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 상임대표이자 국회의원으로써
재외동포의 권익신장과 법적 지위 회복을 위해 헌신
"우리나라는 지구촌 200여개 나라 중 175개국에 진출한 700만의 해외한인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번번이 예산문제로 걸고 넘어져 해외한인의 권익신장과 법적 지위 회복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21세기 한반도와 세계평화 그리고 통일한국의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민소득이 2만 불에 육박하고, 국력은 세계10위권 대에 진입하였으며, UN 사무총장 배출국이자 G20 의장국입니다. 국회 5분 발언 때도 수차례 언급하였지만, 해외한인의 권익신장 과제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 김영진 의원 -
[중산층과 서민의 벗을 자처하는 김영진 의원은 민주화 운동권 출신으로 현재 민주당 최고 중진, 5선의원이다.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 후 16대 총선까지 내리 4선을 기록한 뒤 참여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4선 국회의원 직무기간 동안 농림위 한 곳에서만 줄곧 섬기면서 농어민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생활정치를 실현하였다. 현재는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KICA) 상임대표로 해외한인과 동포 등를 위한 의정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9월30일 오전,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소장과 소은선 연구실장이 의원 집무실을 방문하여 이루어졌다. 편집부]

곽재석 며칠 후 10월 5일이면 제4회 세계한인의 날을 맞게 됩니다. 2007년도 기념일 제정 당시 김영진 의원께서 상임대표로 계시는 W-KICA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영진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KICA)는 2007년 2월 175개국의 700만 해외한인의 권익실천을 위해 종교, 여야, 지역, 보수와 개혁을 초월해 창립되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W-KICA 창립 첫 해부터 이를 위해 범국민청원운동을 시행하였고, 국내외 동포 2만 여명이 참가한 청원서 제출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2007년 5월 정부의 승인을 얻고, 당해 10월5일 제1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올해로 제4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또한 W-KICA는 창립과 동시에 세계한인의 날 제정뿐 아니라 해외동포 참정권 부여에도 적극 기여하였습니다. 지금은 해외한인청 신설과 교포 3세, 4세들에게 대한 '국적 있는 교육' 지원체제 확립 등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구체적 입법 추진활동과 국민청원운동 전개 및 해외동포 권익실천 지원 변호인단 구성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곽재석 더불어 김영진 의원께서 교민청 추진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영진 교민청은 반드시 신설돼야 합니다. 과거 우리 정부는 어려운 30만 어민을 위해 수산청을 신설하여 그들의 권익을 대변한 바 있습니다. 그럴진대 소중하고 감사한 민족의 자산인 700만 재외동포들을 위한 교민청을 신설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만 제가 여기서 한 가지 수정하고 싶은 것은 '교민청'이라는 단어입니다. 교민이라는 단어는 일제가 사용했던 언어로 '곁불 쬐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로 저는 '해외한인청'이라는 말을 추천합니다.
최근 개정된 국적법에서 '복수국적' 허용과 관련하여 '복수'라는 단어도 본인의 적극 추천아래 변경된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종전에는 ‘이중국적’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지만, '이중'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 때문에 국민에게 관련법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었습니다. 이를 우려하여 복수라는 단어를 추천하였는데 그것이 관철된 것입니다.

김영진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인데요. 한편 우리나라 생활 속에서 여전히 일제의 시대의 유산으로 남은 언어들이 잔존하여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락민이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부락민은 백정 밑에 있는 계급을 가리키는 말로 일제가 조선의 마을들을 낮춰 부르기 위해 퍼뜨린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지방마을에서는 부락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을 촌장은 아침마다 마을회관의 확성기에 대고 "부락민 여러분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라는 말로 첫인사를 띄워요. 또 마을 어귀에 '00부락'이라는 글씨를 바위 위에 새겨놓은 곳도 있고요. 이러한 일제 식민지 언어를 제거하는 캠페인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교민'이라는 말을 지양하고 '해외한인'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곽재석 얼마 전 사할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영주귀국을 원하는 경우 귀국지원, 정착금, 주거지원, 직업훈련 등의 혜택을 부여 등을 골자로 한 "사할린 한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영진 저는 진작부터 사할린 동포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2008년부터 사할린을 방문해 왔습니다. 당시에는 사할린 동포의 이주와 지원에 관한 법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고국의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동포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꾸준히 국회사할린포럼, 한일기독의원연맹, 국가조찬기도회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해왔습니다. 바로 사할린동포지원특별법은 일제에 의해 러시아 남사할린 지역으로 강제동원되어 70년 동안 생명, 신체, 재산상의 피해를 받은 사람과 그 가족들의 생활안정과 권익보호 제도 마련을 위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곽재석 W-KICA는 한글보급운동, 역사 전통문화 교육운동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영진 민족정통성의 맥을 잇는 것은 언어, 문화, 생활습관 등이 중심추 역할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재외한인사회에서 이 세 가지 요소 모두 퇴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동포집단거주지역을 중심으로 해외한인센터를 하루빨리 건립해야 합니다. 이 센터 내에는 한글학교, 한국어방송국, 전통문화교육시설 등을 설치해야 하고요. 사할린 동포의 경우 구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CIS지역으로 흩어져 강제징용되었는데, 광복 후에도 조국으로부터 수 십년 간 외면 받아오면서 지금은 한민족의 민족성, 문화, 언어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할린 동포에 대한 최우선적 고려를 통한 집단 보상이 필요한 이유이고요. 또한 해외한인센터가 하루속히 건립되어 사할린동포와 고국 간 사랑방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센터 내 한인회가 사랑방으로써 고려인과 고국간 상호네트워킹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곽재석 최근 해외동포들에게 있어 참정권이 가장 큰 이슈입니다.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요.
