통의상을 하고 있었다. 김송죽선생님의 통역으로 일행이 그 여인과 막 기념촬영을 하려는데 누가 나타나더니 붙잡아 가듯 낚아채는 것이었다. 이 중국 여성은 사진을 찍는데 동참하려고 순순히 우리 곁에 왔는데, 알고 보니까 신혼여행을 온 신부였다. 이곳에서 친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차를 타고 가려는데 신부가 우리 일행과 합류하려던 순간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나는 신랑 되는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수인사를 했으나 재미난 해프닝이었다. 그 신부는 어디로 실려 갔을까. 그 신부를 태운 차량은 우리보다 먼저 삼강공원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어쩐지 순간의 흥분이 가라앉은 것처럼 허전한 느낌이었다. 한 마리 새를 놓쳐버린 것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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