김영진 만시지탄이지만 2009년 2월5일 국회의 재외동포 참정권 관련법이 마침내 통과되었습니다. 700만의 해외한인 가운데 영주권자, 주재원, 상사원, 유학생 등 240만 명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240만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대통령 당선을 좌우지 할 만한 권한을 해외한인들이 가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껏 딱 두 차례 정권교체를 하였는데, 김대중 대통령 당선 시 국민 1100만 명이 선거에 참여하였고 36만 표차로 승리를, 노무현 대통령은 57만 표차로 승리를 거두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두 차례 모두 신승이었습니다. 이를 보아도 참정권을 가진 240만 해외한인 무게를 감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향후 해외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겠고 앞다투어 해외한인의 권익을 대표하고자 할 것입니다.
곽재석 법안이 통과된 만큼 현재 재외국민선거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김영진 재외국민선거가 2012년 4월 총선부터 처음으로 실시됩니다. 이제 1년 반이 남은 상황에서 제도를 보완 설계하고 공정한 선거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안이 남아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사안은 재외선거인 등록과 거소투표라는 2회 방문절차와 공관이라는 공간적 제약이 초래하는 접근성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공관에서만 투표가 가능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어떠한 지역은 참정권 행사를 위해 이틀에 걸쳐 비행기 타고 와서 투표하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미주나 일본지역은 차치하고라도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지역 해외한인은 어떻겠습니까? 실제로 재외국민이 거주하는 116개 국가 중 35%정도는 현재로서 공관투표를 진행할 수 없는 여건입니다. 이는 투표권 무늬만 주워졌지 생활정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하듯이 후속입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야는 당리당략에 따라 셈을 하느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한의 남아도는 재고쌀 150만톤을 식량사정 악화로 어려운 북한에 지원하는 문제를 두고 여야가 당리당략과 유불리를 따지느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개탄할 노릇입니다.
곽재석 참정권 후속입법을 위한 주요현안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김영진 재외동포들의 염원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는 총선 지역구 투표권 부여와 우편투표 및 인터넷 투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9년 3월 이미 우편투표와 인터넷투표에 관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황입니다. 외국의 경우 재외선거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 117개국 중 미국, 일본, 독일, 스위스를 포함하여 54개국에서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변호사 출신 일부 의원이 반대하고 있지만, 우편투표, 인터넷투표 실시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앞서가고, 정치도 뒤를 좇는데 제도만 그대로여서는 안 됩니다. 우편투표와 인터넷 투표 또한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곽재석 이제까지는 해외한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시선을 국내로 한번 돌려보겠습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120만을 돌파하였고, 이 가운데 80만이 장기거주자입니다만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중국동포들에 대한 관심과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김영진 그렇습니다. 국내에는 결혼이민자, 이주근로자, 외국인사업가, 중국동포 등 체류외국인이 120만 명을 넘어 섰습니다. 이제는 민족만을 주장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국내 거주 외국인에 대한 동정과 시혜차원의 정책 시행은 그쳐야 합니다. 앞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동역자로 태도를 바꾸어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현행 외국인정책 제도 개선은 당연한 도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식 면에서도 피부색, 외모, 음식 차이와 언어미숙으로 인한 각종 차별을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들이 한국에서 부당대우, 차별, 인격 무시를 당했다고 했을 때 후에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보이겠으며, 또 그들 국가에 체류하는 한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태도나 입장을 취하겠습니까? 역지사지해봐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이렇게 생활 속에서도 바뀌어야 하지만 재한외국인에 대한 정부의 제도 및 법률도 바뀌어야하고요.
곽재석 관련하여 진행중이거나 계획하고 계신 정책 사안이 있으신지요?
김영진 아직 구체적인 진행 사안이 있지 않지만, 금년 말 W-KICA 임원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의논하려고 합니다. 사회, 문화, 법제도 전반에 관하여 논의 할 것이기 때문에 이주․동포정책연구소와 같은 외국인정책 전문연구기관이 관련 자료와 요청사안을 제안해 준다면, 입법전문가들을 통하여 법제도 체계 개선 작업을 할 것입니다. W-KICA와 연구소가 협업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 믿습니다.
곽재석 의원님께서는 오래전에 한일기독의원연맹을 결성하셨고 국가조찬위원회 회장도 역임하시는 등 신실한 기독인의 행보를 보이셨다고 생각하는데요.
김영진 한일기독의원연맹은 1998년도에 창설하였고 제가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연맹과 관련된 잊을 수 없는 일화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2001년에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임명되자마자 주도한 일이 일본 전역에 2만1천여 중학교에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채택하려 한 것입니다.
이 왜곡 역사서 안에는 조선이 개화를 요청해서 한일합병이 성사되었다고 하거나 또는 정신대에 대한 왜곡된 사실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의 태도는 왜곡된 역사서 뿐 아니라 뻔뻔한 천황제 수호, 군사대국 군국주의의 부활 움직임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는데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자리를 깔고 성경과 찬송가를 옆에 두고 7일간의 단식투쟁에 들어갔습니다.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단식투쟁이자 금식기도를 하는 동안 한일기독의원연맹 일본측 회장 도이 류이치 의원이 제 옆에 자리를 깔고 앉아 동참하였습니다. 때마침 일본 우익 150여명이 몰려와서 저에게 위협을 가하던 중이었는데, 저보다도 류이치 의원이 더 큰 위험에 놓이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행여나 NHK 등 일본 언론에 노출이 된다면 류이치 의원의 향후 정치생명을 보장 받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고요.
곽재석 일본측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김 의원님의 일본 원정 단식에 대한 염려와 만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김영진 류이치 의원을 비롯하여 20여명의 국회의원이 직접 찾아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고, 일본 대학생이 침낭을 싸들고 와서 함께 밤을 새웠고, 일본 전역의 어머니회에서 찾아와서 격려와 지지의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말씀대로 한국에서 한기총 이만신 회장과 KNCC 회장이 직접 찾아와 건강을 염려하며 금식중단을 요청하였습니다. 바로 이어서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최성용 주일한국대사 편에 전문을 보내와 한일양국 언론과 미디어에 충분히 그 뜻이 알려진 만큼 금식중단을 요청하셨지만, 저로서는 변하지 않는 일본정부를 보고서 그만둘 수 없었거니와 60만 재일동포들이 저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한 맺힌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라도 그만둘 수가 없었지요.
곽재석 가장 큰 고비라고 할까요? 단식 7일 동안 어느 때가 가장 힘드셨는지요.
김영진 최대 고비는 일본 우익단체의 위협도 아니고 대통령의 전문도 아니었는데, 바로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 고비를 맞이하게 된 것이죠. 단식 6일째 체력적으로 극한에 달했고, 여러 갈등과 번민이 찾아와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와중에 단식 상황을 모르는 일본 아주머니들이 들고 온 낙지와 닭튀김 요리는 저의 정신을 혼미하게 할 만큼 식욕을 참기가 어려웠고요(웃음). 그날 자신과의 사투를 하던 끝에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고 제 몸은 저 땅 끝으로 꺼지는 듯 한 기분이 들었죠. 돌덩이같이 무거운 몸이 어느 순간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으로 바뀌면서 멀리서 찬송소리가 들려오지 않겠습니까. 그 소리에 깼는데 실제로 저쪽 건너편에서 200여 명이 찬송을 부르며 나를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날이 단식 7일째 되는 날이자 부활주일이었는데, 이분들은 일본 NCC 회원과 교계 관계자, 시민단체 분들이었습니다. 함께 감격과 은혜의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일본 NCC 스미코 회장이 단식을 자신들에게 넘겨달라고 그러더군요. 우리 일본사람이 우리 정부를 향해 외치겠다고 말입니다. 드디어 일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저는 그들에게 이일을 넘겼고 후에 두 가지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2만1천160개 중학교 역사교과서 가운데 왜곡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불과 0.3% 그쳤고, 일본에서 정치 생명이 끝날 것이라는 도이 류이치 의원은 그 다음해(2002년) 일본 중의원 외교통상부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곽재석 저희 연구소가 지난 9월 25일 창립1주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격려와 응원의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영진 해외한인 권익신장이든 국내 외국인정책 제도 개선이든 그것이 '옳다' '정의다'라고 판단되면 힘들고 척박하더라도,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반드시 크게 이루어 질 것으로 믿습니다. 옳은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저와 함께 청년시절 함께 동역했고 지금은 목사가 된 김해성 목사와, 임명기 목사 등의 분들도 척박한 시절부터 국내 외국인정책 개혁을 힘들게 이끌어온 분들입니다. 덕분에 지금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동포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 않습니까.
국내 외국인정책과 해외한인 관련 정책을 함께 아울러서 가는 것이 양쪽 모두로부터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앞으로 이주․동포정책연구소와 같은 전문연구기관의 수고와 헌신으로 이와 같은 변화가 더욱 크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재외동포 지원 방향
- 재외동포들에 대한 교육 및 의료지원 확대
- 복수국적 허용을 위한 국적법 개정
- 재외동포 범위에 외국국적 동포포함 추진
- 재외동포전담기구로 해외한인청 설치
- 재외국민 보호법 제정을 통한 재외국민의 안전보호 추진(안전한 해외여행을 위한 여행정보 제공과 사고발생-대응방안까지의 통합영사 서비스프로그램 확대 추진 등)
- 재외공관망 확충과 외교영사인력의 증원을 통한 현장 국민중심의 영사서비스 수 행 추진
- 한상네트워크 기반확충 및 분야별 한민족네트워크 구축지원
- 재외국민 대체복무를 위한 병역법 개정
- 사할린 연해주 거주 고려인 동포 재정착 지원
- 재외동포언론발전지원법 제정
*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KICA)란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KICA.상임대표 김영진)가 2007년 2월28일 창립됐다. 창립 목적은 미국 연방의회가 매년 1월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정하는 등 세계 각지에서 한민족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국내의 관심과 배려는 미흡하므로 향후 700만 동포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기 위함이다.
W-KICA은 '해외한인의 날' 제정 청원을 비롯해 동포 지원사업 발굴과 교류 협력 사업 전개, 동포 법적 지위 회복운동 전개 및 동포청 설립 추진, 차세대 및 입양인에 대한 문화예술, 역사, 한글보급 운동 등을 전개였는데, 이 가운데 해외한인의 날(2007년 10월5일) 이 이미 제정되었다.
초대 임원진은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김준곤 CCC총재, 송월주 조계종 전 총무원장, 서영훈 한적 전 총재 등 10명의 상임고문을 비롯해 정근모 명지대 총장 등 60여명의 고문, 황수관 연세대 교수 등 30여명의 지도위원, 20여명의 자문위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김영진 국회의원 프로필
성 명 김영진(金泳鎭)
생년월일 1947년 11월 17일(음력)
종 교 기독교 (강진읍교회 장로)
1988-2003년 대한민국 국회의원(제 13대, 제 14대, 제 15대, 제 16대)
1992년 해외참전전우회 부회장
1998년 국회조찬기도회 회장
국가 경영전략위원회 위원장
세계화평재단 세계평화 봉사단 총재
2000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
2003년 제 53대 농림부 장관
2004-2007년 민주당 부대표, 대통합 민주신당 광주광역시당 위원장
2007년 (사)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한일기독의원 연맹 대표회장(현)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KICA)창설자 상임대표(현)
2008년 대한민국 국회의원(제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
민주당 당무위원
수상내역
2000년 세계평화상 본상 수상(레스터 울프 총재)
2001년 우크라이나 건국 최고 훈장(쿠즈마 대통령)
2007년 미국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 수상(래리 그랜트 총재)
주요저서
『충정작전과 광주항쟁(상∙하)』
『한국농업의 진단과 개혁과제-영어판, 일어판 출간(UR/WTO 와 21세기 새로운 도 약을 위한 제언)』
『전남 쌀 줄게 개성인삼 다오』
『오월의 하늘』
이주동포정책연구소 미드리 4호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공익 목적 출처 명시시 복제 허용.]